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그 설렘의 시작은 짙은 안개 앞에서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독일이 남기고 간 아름다운 건축양식과 눈부신 햇살, 낭만적인 해변을 떠올리며 칭다오 여행을 시작했었다. 그러나 내 앞에 나타난 건 300미터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는 안개였다. 오후 4시가 넘은 이 시각에 안개라니... 공해로 인한 스모그현상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아 몇 번이고 되물어 봤으나 분명히 안개란다.
첫 행선지, 아름다운 청도 시내와 해변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는 소어산공원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보았으나 도시는 여전히 짙은 안개에 싸여 침묵하고 있었다. 더 재미있는 건, 이렇게 앞이 새햐얀데도 칭다오의 화가들은 화폭에 그럴싸한 칭다오의 모습을 그려냈다. 마음속에 있는 칭다오를 화폭에 담아내는 그들을 보면서 안평대원군의 꿈 이야기를 들으며 몽유도원도를 그렸다는 안견이 문득 떠올랐다.
다음으로 들른 곳은 잔교다.
칭다오 맥주 상표에 나올 만큼 칭다오를 대표하는 곳이다. 잔교는 아픈 중국의 근대사가 걸려있다. 열강이 중국을 서로 먼저 차지하려고 각축하던 19세기 말, 20세기 초반, 중국을
침략하러온 외국군 해군 군함이 칭다오 함에 편하게 접안하기 위해 만든 부두 같은 시설이 바로 이 잔교다. 칭다오 맥주를 유독 좋아하는 나로서는 중국 칭다오 맥주 상표에 인쇄된 이곳에 서는 것만으로 참으로 뿌듯했다. 중국 칭다오의 상징 잔교는 중국말로 '잔챠오(棧橋)'라고 한다.
잔교의 회란각에서 사진을 한 장 찰칵.
"잔교에서 찍은 사진이 없으면 청도에 온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던데, 안찍겠다는 나를 세워놓고 사진 한 장 찍어준 서귀성씨가 두고두고 고맙다.
사진 뒤로 경찰순찰차가 보인다.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잔교를 비집고 저 큰 경찰차가 이리저리 휘집고 돌아다닌다. 저 차를 피하기 위해 몇 번이나 길가로 물러서야 했는지... 관광객을 보호하겠다는 건지, 방해를 하겠다는 건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도 중국인들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불안에 휩싸여 쫓기듯 하는 심천의 중국인들 모습과는 천지 차다. 그림에서나 봤던 중국 아기들의 헤어스타일을 보고 너무도 신기하여 몰카로 한 장 찰칵.
해가 벌써 뉘엿뉘엿 진다. 잔교에서 나와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만난 중국인 가족일행. 길거리에서 파는 난(Naan)을 하나씩 들고 먹다 한 곳을 바라보는 그네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칭다오 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일일이 일정을 체크해가며 불편함 없이 모든 편의를 제공해주신 칭다오 총영사관의 유재현 총영사님이 중국식당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청도에서 꼭 먹어봐야 하는 요리가 있단다. 그것이 바로 해물요리고, 칭다오의 해물요리명가는 노선부해선성(老船夫海鮮城) 이란다. 이곳은 바다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선박모양을 따서 만든 해물요리 음식점으로, 모든 요리는 자연산 해산물만 이용한단다. 그만큼 신선할 뿐 아니라 맛도 뛰어나고 종류도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
"2002년 청도 특색요리" 칭호를 수여받은 노선부해선성에서 그리도 만나고 싶었던 유재현 총영사님과 십 수 년 전 홍콩에서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최고급 요리와 싱싱한 회, 그리고 칭다오 맥주의 본고장 칭다오에서 칭다오 맥주를 마시며 내 어찌 감격에 젖지 않을 수 있을까.
술을 좋아하는 이… 칭다오로 갈 지니!!
칭다오 맥주 순생 純生에 빠지다거한 저녁을 먹고, 낭만적인 맥주의 거리에서 칭다오 맥주로 더위를 달랬다. 칭다오는 홍콩에 비해 시원하긴 하지만 나름 습하고 무더웠다. 칭다오에 사는 한국인들은 오늘이 가장 더운 날씨라며 혀를 차지만 홍콩에서 간 내가 느끼기엔 시원하기만 했다.
칭다오 맥주는 노자(老子)의 도가(道家)사상 발원지인 라오산의 광천수로 만들어진다. 독일 점령 시 독일인의 손으로 세워진 맥주공장이 칭다오 맥주의 전신. 독일인의 기술과 칭다오 라오산의 물이 결합돼 칭다오 맥주가 태어났는데 일제 시대에는 이곳에서 기린 맥주가 만들어졌고, 이후 중국 반환 후에는 다시 칭다오 맥주가 생산됐다고 한다.
그러나 요즈음은 노산의 광천수가 부족하여 모든 맥주를 광천수로 만드는 건 역부족이고, 또한 세계로 수출하는 칭다오 맥주를 공급하기도 어려워 중국 18개 성 40여 곳에 맥주공장을 세워 생산해 내고 있단다. 때문에 같은 칭다오 맥주라도 맛이 제각각이고 하니 홍콩에서 칭다오 맥주를 마실 때 어느 지역에서 만들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다.
이날 마셔본 칭다오 맥주는 순생(純生). 순생은 칭다오 맥주에서 1999년 프리미엄 상품으로 내놓은 것이라는데, 가격도 보통 칭다오 맥주의 두 배 이상으로, 한 병에 10위안이고 바에서 마실 때는 20위안쯤 한다. 가격이 좀 비싸긴 하지만 진하면서도 부드러운 그 맛은 다른 맥주들과 비교하기 미안해질 정도다. 거품도 부드럽고 호프의 향이 잘 살아있는 이 맥주는 중국 최고, 아니 동아시아 최고의 맥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한다. 시원하고 깨끗하면서도 밍밍하지 않고, 뒷맛도 참 좋다. 아직까지도 그 맥주 맛 기억이 삼삼해 이 무더운 날 한 병 쭉 들이키고 싶지만 불행히도 홍콩에서는 아직까지 순생맥주를 본 기억이 없다. 시간이 나는 대로 한 번 찾아봐야 겠다.
칭다오에 가면 가봐야 할 곳이 과거의 맥주 생산 시설을 볼 수 있다는 칭다오 맥주 박물관이다. 또 칭다오 맥주공장을 방문하면 현장에서 생산되는 맥주도 맛볼 수 있단다. 칭다오를 방문하시는 분들은 꼭 가보시길.
덧붙일 것은, 칭다오 맥주는 그 명성에 힘입어 91년부터 매년 8월 15~31일 '칭다오 국제맥주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로 13회째를 맞이하는 이 축제는칭다오 시의 가장 특색 있는 대형 행사다. 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세계 30여개국의 맥주회사와 50만명의 맥주 애호가들이 참가한다. 위클리홍콩 독자분들, 이 시기에 맞춰 청도를 찾아보시면 잊지못할 추억거리를 만들 수 있을 듯 하다.
칭다오 맥주 팁 하나!!칭다오 병맥주에는 특별한 비밀이 숨어있다. 가끔씩 맥주를 마실 때 술이 더 잘 넘어가거나 맥주 맛이 특별했던 경험이 있을 텐데, 이는 그날의 컨디션이 좋아서가 아니라 칭다오 맥주에 숨어있는 하나의 비밀이란다.
칭다오의 식당들이나 마켓들을 보면 "이피즈공 一啤直供" 글귀를 볼 수 있는데, 뭔가를 직접 공급한다는 뜻인데 비밀은 앞에 숨어있다. 청도에서 청도 토박이들에만 통용되는 중국어가 있다. 바로 이창칭피, 우창라오피 一厂青啤, 五厂崂啤 다. 이는 칭다오 맥주는 1공장에서 나온 맥주, 노산맥주는 5공장에서 나온 맥주가 최고라는 뜻이란다.
1공장 맥주와 5공장 맥주의 구분하기 위해서는 병뚜껑을 보면 된다. 20100609는 2010년 6월 9일에 생산된 맥주라는 뜻인데 키포인트는 바로 밑의 숫자인데 1공장 맥주는 01로 시작한다. 04로 시작했으면 4공장에서 생산된 맥주이고, 1공장에서 생산된 맥주가 바로 정종으로 인정받는 칭다오 맥주라는 사실.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맛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고 한다.
/ 계속....
<글·사진 로사 권(rosa@weeklyh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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