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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홍콩한인 글짓기대회 대상 작] 희망이삭 줍기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12-06-25 11:32:19
  • 수정 2012-07-06 16: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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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8호, 6월21일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순애의 가슴은 코끝까지 차올라 숨을 쉴 수가 없다. 신뢰하지 못할 소문에 흔들리는 자신에 실망스럽지만, 순애의 급한 걸음은 벌써 남편을 봤다는 시장 쪽으로 향하고 있다. 고무줄 치마는 발가락에 걸려 제대로 뛸 수가 없어 몇 번이고 서곤 한다.

정말로 남편이 그곳에 있다면, 다른 여자와 함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불안함이 머리위에서 순애를 조롱한다. 들고 있던 바가지 속에서 이삭들이 튕겨져 나가고 있었지만, 순애의 눈동자는 남편만을 찾고 있다. 헐레벌떡 시장에 도착한 순애는 시장입구에 자리한 만두가게에서 나오는 찜 연기에 눈이 흐려진다. 눈을 비비고 남편의 모습을 이리저리 찾아다닌다. 그러나, 남편은 아무 곳에도 보이지 않는다. 찾지 못하고, 만나지 못한 허탈함이 밀려 왔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다행스러운 안도감이 밀려온다. 이것은 한줌의 낮빛과 밤빛을 담은 저녁노을처럼 스르르 퍼져나간다.

그때, 목사님이 영철이와 함께 걸어오고 있다. 그들은 주일학교에 필요한 학용품들을 잔뜩 안고 있다. 영철이는 손을 높이 들고 "어무이!!" 미소 띤 얼굴로 순애를 크게 부른다. 곁에 서있던 목사님이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집사님, 오늘도 희망이삭 많이 주우셨습니까?" "네, 목사님, 오늘은 희망이삭 줍다가, 절망이삭 줍다가, 지금은 다시 희망을 줍고 있습니더. 목사님 말씀처럼 평안하게 기다리자, 주님이 다 듣고 계시고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아시는 주님만 의지하려고 합니더. 그러나, 제 마음이 상황에 따라 자주 바뀌는 거라예. 제가 너무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았습니더. 그러나 희망을 놓지 않으렵니더" 순애는 웃음을 띄우며 대답한다. 그녀의 대답은 기~인 터널에서 방금 빠져나와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고 있는 것처럼 맑고 청명하다. '그래 난 소망을 주우러 이 들판에 온 것이야, 무엇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인가, 믿고 기다리자' 순애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진다. 시원한 냉수 한 대접 같은 가을 저녁바람이 그녀와 함께 동행하고 있다.

집으로 돌아와 늦은 저녁을 시래기죽으로 때운 순애는 삯바느질을 하기 위해서 촛불 앞으로 당겨 앉는다. 그때, 밖에서 남편의 소리가 들렸다. 고요함을 깨는 갑작스런 소리에 바느질을 멈춘 순애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면서 말한다. "아이고~ 인자는 환청이 들리는 갑다" 곧이어, 남편 병만의 소리가 다시 들린다. "영철아!!! 여보! 내 왔다, 내가 왔단 말이다" 순애와 영철은 믿기지 않은 듯 서로 얼굴을 말없이 쳐다본다. 그리고는, 급하게 방문을 연다. 달빛을 뒤로 한 채 서있는 것은 바로 남편 병만인 것이다. 오른쪽 어깨에는 쌀자루를 메고 왼손에는 큰가방과 신문지에 싸온 쇠고기를 들고 있다. "아이고, 당신 아닌교, 참말로 영철아부지 입니꺼" 신애는 맨발로 좁은 툇마루를 내려와 병만이의 가슴을 탁탁 치면서 말한다.

그녀의 눈에서는 과꽃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병만이는 쌀자루와 가방을 땅에 내려놓고 순애와 영철이를 가슴에 힘껏 안으면서 말한다. "그동안 잘 있어재, 미안타, 내 그동안 연락 몬해서"

병만은 큰 가방에서 영철의 하얀 운동화를 꺼내 영철에게 주면서 말한다. "영철아, 네 신발이다, 함 신어 보그라" 영철이는 하얀 운동화를 집어 들면서 말한다. "아부지, 어디 다녀 오셨습니꺼, 어무이랑 제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십니꺼" 그리고는 고조된 기쁨의 음성으로 다시 말한다. "와!!! 아부지, 이거 제가 억수로 신고 싶었던 신발입니더. 고맙습니데이" "내가 그 동안 원양어선을 타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 댕겼다 카이, 그래서 연락도 몬했는기라, 돈도 많이 벌어서 빚도 다 갚을 수 있는 기라. 그동안 고생시켜 너무 미안타. 인자부터는 아부지가 왔으니 아무 걱정 말그라, 이제 우리 세 식구는 행복하기만 하믄 되는 기라" 병만은 참아왔던 눈물을 흘리면서 말한다. "잠깐, 기다리셔예, 퍼뜩 밥 지어 오겠심더" 치마로 눈물을 훔치며 순애는 부엌으로 나간다.

남편이 가져온 쌀과 쇠고기로 저녁을 짓는 순애는 마냥 행복하다. 타닥거리며 타는 마른장작을 보면서 그녀의 힘들고 지친 날들이 한순간에 연기로 다 사라지는 듯하다. 어느덧, 가을을 지난 겨울문턱의 차가운 바람은 그들에게는 빗겨나가고 있다. 저녁굴뚝에서는 기다림 끝의 평안과 행복이 모락모락 피어, 바다와 같은 들판을 넘어 산등성이로 멀리 퍼져나가고 있다. 끝.

이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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