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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중국 중국인 - 13. 돈 먹고 물건 안나올까봐 …'자판기 문화' 뿌리 못내려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6-06-01 17: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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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8호, 6월2일]   빨간색으로 큼지막하게 복(福)자를 써놓은 중국 집 대문을 자주 본다.  결혼식장 등 뭔가 기..
[제128호, 6월2일]

  빨간색으로 큼지막하게 복(福)자를 써놓은 중국 집 대문을 자주 본다.  결혼식장 등 뭔가 기쁨을 더해야 하는 자리에도 이 복이라는 글자는 단골로 등장한다.  때로는 이 복자를 거꾸로 붙여놓기도 한다.  거꾸로 라는 뜻의 다오(倒)가 도착했다는 뜻의 다오(到)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복이 왔으면 한다는 바람의 표시다.  녹(祿)이라는 글자도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는다.  사전적 정의는 과거 벼슬아치들의 급여다. 현재는 이익 또는 도움이나 은혜의 뜻으로 쓰인다.

  복과 녹은 중국인이 얼마나 현세 또는 현실 지향적인가 하는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중국인들의 민속 종교조차 현세의 복록을 구하는 것에 초점이 있다.  중국 민속신(民俗神)의 그림을 보면 이 복과 녹의 두 글자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중국인들은 호리병박 또는 조롱박으로 불리는 후루(葫蘆)에 대해 이상하리만큼 친밀감을 보인다.  복록의 중국어 발음인 푸루가 후루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최근 CNN의 한 광고를 보면 한 중국인 사업가가 조롱박을 사무실 창문에 거는 장면이 나온다.  복이 오기를, 즉 사업 번창을 바라는 마음을 대변한 것이다.  조롱박 후루는 중국인의 다섯 가지 복을 상징한다.  우선 조롱박이 어느 곳에서나 잘 자란다는 의미에서 생명력을 상징한다.  둘째는 식품 또는 그릇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편의성이다.  셋째는 큰 조롱박을 허리에 차면 물을 건널 수 있다는 의미로 위기로부터의 탈출을, 넷째는 남의 어려움을 도와준다는 뜻에서 적선(積善)을, 다섯째는 박 속에는 씨앗이 많다는 까닭에 번식력을 상징한다.

  결국 조롱박은 중국인들에게 복록과 생명력(壽), 기쁨(喜), 재물(財)을 모두 가져다주는 상징인 셈이다.  후루에 대한 친근감과 애정에서 보이듯 중국인들이 지향하는 가치는 매우 현세적이다.  돈과 황금에 대한 추구는 광둥(廣東)성에서 아예 황금을 초정
밀 기술로 가공, 얇은 금박(金箔)으로 만들어 씹어 먹는 행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숫자 8의 발음 '바'가 중국어로 돈을 벌다(發財)라는 뜻의 파(發)와 발음이 유사해 숫자 중의 으뜸으로 꼽힌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현금을 유난히도 좋아하는 까닭에 중국에서는 자판기(自販機) 문화가 뿌리내리기 힘들다고 한다.  직접 돈을 주고받아야 마음이 놓이는 중국인들이다.  돈을 들이밀었다가 그냥 삼켜버릴지도 모르는 자판기는 영 믿음직스럽지가 않다.  때문에 중국의 거리에 등장했던 자판기에 먼지가 수북이 쌓이고 끝내 깨져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초현대식 오피스 빌딩에도 자판기는 좀처럼 등장할 기미가 없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를 떠나보내는 장례 풍경도 무척이나 현세적이다.  장례식에서 고인을 위해 준비하는 지전(紙錢)이 그 예다.  인민폐의 최고액권은 100위안.  그러나 지전은 거기에 꽤 많은 0이 붙는다.  100위안의 1000배가 넘는 10만위안짜리 지전이 흔하다.  아파트와 호화 별장, 고급 승용차가 그려진 지전도 많다.  대만에선 신용카드가 그려진 지전이 등장해 주요 일간지의 머리기사를 장식한 적도 있다.

  중국 고전 동양화에서도 현세지향의 의식은 빛을 발한다.  사람의 안녕과 장수를 비는 게 많다.  예를 들면 메추라기(?)를 그려놓고 발음이 같은 평안함의 안(安)을 기원한다.  또 대나무(竹)와 돌(石)을 그린 뒤 발음이 비슷한 축수
祝壽:장수를 축원하다)를 바란다.

   현금과 복락(福樂), 그리고 장수(長壽)에의 꿈은 인류의 보편적 소망이다.  그러나 중국인의 그에 대한 갈구는 두드러져 보인다.  그렇다고 그들을 흉볼 일도 아니다.  중국엔 "태평성세의 강아지가 될지언정, 난세의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寧爲太平狗, 不作亂世人)"는 속어가 있다.  수많은 전란을 겪으며 생겨난 말이다.
  금전에 집착하고 현세의 복락을 추구하는 중국인들의 마음 근저엔 난세를 벗어나고픈 그들의 절절한 소망이 담겨 있는 것이다.


출처 : 중앙일보(베이징=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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