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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홍콩유감 [有感](3) - 다양한 언어적 환경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6-05-02 13:3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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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4호, 5월4일]   지난 달 24일로 이곳에 터를 잡은 지 12년이 되었다.  딱 부러진 광동어도 격식에 맞는 ..
[제124호, 5월4일]

  지난 달 24일로 이곳에 터를 잡은 지 12년이 되었다.  딱 부러진 광동어도 격식에 맞는 영어도, 악착같이 배워야 한다는 의지를 박약하게 만드는 환경 덕에 영어도 중학생 때 배운 그 수준, 광동어도 맨날 같은 수준의 말만 계속해서 우려내고 있는 형편이나 위로를 삼을 만한 것이 있다면 두 가지 모두 들은 풍월[風月]은, 겨울 해질녘 야외에 벗어둔 외투가 언제 내렸는지도 모르는 이슬로 촉촉하게 젖듯이, 부지불식간에 차곡차곡 쌓여 말은 잘 못해도 듣기에 있어서는 많은 진보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환경이 때로는 동전의 양면처럼 이점[利點]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첫째는, 어눌하며 개미 쳇바퀴 돌 듯 하는 영어일지언정 사용할 기회는 영어 모국어자만 그득한 곳보다 더 많다는 것이다.  내 아이들의 학교는 지역적인 특성상 동양인이 압도적으로 많다.  물론 일본사람을 제외하곤 학교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동양 엄마들은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지만 왠지 외모에서 느끼는 친근함 때문인지 쉽게 말을 트게 된다.

  둘째는, 다양한 악센트의 영어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체증[滯症]과 몸살로 병원에 갔었는데 홍콩인 의사의 영어를 알아듣기가 정말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중·고교 시절 들은 영어는,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된 순 미국식 영어 아니면 선생님들의 5,60년대의 순 한국식 영어 발음이었으니.  이따금 병원에 갈 때면 나이 지긋한 홍콩의사의 따발총 같은 광동어 악센트의 영어를 거의 다 소화해내는 지금의 나를 발견하곤 12년 전의 난감함이 떠올라 새삼 웃음 짓게 된다.  그 밖에도 인도, 필리핀, 일본, 스코틀랜드, 호주, 캐나다, 영국… 소화는 아직 잘 못하지만 그들의 모국어 액센트와 어쩜 그렇게도 닮은 각색의 영어에 노출될 수 있으니 이 또한 행운이라 하겠다.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한 엄마의 말에 의하면, 다양한 악센트의 영어를 접하는 것이 표준영어만 접하는 것보다 아이들에게도 더 도움이 된다고 한다(사실 이곳에 살면서 표준영어라는 기준이 과연 무엇일까라는 의구심도 들지만).  아이들이 이상한(?) 악센트와 발음을 배워 그대로 굳어질까봐 걱정할 필요는 거의 없단다.  어릴 때는 그런 현상이 좀 나타날 수도 있지만 커 가면서 자연히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를 구사하게 되니까.  물론 영어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분의 생각은 다를지도 모르나 내 아이들만 봐도 난 그 엄마의 말에 동의한다. 어차피 국제사회에서 살아갈 아이들인데 "흥, 저 사람 영어는 영 요상해서 못 알아듣겠어!" 라고 불평만 한다면 자신에게 이로울 것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셋째는, 아이들을 '영어만 할 줄 아는 아이' 로 자라게 하는 환경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TV나 거리 곳곳에서 매일 들려오는 광동어를 꽤 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완전 영어권’ 만이 아닌 언어 환경이 '국어나 중국어에도 관심을 갖고 공부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게 한다고 난 믿고 있다.  사방팔방에서 온통 영어만 들리는 지역보다 영어실력은 좀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나 난 오히려 그런 융통성 있는 환경을 진심으로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다.

  가끔 "우리 애는 한국어를 너무 못 해요."라며 걱정하는 우리나라 엄마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가만히 안 보고 척 보기만 해도 기실[其實]은 "우리 애는 영어만 모국어 사용자같이 너무 잘 한답니다." 자랑하려는 맘이 역력하다.  부모 중 한 쪽이 외국인이거나 영어 상용국[常用國]에서 태어나 우리나라 사람이 거의 없는 지역에서 살았다든지 아니면 엄마가 너무 바쁘다든지 납득이 갈 만한 경우가 아니라면 난 속으로 이렇게 되받곤 한다. '아, 당신의 아이는 한글도 영어도 둘 다 잘 못 하고 영 별로군요.'. 다른 곳도 아닌 홍콩 같은 배경에선 아이가 현재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만이라도 포기하지 말고 관심과 인내를 갖고 모국어를 익혀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영어나 기타 외국어도 잘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물론 여기서 '잘함'이란 그냥 툭툭 던지는 짧은 일상용어 수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휘력이나 작문능력에 있어서도 모국어로 훈련이 잘 된 아이일수록 Second Language로 글을 읽고 쓰는 데에도 익숙하다.  두 언어 중 어느 쪽을 더 편하게 받아들이며 잘 해내는가에 있어서는 개인 차가 있겠지만.


초등학교 인터뷰

  식민지 시절에 비하면 훨씬 수월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엄마들에겐 여전히 신경 쓰이는 일이다.  이 곳 초등학교에 입학할 아이라면 이미 2년 정도 유치원을 보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누가 개인 레슨이라도 시키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왠지... 시키자니 좀 그렇고 안 하자니 가끔 불안해진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일정 기간 레슨을 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너무 큰 기대는 마시길.  그냥 아이에게 영어로 듣고 말하는 환경을 만들어 줌으로써 인터뷰 장면 시에 편하게 응할 수 있게 하자는 정도의 기대면 충분.  고로 깐깐하거나 비싼 레슨비를 요구하는 선생님은 피하는 것이 좋을 듯.

  하지만 아이가 어느 정도 영어를 편하게 한다면 이 단계에서 레슨은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유치원이 3시간 반일제라 좀 성에 안 찬다면 인터뷰 앞둔 몇 달간 엄마가 아이에게 영어를 써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아이고 내 틀린 영어와 발음 따라하면 어째' 하는 걱정은 하지 말고. 영어환경에 친근하도록 도와주자는 것이지 엄마가 조목조목 가르치려는 의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단 이 시기는 부모 입을 통해 모국어를 익히는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니 두 가지 언어를 적절히 병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집 밖에서라면 "잘도 못 하면서 애한테 웬 영어? 티 내긴!.." 하는 우리나라 엄마의 따가운 시선도 눈 딱 감고 모른 척 해야 한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입학해 긴 시간 학교에 머물게 된 후에는 엄마는 철저히 모국어로 돌아와 우리 말 들을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자녀에게 고운 우리말을 많이 써 주면 될 성 싶다.
  
(계속) 글 :  J.Y. J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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