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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의 홍콩 이바구] 홍콩 며느리 VS 한국 며느리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11-03-31 12:11:17
  • 수정 2011-04-06 16:3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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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9호, 4월1일
 오늘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고부간의 갈등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시댁(媤宅)과 갈등을 겪는 며느리들은 '시금치'도 싫어한다고 한다. '시'자만 들어가도 시댁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가을볕에는 딸을 쬐이고 봄볕에는 며느리를 쬐인다', '미운 열 사위 없고 고운 외며느리 없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고부갈등은 한국사회를 특징 짓는 키워드 중 하나이고 우리나라 가족의 아킬레스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홍콩은 어떨까? 우리나라처럼 남아선호사상의 잔재가 약간은 남아있는 홍콩에서도 고부간의 갈등이 없잖아 있겠지만 그 강도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약하다.

고부간의 갈등 요인 중 하나로 '고된 가사노동'을 꼽을수 있는데 홍콩에는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가정부가 있으니 며느리에 대한 기대치나, 가사노동에 대한 부담감이 서로 간에 없어 고부 갈등 요인 하나는 사라진 셈이다.

홍콩에서는 오히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밥을 차려주고 설거지를 해주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홍콩 여자들이 '기가 세다'는 말을 종종 하는데, 며느리라고 해서 별반 다를 것도 없다.

우리 시어머니는 가끔 "언젠가는 너희들과 함께 한 집 아래 위층에 살면서 재미있게 지내고 싶다"는 말씀을 하셔서 간이 철렁철렁 내려앉는다.

그런 내 속을 읽으셨는지 시어머니는 대뜸 "얘야, 집대문은 꼭 두 개를 만들 테니 걱정일랑 하지 말거라" 라는 말을 덧붙인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의아해 했는데, 생각해 볼수록 합리적인 것 같다. 서로의 사생활은 존중해 주겠다는 거다. 아들 며느리가 언제 어디를 드나들던지, 자꾸 부딪히며 문안인사 드릴 필요 없이 편하게 같이 살자는 것이다. (여기서 나의 시어머니라 함은 시어버지와 이혼하고 재가한 시어머니다. 우리나라 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시아버지의 새 부인은 전혀 우리 생활에 개입을 하지 않는 반면, 시집간 시어머니는 나의 진정한 시어머니 역할을 하신다.)

친하게 지내고 있는 홍콩인 친구들이 말하기를, 자기 집에는 전화가 두 대란다. 시집에서 남편을 찾는 용건이면 남편 전화 라인으로 전화를 걸고, 굳이 며느리한테 용건이 있다면 며느리 라인으로 건단다. 이리저리 안부 묻고 인사하는 시간을 줄이고 용건이 있는 사람들 간에 일처리를 하면서 합리적으로 살자는 것이다.

지난 호에 언급했듯, 홍콩의 딸들은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다. 우리나라도 점점 그런 추세긴 하지만, 여성들의 입김이 세지다 보니 시댁보다는 친정 쪽이 중심이 되곤 하는데, 시어머니인 당신도 사실 친정 부모가 있으니 며느리가 친정식구를 위한다고 해서 딱히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아들만 둘 있는 나 같은 사람은 딸 없는 것을 마냥 억울해 하며 며느리 비위를 잘 맞출 궁리를 해야 한다. 괜히 며느리 구박했다가는 아예 아들 얼굴 구경도 못할 처지가 될 테니까 말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일을 벌이기 좋아하고 손님을 초대해 음식을 접대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음식을 바리바리 해대며 시어머니를 초대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이런 뜬금없는 질문을 하신다.

"제니퍼야, 한국 드라마를 보니 며느리가 시부모님 식사가 끝날 때까지 옆에 서서 기다리더라…. 정말 그러니?"

도대체 무슨 드라마일까. 사실 대부분 드라마 상에서 한국 며느리의 모습은 거의 이 나라의 헬퍼와 다름이 없다. 갑부집 며느리가 아니면 그렇지 않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기분은 영 개운치 않다.

홍콩 사람들은 한국 남자들은 여전히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산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 한국 드라마다. 이제 구박받는 며느리나 맞고 사는 아내의 모습을 보여주는 드라마는 제발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

결혼하고 1년 반 정도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았었다. 그 당시는 시아버지가 혼자 계셔서 내 딴에는 신경을 쓰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시아버지는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부엌에 서성거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보시고는 매우 놀라시며 "전혀 그럴 필요 없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헬퍼가 있으니 필요한 것을 지시하면 되지만 그래도 며느리의 도리로 어찌 시아버지 나가시는데 베개에 침 흘리고 편히 잠잘 수 있겠는가 싶어 그렇게 시중을 들었다.

하지만 환경에 지배를 받는 인간인지라 홍콩문화에 익숙해진 나는 언제 한국며느리의 정신으로 살았는가 싶게 시아버지가 언제 나갔는지, 식사는 어떻게 하고 가셨는지 전혀 모르고 꿈속을 헤매는 홍콩 며느리가 됐다.

며느리한테 폐 끼치기를 싫어하시는 시아버지는 당신 와이셔츠 다림질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림질만 전문으로 하는 헬퍼를 파트타임으로 부르셨다.

이렇게 며느리와 크게 부딪히는 일이 없어서 그런지 정이 깊이 들기가 어렵다. 내가 중국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지 시아버지나 시어머니가 아직도 가깝고도 멀게만 느껴진다.

중국 사람 속은 알 수가 없다는데, 난 아직도 우리 시부모님의 마음을 잘 알 수가 없다. 나도 홍콩 며느리처럼 굳이 그 속을 알고 싶지도 않고 적당히 거리를 두고 싶은걸 보니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홍콩인들도 "시"자 들어가는 사람들과는 그다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하지는 않는 듯 하다.

나도 홍콩 친구들처럼 전화번호 산뜻한 것으로 받아다 '제니퍼 전용라인' 하나 깔아 볼까나….

<제니퍼 김(hongkong5j@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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