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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명 미스 홍콩의 인생길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6-04-27 10:5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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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3호, 4월28일] 홍콩TVB가 주최한 "미스홍콩선발대회"는 중국인들의 성대한 대회였으나 최근 들어 이전보다 관심이 줄어들면서 평범한 대회가 되었다..
[제123호, 4월28일]

홍콩TVB가 주최한 "미스홍콩선발대회"는 중국인들의 성대한 대회였으나 최근 들어 이전보다 관심이 줄어들면서 평범한 대회가 되었다.

  "미스홍콩선발대회"는 1973년 홍콩 TVB의 주최로 시작되었다.  80년대 초기에서 90년대 중기까지 많은 사랑을 받았던 10여 년 동안 홍콩의 경제는 급성장하고 있었고, 연예계 또한 전성기였다.  "미스 홍콩"은 홍콩에서 "스타의 꿈"을 실현하는 무대라고 할 수 있었다.

  1988년 1등 이었던 "미스 홍콩 퀸" 이가흔, 1983년 2등은 "홍콩영화계의 여왕"인 장만옥, 1982년의 옹미령, 1990년의 원용의 등이며, 이들은 홍콩의 한 시대를 눈부시게 빛내주었다.

  이와 함께 TVB는 미스 홍콩을 발판으로 홍콩 방송계에서 "왕의 자리"를 견고케 했다.  사실 좁은 홍콩 땅에서 인재를 발굴해 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전 연예계의 흥성은 중국 대륙의 낙후한 환경으로 인해 빛을 보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근래, 대륙의 연예계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각종 미인대회가 개최되고, "미스 홍콩"의 매력과 신선함은
점점 사라졌다.

  2004년 미스 홍콩 서자산은 고정된 "괘도"만 달리고 있고, 2005년 미스홍콩 엽취취도 현재 "TVB"에서만 활동하고 있다.

기존 미스 홍콩 33명은 연예계 스타와 가정주부로 크게 두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1977년 미스 홍콩 주령령은 홍콩 갑부 확진정와 결혼했고, 1984년 미스 홍콩 고려홍은 홍금보와 결혼, 1985년 미스 홍콩 사녕는 영화인 잠건훈과 결혼했다.  이 밖에, 1991년 미스 홍콩 곽애명은 유성운과 결혼, 1992년 미스 홍콩 노숙의는 유명가수 이각근의 여자친구가 되었다.

  미스 홍콩이 예쁜 얼굴만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1979년 미스 홍콩 정문아는 26세에 "노출" 누드 화보를 출판하고, 하루만에 5만권을 매출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녀는 1991년 결혼 후 연예계에서 은퇴해 피나는 노력으로 홍콩에서 최초로 중국인 직업 골프선수가 되었다.  이 외에 1987년 미스 홍콩 양보령, 1993년 미스 홍콩 막가흔도 상업계에서 자신만의 세상을 창출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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