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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연의 미술도시, 홍콩] [11] 과거와 현재의 교차점에서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요? 폐공장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더 밀스 위클리홍콩 2023-11-24 02:44:01

 옛 공간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과거를 생각하게 한다. 버려진 공장이나 발전소, 소각 시설 등의 폐산업 시설을 문화재생사업을 통해 문화예술 시설로 되살리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영국에서는 가동이 중단되었던 런던의 화력 발전소가 세계적인 미술관인 테이트 모던으로 성공적으로 재탄생하였고, 한국에서도 부산 고려제강의 폐공장이 시민들을 위한 복합문화공간 F1963으로 변모했다. 

 

 홍콩에도 역사적 건물을 리노베이션한 몇 가지 사례가 있지만, 더 밀스(The Mills)는 한 기업이 자신들의 산업적 유산을 시각적으로 보존한 사례다. 더 밀스는 1954년에 설립된 남풍 기업(Nam Fung Textiles)이 1960-70년대에 추엔완(Tsuen Wan)에 세운 공장이었다. 추엔완은 과거 세계 섬유 무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산업 도시로 홍콩 섬유 산업의 상징적인 지역이었다. 한때 섬유 노동자들로 북적이던 홍콩의 방직 공장들은 관련 산업이 저렴한 임대료와 노동력을 따라 중국으로 이전하면서 제 역할을 잃고 방치되었다. 홍콩의 방직 공장이 더 밀스로 리노베이션되는 과정은 홍콩의 전통적인 제조업이 홍콩에서 쇠퇴해가는 과정과 겹쳐진다.


[그림1] 방직 공장 간판과 여성 노동자의 벽화를 유지하고 있는 더 밀스의 외관

 더 밀스는 이러한 과거 방직 공장의 외관을 보존하고 있다[그림1]. 오래된 벽과 철재 틀 등 과거 공장의 많은 부분을 보존하고 복원하면서도 건물의 전면을 유리 창문으로 바꾸고 세 개의 공장을 유리 다리로 연결하여 현대적인 모습을 갖췄다. 과거 노동자들이 점심을 먹거나 휴식을 취했던 옥상 데크에는 나무들이 심어졌고 로컬 마켓이 열리고 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건물 곳곳에서 과거 공장에서 사용했던 물건들을 발견할 수 있다. 1층 로비 뒤 벽면 인테리어는 당시 회사의 상징인 골든컵으로 장식된 대문을 가져다 놓은 것이다. 화재를 막기 위해 두껍고 견고하게 제작되었던 나무문은 벤치로 변형되었고, 벽에 소화기를 대신하여 모래와 함께 설치되었던 붉은 바스켓은 조명 등을 장식하는 요소로 사용되었다. 과거 SNS가 없던 시절 공지문을 붙였던 안내판도 여전히 눈에 띄었다[그림2].


[그림2] 더 밀스 곳곳에 과거 공장의 요소들을 재활용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더 밀스에는 지속가능한 면직 사업을 지원하는 플랫폼, 로컬 매장들, 섬유 예술 박물관(CHAT, Center for Heritage Art & Textile) 등이 있다. 특히, CHAT은 과거 면방직 공장이었던 장소적 특성을 오롯이 담고 있다. 박물관의 한 부분은 홍콩 섬유 산업의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홍콩이 제조업에서 금융, 무역, 관광, 서비스 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 체계로 변화함에 따라 부동산 개발업체로 변모한 기업의 뿌리와 같은 방직 산업의 유산을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다른 한 부분 역시 텍스타일 기반의 시각예술 전시 및 교육을 위한 공간으로 유지하고 있다[그림3].


[그림3] CHAT이 전시 중인 태국 작가 Jakkai Siributr의 작품과 더 밀스 곳곳의 텍스타일 기반 작품들

 이러한 더 밀스의 형식과 내용은 홍콩의 한 산업단지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과거에 공장에서 일했던 ‘내’가 변화되었지만 중간중간 여전히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이 장소를 방문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먼 과거처럼 느껴지지만, 최종적으로 2008년까지 공장이 유지되었기 때문에 공장의 이야기는 사실 그렇게 아주 먼 과거는 아니다. 어쩌면 이 공장에서 일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야기를 손자와 손녀들이 들을 수 있는 시점이다. ‘장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새로운 문화적 분위기를 지녔다. 그렇다면 1980년대 정점에 도달한 섬유 산업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홍콩에 더는 공장이 가동되지 않기 시작했을 때 공장을 보존하여 그 사용 가치를 다양한 의미에서 극대화하고자 했던 기업의 결정은 사람들에게 경험해보지 못한 과거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PLACE The Mills의 CHAT(Centre for Heritage, Arts and Textile)

 

 추엔완에 자리했던 방직 공장들의 문화적 유산을 보존하는 The Mills의 아트 센터이다. 섬유 산업과 옛 공장이 지닌 문화와 역사적 가치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관련 연구를 지원한다. 또 한편으로는 텍스타일을 기반으로 한 현대미술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칼럼 소개 :  홍콩에서는 가장 큰 아트 페어 중 하나인 아트 바젤이 열리고, 세계적인 옥션 회사들이 일 년 내내 프리뷰와 전시를 개최하며, 대형 갤러리들은 동시대 작가들의 최근 작품을 쉴 틈 없이 선보인다. 그리고 홍콩에는 M+ 미술관과 홍콩고궁문화박물관 등이 위치한 시주룽문화지구, 시대에 상관없이 내실 있는 전시를 선보이는 HKMoA와 시각예술 복합문화공간인 K11Musea, PMQ, 타이콴 헤리티지, 전 세계의 유명 및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판매하는 중소형 갤러리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홍콩은 동서양의 고전미술과 현대미술이 살아 숨 쉬는 미술 도시이다. [미술도시, 홍콩] 칼럼은 미술교육자 원정연이 이러한 장소들을 방문하며 전하는 미술, 시각문화, 작가, 전시에 관한 이야기이다.


원정연

미술사/미술교육을 공부하고 미술을 통한 글쓰기를 강의했습니다. 현재는 홍콩에 거주하면서 온·오프라인으로 강의를 진행하고, 홍콩의 다채로운 시각문화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미술사 석사 졸업, 서울대 사범대학 미술교육(이론) 박사 수료

- 강남대 교양교수부 강사, 서울대 사범대학 협동과정 책임연구원 및 창의예술교육과정 강사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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