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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동창생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6-02-09 16: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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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3호, 2월10일] 잃어버린 우정을 찾아   구정을 맞아 한국에 다녀왔다.  명색이야 명절 쇠러 고국을 방문한 ..
[제113호, 2월10일]

잃어버린 우정을 찾아
  구정을 맞아 한국에 다녀왔다.  명색이야 명절 쇠러 고국을 방문한 것이었지만 실은 숨 가쁘게 달려온 일상사를 접고 잠시 날개를 접어두고 싶었음이다.  

  몇 년 만에 소원하게 지내던 친구 S와 전화를 하면서 가슴 속에 묻어놓고 지냈던 그리운 친구들의 안부를 하나하나 묻다 덜커덕 동창회 모임을 한 번 해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한 번도 찾아보지 못했던 그리운 곳 '안성'.  '안성'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는 것만으로 벌써 눈물이 핑 도는걸 보니 어지간히도 그곳이 그리웠나보다.

  죽산을 지나 안성으로 구불대며 접어드는 고속도로에서부터 정겨움이 묻어났다.  버스터미널에 내려 설레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시가지를 빙 둘러보니 오직 버스 터미널만이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초라하게 서 있었다.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하다면 소중했던 한 시절의 추억이 서린 경기도 안성읍은 더 이상 '읍내'가 아닌 '시내'로 변해있었다. 나는 스쳐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안성이라는 도시의 한 이방인일 뿐이었다.

  약속시간이 꽤 넉넉히 남아 안성고등학교 앞에서 분식집을 한다는 동창을 찾아 나섰다.  금산동 로터리, 찜통의 허연 김이 싸늘한 겨울 공기 속으로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그 집 앞에 친구가 서 있었다.  행여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까 싶던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우리는 한 눈에 서로를 알아보고 얼싸안았다.  그리고 우리 입에서 동시에 나온 말은 "어머머머 얘, 너 하나도 안 변했다.  어쩜 옛날 모습 그대로니?" 였다.

  순간, 육십 먹은 할머니들이 여고동창생을 만나서 하는 소리가 바로 '옛날 모습 그대로야'라고 말하던 라디오 방송의 멘트가 생각이 나서 자꾸 삐죽삐죽 웃음이 삐져나왔다.

  손바닥만 한 분식집, 가득 쌓인 만두와 튀김, 펄떡펄떡 끓고 있는 시뻘건 떡볶이, 올망졸망 꼬마김밥...  20여 년 가까이 소식도 모르고 지내다 이렇게도 만나니 오죽 할 얘기가 많았으랴 만은 그녀는 얘기 한 자락 늘어놓기가 무섭게 들이닥치는 손님들로 몸도 마음도 마냥 바빴다.  

  바쁘다면서 동창회에 못나간다는 친구를 꼬드겨 안성 시장 쪽에 새로 생겼다는 한정식 집으로 향했다.  식당에는 벌써 우리 은사님이 중년 아줌마들에 둘러싸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은사님이야 말로 옛날 그대로의 모습인데 우리 친구들은 저마다 몇 평씩 늘어 중년 여인들의 태가 있는 대로 묻어났다.  

  학창 시절, 밤낮 무어라도 열심히 하던 친구는 지금도 열심히 직장일에 전념하며 인정받는 사원이 되어 있었고, 심성 곱고 듬직했던 Y는 직장생활을 하다 나이 많은 상사와 눈이 맞아 막 바로 결혼식을 올린 뒤 진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 친구 아이들이 벌써 고등학생이라는 말에 이제 만 6살인 막내를 두고 있는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걸펀한 입담과 터프함으로 우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던 친구는 어쩐 일인지 결혼 후 다시 친정에 와 있다는 소리가 들렸다.  사연인 즉은, 떡두꺼비 같은 아들 둘 낳고 잘 살고 있는데 어느 날 느닷없이 남편이 여자를 안방으로 들였단다.  그 많은 사연과 아픔을 어찌 말로 표현하랴만, 남편이야 그렇다 쳐도 아이들을 생으로 빼앗긴 여인의 가슴엔 '한'이 서렸으리라.

  크고 맑은 눈동자에 흰 피부, 늘씬한 몸매, 센스 있는 패션 감각 등으로 이웃한 고등학교의 남학생들로부터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Y.  결혼 후 남편과 사별한 후 재혼, 다시 이혼을 하고 친정으로 돌아왔다는데, 결국 우리 모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가슴이 아팠다.

  전교에서 가장 마른 사람을 꼽으라면 바로 K를 꼽을 수 있을 만큼 빼빼 말랐던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우리는 아무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가수 양희은의 동생 양희경으로 착각을 할 만큼 푸짐함으로 다가온 그녀에게서 학창시절의 그녀를 떠올리는 건 거의 불가능 하다 싶었다.  그래도 변치 않은 건 깔깔대는 웃음과 애교 있는 목소리.  그녀 자신도 이번 모임으로 충격을 받아 몸매 관리에 들어간다고 하니 두고 볼 일이다.

  15명의 친구들이 살아온 얘기, 사는 얘기 등을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다 시간이 되자 뿔뿔이 흩어진 후 나는 가슴 속에 깊이 남아 있는 친구 A를 만나기로 약속하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명석한 두뇌와 투쟁하듯 공부하던 그녀는 전교 1등을 한 번도 놓쳐보지 않았고, 글짓기에서 조차 장원을 도맡아 해서 늘 경쟁에서 뒤지는 나로서는 그녀가 편치만은 않았다.  그러나 서로에 대한 호기심만 갖고 지내던 우리가 담박 가슴을 열고 '친구'가 된 계기는 작가 이외수의 <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라는 수필집 한 권에서 부터다.  이 수필집에서 이외수가 노래한 강원도 춘천은 문학소녀였던 우리들 가슴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비둘기호 기차를 타고 밤새 달려가 만나는 안개 낀 춘천의 가을 새벽, 이슬에 흠뻑 젖은 코스모스길, 고요한 소양강 등을 그리며 우리는 날이면 날마다 춘천을 입에 달았다.  화요일로 기억되던 어느 날, 그녀가 내게 밤기차를 타고 함께 춘천으로 가서 우수에 젖은 강원도를 만나자고 했다.  소심한 모범생이었던 나는 절대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주말에 생각해 보자고 했다.   다음 날 그녀가 결석을 했다.  결국 그녀 혼자 이외수의 수필집 한권을 손에 쥐고 밤기차를 타고 그곳으로 갔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용감한 A가 무작정 좋아졌다.  오락시간이면 앞에 나가 김수희의 '가로등도 졸고 있는 비오는 골목길에...'를 능청스런 율동과 함께 노래하던 그녀. 모르는 수학문제 들고 가면 척척 풀어주던 그녀가 한 없이 좋아졌을 무렵 우리는 졸업을 맞았다.

  A는 사랑을 함에 있어서도 용감했다.  졸업 후 아르바이트 하던 직장에서 남자를 만났고, 집안의 극구 반대도 무릅쓰고 보따리 하나 달랑 싸들고 사랑 하나로 처절히도 가난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석유곤로에 냄비 올려놓고 밥해 먹는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았을 때 그녀가 문을 열고 내 앞에 나타났다.  많이 예뻐지고 밝아진 그녀 모습을 보며 감사함을 느꼈다.  유치원 원장이 됐단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을 뚫고 나와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내 친구 A.  

  마음 맞는 친구와 가슴 밑바닥에 남아 한 번도 꺼내보지 못했던 고민들을 얘기하며 우리는 다시 작가 이외수를 얘기하던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그녀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던 그날 저녁, 뒤늦은 겨울 한파가 몰아쳐 온 거리가 꽁꽁 얼어붙었지만 내 가슴만은 훈훈한 온기가 가득 차 있음은 잃어버렸던 우정을 되찾았기 때문이리라.

  세상을 살아오면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지만 10대에 만난 친구들과의 우정은 그 빛깔과 무게가 남다르다.  서로 연락이 끊겼다가도 수십 년 후에 만나 서슴없이 그 시절로 돌아가는 옛 친구들이 있고, 언제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글: 로사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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