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밭 - 2이혜정
"저 왔어요"
나는 보는 둥 마는 둥 엄마에게 시선을 던지며 툇마루에 짐을 내렸다.
"오느라 고생 많았지? 급하게 전화를 받아서 반찬도 변변찮고, 너 좋아하는 옥시기 쪄주랴?"
"됐어요. 피곤한데 그냥 씻고 잘래. 별일 없었죠?"
대답을 기대하고 던진 질문은 아니었건만 엄마가 소녀처럼 베시시 웃으며 대답한다.
"이 시골집에 니가 온게 별일이지."
언젠가 오빠도 꼭 같은 말을 했었지. 오빠가 간암으로 떠나기 한 계절쯤 전, 오랜만에 들른 내게 꼭 그렇게 얘기를 했던 걸 내 머리는 잊지 않고 있었다. 헝클어져버린 기억들이 옥수수 찌는 냄새에 우수수 사라져 버린다. 젓가락으로 옥수수가 익었나 찔러보는 엄마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지만, 나는 홑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잠든 행세를 한다.
운 좋게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 영문과를 졸업한 그 해, 나는 200만원 남짓한 돈을 모아 무작정 한국을 떠나왔다. 어느 나라이건 내가 발 딛고 있는 이곳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행선지를 정했고 떠난 지 얼마지나지 않은 어느 겨울, 나는 통보보다 못한 전화로 가족들에게 내 결혼 일정을 알렸다.
결혼식은 화려했다. 엄마를 제외한 가족 누구도 한복을 입지 않았고, 폐백도 없었다. 한국어를 모르는 남편과 그의 가족들을 위해 모든 예식은 영어로 진행되었고, 나는 왠지 그 사실이 자랑스러워 참석한 고향 친구 몇 앞에서 내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 어린 날의 시골 아이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되네이며 밤이 늦도록 와인을 들이켰고, 가족 테이블로 다가온 웨이터가 엄마에게 레드 와인을 하겠냐 화이트 와인을 하겠냐 묻자 당황한 엄마가 물이면 족하다 할때까지 철업는 어린 딸은 취해 춤을 췄었다.
사랑 비슷하게 삼년을 살고, 나와 남편은 등을 돌렸다. 슬픔도 미련도 없는 헤어짐. 너를 내 인생에서 완전히 들어 내겠다 얘기를 나누는 순간까지도 아쉬움 따윈 크지 않았다. 그 밤, 우리는 여전히 웃으며 와인 잔을 부딪쳤다. 헌데, 낮에 데어리 주인이 손을 씻지 않고 치즈를 담는 바람에 치즈 맛이 평소만 못하단 그 날 그의 농담이 왜 한참이 지난 후에야 서글프게 느껴졌을까. 그날 우리의 헤어짐이 농을 섞을 만큼 가벼운 것은 아니었으련만. 나는 문득 위로가 받고 싶었다.
한 사람을 들어낸 자리는 일로서 채워졌지만, 생활은 녹록치 못했다. 둘이 함께 있던 큰 집을 비우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6층짜리 아파트의 맨 위층으로 혼자 이사를 들어간 그 날 이후 나는 창문조차 열지 않았다. 현관문을 열기 전 누군가 옆집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소리가 들리면 그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그 어느 누구도 알고 지내고 싶지 않았고, 그럴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됐다. 오빠가 떠난 후부터 매달 시골로 부치던 돈이 조금씩 버거워 질 무렵, 나는 항상 서러운 표정을 한 엄마의 얼굴과 궁상맞은 내 시골집을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슬픔이 삶으로 밀려와 소중한 것을 쓸어갈 때에 어느 누군가는 이렇게 외치며 마음을 달랬다 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하지만, 내게 그것은 절대 지나가지 않을 것처럼 어디를 가도 찾아와 친구라도 되는냥 내 옆에 기댔다. 내 집을 두드리는 고독과 슬픔의 종괴는, 잠시라도 곁에서 떼어 놓으면 울음을 터트릴 듯한 표정을 하고 일상처럼 들러붙어 나와 함께 잠을 청했다.
이튿날이 다 지나도록, 나는 그 어떤 의욕도 들지 않았다. 사랑에 앉아 다음 주까지 넘겨줘야 할 번역본을 보고 있는데 코가 뭉툭한 어린 조카가 내 앞에 앉아 수박 한 조각을 들이민다. 해 맑게 웃는 작은 존재의 팔목을 타고 수박 국물이 또로록 떨어진다. 너는 아직 한번도 삶에게 화를 내지 않았으리라. 어릴 적, 이 조용한 시골집에 손님이 오면 나는 누구보다 들떠 옥수수며 수박을 날랐더랬다. 저에겐 가도 가도 논밭뿐인 이 동네에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온 손님일 테지. 아이를 보는 마음이 애잔해져 나는 마당으로 나와 버렸다.
저녁, 엄마는 식사 내내 주먹으로 가슴 언저리를 내리쳤다.
"그렇게 소화가 안 되면, 소화제를 드시든지 병원에 가든지 하지. 왜 이렇게 궁상맞게 그래."
묵묵히 내 말을 듣던 엄마가 등을 돌려 뭔가를 들이킨다.
"매실 담은거야. 이게 속에 좋다해서 담근건데 내일 너도 한 병 담아 줄테니 버리지 말고 가져가 먹어."
고집 센 노인네. 마을 사람들 모두는 엄마처럼 순한 사람이 없다했지만, 필시 지금의 내 고집은 그녀에게 물려받은 유일한 재산이리라. 밤은 또 다시 금새 찾아와 마을을 삼켰다. 지금은 단종 되어버린 음료의 로고가 그려진 유리잔에 엄마가 따라준 매실 한 잔을 억지로 들고 나는 사랑으로 몸을 튼다. 자박 자박 내 뒤로 엄마가 신을 끄는 소리가 들린다.
"들어가 자요. 난 번역 좀 하다가 바깥사랑에서 잘게."
매정하게 얘기하는 나를 멍하니 쳐다보는 저 두 눈을 마주하기가 버겁다. 저 눈동자에 위안을 받아 어미의 품에 잠이 들던 때가 나도 분명 있었으리라. 적막이 내 앞을 휘휘 감싸 나는 얼떨결에 손에 든 매실즙을 꿀꺽 꿀꺽 들이킨다. 달다.
"오랜만에 왔는데. 좀 더 있다 출국하는 건 힘드니?"
달달한 즙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오다 가슴 깊이 웅크리고 앉아있는 딱딱한 응어리를 건드린다.
날 올려다보는 서글서글한 엄마의 눈이 왜 하필 그 옛날 내 결혼식에서 어색해하던 그 날의 눈과 닮아 있었던 것일까. 괜한 유리잔을 만지작거리며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온 딱딱한 응어리를 꿀꺽 삼킨다.
"엄마... 나 결혼식 할 때 말야. 웨이터가 양손에 와인병 들고서 어떤 걸로 드릴까요? 하고 영어로 물어봤잖아, 엄마 그 때 내 눈치 보면서 그냥 물이면 된다고 했는데"
목이 메어왔다. 먼 나라 사돈들에게 둘러싸여 혼자 한복을 입은 채 물 잔을 들고 서 있던 엄마. 저 주변머리 없는 사람은 내 어미가 아니오 하고 부정이라도 하고 싶었던 지난 내 모습이 또 다시 떠올랐다.
"아무것도 아닌걸로 종일 성질내서 미안해... 창피해서 그랬던건 아닌데..."
창피했었다. 모두들 와인 잔을 들고 웃고 있는데, 우리 엄마만 물 컵을 손에 쥐고 있는 게 나는 들키고 싶지 않은 내 근본을 들킨 것 마냥 부끄러웠었다.
"그랬어? 얘가 생각도 안 나는 옛날 일 가지고 싱겁게..."
엄마가 밤공기에 얼굴을 맞대고 소리 없이 웃는다. 당신은 분명 기억하고 있을테지.
고개를 돌리니 열린 창호지 문 건너로 또 다시 검은 옥수수 밭이 보인다. 버석거리는 옥수수 나무들이 우두커니 사람처럼 서있다. 순간, 처음으로 밤의 옥수수 밭이 무섭지 않다는 생각이 든건 왜일까. 나는 어렴풋이 그 속에서 그리운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세월을 거쳐간 내 사랑하는 이들이 그 날밤 우리의 대화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얘기한다면 엄마는 아마 여름 밤 급히 마신 매실 한 잔을 탓 할테지.
눈을 뜨니 날이 갰다. 매미 우는 소리가 어제보다 더 크게 들린다. 메밀 베개를 가슴에 안은 조카가 내가 깨기만을 기다렸는지 환한 얼굴로 다가온다. 메밀 베개에 매미 소리라… 오랫동안 잊혔던 단어들을 속으로 읊으며, 어린 나를 닮은 듯 한 조카의 손을 잡고 초록이 내려앉은 한 낮의 옥수수 밭을 걷는다. 언젠가 이 아이도 알게 될까. 철이 지나버린건 고향이 아니라 엉켜버린 우리 삶의 기억이라는 걸.
꺼이 꺼이 울고 싶었던 세월들.
어느 새 옥수수 밭에서 불쑥 튀어나온 바람이, 등짝에 들러 붙은 내 오래 묵은 설움을 토닥인다. 쉬이 쉬이...
등 뒤로, 젊음을 밭에 묻은 내 어미의 목소리가 들린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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