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트콤에 나온 생일 에피소드. 식구들로부터 자기가 원하는 생일선물을 기대했던 아버지는 선물을 받지 못하자 종일 궁시렁대며 신세타령을 늘어놓는다. 그의 모습에 불안해진 식구들은 초등학생 막내까지 총 동원해 진땀을 빼가며 '선물 사냥'에 나선다. 겨우 수중에 넣은 아이템을 아버지에게 건네자 비로소 화목한 웃음을 되찾은 가족은 그제야 서로를 포옹하며 생일 무드를 맛보게 된다.
이솝우화 같은 여운과 교훈을 시트콤에서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 에피소드는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등장인물들의 농담과 대화를 단순히 재미로만 즐기면서 빠져들기에는 위험천만한 스토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최신 인기 아이템인 선물을 찾느라 초긴장해서 동분서주하는 식구들의 모습이, 과장된 연출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도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빈손이 민망해서 갈 수 없고, 장소가 허술해서 만날 수 없고, 용건이 상대방에게 득이 되지 않으면 연락할 수 없고, 좋은 일이 아니면 굳이 먼저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 관계는 타인뿐만 아니라 가족간에도 싹틀 수 있다.
허심탄회하게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지 않고, 근사한 물건으로 요점을 대신하고 빈말로 덧칠해가며 지속하는 인간관계처럼 우리를 고독하고 황량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관계의 빈틈을 채우려는 겉치레는 관계를 더 인위적으로 가공시키는 악순환의 반복이 될 뿐이다. 예의를 중시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마음을 전달하며 상대방을 존중하는 자세를 통해 최고의 예의를 갖추자는 뜻이다.
검색창에 뜬 누군가의 자살 소식이 쇼킹한 사건으로 여겨지지 않는 게 요즘 추세다. 나라마다 자살방지 캠페인을 벌여야 될 만큼 먹고 사는 일도 힘겨워졌다. 이런 시대가 오기 전에도 내 주위엔 스스로 저 세상을 택하고 떠난 사람들이 꽤 있는 편이다. 그래서 인생의 고비에서 죽음을 떠올리는 사람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다.
사실,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광기어린 사이코나 일가친척도 치를 떨만큼 악명 높은 부적응자가 아닌 경우가 많다. 너무도 평범했고 남에게 해를 끼치기 싫어했고 유난을 떨지도 않았던 그들의 갑작스러운 떠남은 그래서 남은 이들로 하여금 반문을 하게 만든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직장에서 떠밀려난 아버지는 그런 사정을 후련하게 털어놓고 가족에게 위로받지 못해 고민하다 떠나가고, 왕따에 시달리며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던 십대들은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혼자서 방황하다 떠나가고, 우울증에 시달리던 아내는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침묵 속에 괴로워하다 떠나가곤 했다. 최악의 순간에 자신의 알맹이를 드러내고 마음을 털어놓을 자리를 갖지 못한 이들은 답이 없는 의문만 남긴 채 조용히 떠나버렸다.
자살을 결심했으나 생각을 바꾼 경우도 물론 있었다. 누군가에게 용기를 얻었거나 자기 안에서 새로운 목표와 희망을 발견한 그들은 한 번 더 살아보기로 결심하고 삶을 붙들 수 있었다. 누가 나서서 목돈을 쥐어주고, 빚을 갚아주고, 원하는 것을 장만해줘서가 아니라, 최후의 순간에 마주친 관계로부터 힘을 얻고 신뢰를 되찾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무슨 선물을 받고 뭘 먹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생일파티는 그만 하기로 하자. 태어난 날짜 대신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고, 받고 싶은 선물들이 줄줄이 적힌 위시리스트보다 나의 포부가 담긴 버킷리스트를 되새기고, 받지 못한 것보다 베풀지 못한 순간들을 떠올리고, 살아있는 의미를 짚어보며 다시 태어나는 생일(生日)을 뿌듯하게 축하하기 위하여.
<글·베로니카 리(veronica@coaching-zo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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