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말씀을 드려야 하나? 아, 이건 정말 살다 살다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거든요.
우리 집의 사건은 대부분 아들 진호(만 10세)로부터 비롯되는데요, 지난번에 말씀드렸던가요? 얘가 아주 기발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엉뚱해서 감당하기조차 어렵다구요.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이 사건은 그러니까 지난 여름, 긴긴 여름방학을 끝내고 홍콩으로 돌아오면서 생긴 일입니다.
손바닥 만한 홍콩에서 사는 우리에게 서울은 그야말로 모세가 40년 동안 헤매던 그 광야만큼이나 광활하게 느껴지는 곳이고, 저는 또 범생이인지라 공항에 2시간 전에 도착하라고 하면 반드시 그 시간 전에 가야 되는 습성이 있거든요.
그 날도 그랬던 거죠. 저녁 7시 20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일찌감치 집에서 출발했더니 5시도 안 된겁니다. 이렇게 공항에 일찍 도착하는 저를 두고 어떤 친구는 공항 투어 떠났냐는 조롱도 하긴 합니다만, 그게 나쁜 습성은 아니잖아요. 그쵸?
아, 제가 자꾸 옆으로 새는군요. 어쨌든 그날 그렇게 일찌감치 공항에 가서 체크인을 했습니다. 순조롭게 말이죠. 그거 기억하시죠? 체크인 하고 가방 부치면, "손님 짐 검사가 끝날 때 까지 20분만 기다렸다 들어가 주세요." 저야 말을 잘 듣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20분을 기다리고 있었죠. 그런데 세상에, 공항 직원이 저를 짐이 문제가 있을 때 보관하는 보안실로 들어오라는 겁니다. 이건 또 무슨 경우인거죠? 딸 서진(만 13세)이와 진호더러 밖에 앉아 있으라고 하고 저는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공항직원 왈, "손님 가방에서 총알이 나왔어요."
"헐~~~ 그럴리가요, 제 가방에서 왜 총알이 나오겠어요. 생각을 해보세요. 참 어이가 없는데요, 그거 다른 사람 가방에서 나온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손님 가방 바닥에서 나왔거든요. 이거 전문가가 와서 확인을 해봐야 하니까 여기 조서 쓰시면서 좀 기다리세요!"
저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왜 이런데 와서 조서까지 써야 하나 싶은 마음에 적반하장 식으로 불쾌한 생각마저 드는 겁니다. 밖에 있는 아들한테 나가서 총알을 보이며, 이거 네거야? 라고 물으니, 얘가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면서 "어? 그게 왜 거기가 있지" 이러는 겁니다. 참 나, 이 순간 제가 바로 범인이 된거죠. 속에서 천불이 나는데 꾹 참고, 타이르면서 "왜 엄마 가방 밑바닥에 있는지 잘 설명을 해봐"라고 했습니다. 진호가 그럽니다. "있잖아요. 삼촌 책상서랍에 있는 거 가지고 놀다가 튀어 나갔는데, 그게 어딨는지 못 찾았었는데 엄마 가방에 들어갔나 봐요."
세상에 태어나서 정말 처음으로 조서를 썼습니다. 그러는 동안 관계자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하더군요. 이건 불법무기소지죄이기 때문에 중범이랍니다. 저는요, 정말 그날 많은 걸 알게 됐습니다. 우리나라에 그렇게 보안에 관련된 사람들이 많고, 정부 부처가 많다는 사실을요. 그러니까 그날 저를 심문하거나 조사를 하러 보안실에 들어온 사람만 8명인가 됩니다. 항공사, 공항관리공단, 군 무기 관계자, 경찰청, 보안사, 중앙정보부.... 에구, 몇 군데 더 있었는데 기억도 잘 안납니다.
이 사람들이 사무실로 들어오면서 저를 위 아래로 쭉 훑어 내리며 한 마디씩 합디다.
"아니, 여자가 왜 총알을 갖고 다녀요?" 뭐, 여자가, 라고 까지 한 건 OK. 그런데, 젤루 깐깐하고 무서워 보이던 이는 경찰청에서 나온 사람인데, 이 사람이 저한테 뭐라는 줄 아세요? "아줌마가 뭐 하러 총알을 갖고 다니세요. 불법무기소지죄 몰라요?"
아니, 내가 아줌마긴 하지만 그렇게 대놓고, 아줌마가 어쩌구 하면 엄청 기분이 나빠지는거 아시죠? 인상을 팍 구기며 "제가 갖고온 거 아니라고 여기 조서에 썼잖아요. 애가 장난하다 빠트린 걸 제가 어찌 알겠어요. 그리고 이게 실탄인지 장난감인지 아직 밝혀지지도 않았구요!"라면서 큰소리를 쳤지 않겠습니까.
여하간, 무기전문가가 들어와 감정한 결과, 1968년도에 사용되던 실탄이라는군요. 지금은 사용되고 있지 않지만, 쓸 수는 있어서 위험한거라네요. 그동안 엄한 사람 잡아다 이러고 있는 거면 내가 가만있지 않겠노라며, 기고만장 하던 저의 꼬리가 어느새 감쪽같이 사라지고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주르르 흐릅디다. 삼촌은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이기에 총알의 출처를 알아낼 수 없고, 우린 홍콩으로 떠나야 하고 정말 미치겠더군요. 저의 그 기고만장함이 기분 나빴는지, 경찰청 아저씨가 으름장을 계속 놓자 마지막으로 들어온 정보부 관계자(그 중 가장 높겠죠? 아마도?)가 나머지는 삼촌하고 전화통화를 하던 조사를 하던 해서 마무리 하자며, 저더러 고생했다고, 아이에게 따끔하게 타이르는 것으로 정리를 하자고 하더군요. 아, 어찌나 고맙던지요. 인상도 어찌나 부드럽고 좋으시던지. 사실 그거 아세요? 정보부 사람들이 알고 보면 그렇게 스마트하고 부드럽고 합리적이더라니까요.
한 시간을 보안실에 붙들려서 마음고생 몸고생 하다 밖으로 나오니 새 세상 같고, 바짝 얼어 이제나 저제나 엄마가 나올까 목을 빼고 기다리던 아이들이 와락 달려들며, 살아 돌아온 엄마를 꼬옥 안아주더군요.
그런데, 서진이가 제게 귓속말로 이러는 거에요.
"엄마, 저 뚱뚱한 아저씨가 뭐라는 줄 아세요?"
"누구? 저 인상좋고 부드러워 보이는 아저씨?"
"네, 그 아저씨가 엄마 발에 왜 그렇게 반창고가 많이 붙었냐고요."
"푸하하하,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엄마가 힐을 신고 서울을 하루종일 돌아다니다 발등이며 발 뒤꿈치며 다 까져서 붙였다고 했더니, 아니, 니네 엄마 키도 크던데 왜 힐을 신으신대? 건강에 안 좋으니까 그냥 편한 신발 신으시라고 해. 발이 고생이잖니, 하는거에요"
세상에, 그 분은 그 와중에 제 발등에 잔뜩 붙어있던 밴드(반창고)까지 다 훑어 보신건가봐요. 역시 정보부 아저씬 다르긴 다른가봐요. 바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스캔해 버리니.
아, 그래서 그 총알이 어떻게 됐냐구요? 흐흐, 애들 삼촌이 길에서 주어다 책상서랍에 넣어둔거고, 우리 아들은 그게 신기하니까 가지고 놀다가 흘린거랍디다. 그런데 있잖아요, 아들 녀석 말이에요. 지 말이 흘린 거지, 실은 홍콩으로 가져오고 싶어서 제 가방에 슬쩍 넣어둔 것 아닐까요?
이게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에요. 자칫 잘못했다 제 인생이 총알타고 한 방에 날아갈 뻔 했다구요.
여러분, 불법무기를 소지하지 맙시다. 아들 가진 부모님들, 자나 깨나 조심합시다.
<로사 hongkongrosa@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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