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새 산문집 《기다리는 행복》을 펴낸 이해인 수녀는 2008년 대장암 판정을 받고 수술에 들어가기 직전, 주치의가 보내준 문자메시지를 지금도 외우고 있답니..
얼마 전 새 산문집 《기다리는 행복》을 펴낸 이해인 수녀는 2008년 대장암 판정을 받고 수술에 들어가기 직전, 주치의가 보내준 문자메시지를 지금도 외우고 있답니다. “수녀님, 한 몸 크게 수리해서 더 좋은 몸 받는다고 여기세요.” 그가 ‘언어가 주는 영향력’을 강하게 느낀 계기가 됐답니다.
수녀는 의사에게 “명랑 투병 하겠다”고 큰소리쳤고, 단 한 번도 병 때문에 푸념한 적은 없지만 마음속의 상처를 온전히 덮을 수는 없었답니다. “항암 치료를 할 때마다 배를 덮던 분홍색 수건을 치료가 끝난 뒤 다시 보는데 눈물이 나더군요.”(한국경제신문 2017년 12월22일자 A27면, “수녀복 단추 달 때 행복”)
세상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예상치 못한 시련과 아픔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 어려움에 빠진 사람에게 위로의 뜻으로 건네는 말이 너무 상투적이어서, 위로는커녕 마음을 더 불편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들도 잘 견뎠어. 그러니까 너도 할 수 있어”라든가 “네가 어떤 기분인지 알아. 용기를 내!” 같은 말입니다.
한국경제신문 1월8일자 A32면 <한경에세이: 괜찮아요>는 성백현 서울가정법원장이 가정보호사건을 심리하면서 느낀 소감을 들려주는 글입니다. “가족 간의 폭력이 문제가 된 가정보호사건은 일반 형사 절차와 달리 가정의 회복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벌금이나 징역형같이 일회적인 형사 처분이 아니라, 가족 내 갈등의 주된 원인을 파악해 근본적인 해결 방법을 모색한다.”
그런데 이렇게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판사들이 봉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피해자가 괜찮다고 하는데, 왜 법원에서 오라 가라 하느냐”는 가족들의 항의입니다. “정말 괜찮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정 폭력 피해자에게 ‘괜찮아요?’라고 물으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성 법원장의 경험담입니다. “몸의 상처가 아물었으니 괜찮다고 해야 하는 건지, 가해자와의 관계를 생각해서 괜찮아야 하는 것인지…. 괜찮다는 건 걱정이 되거나 꺼릴 것이 없는 상태라는 것인데 오히려 괜찮지 않다고 대답할 수 없는 심리 상태에서 나온, 대안이 없는 대답일 수 있다.”
“가정폭력의 피해자에겐 ‘괜찮아요?’가 아니라 ‘아프죠’ ‘힘들죠’라고 물어봐야 한다”는 그의 말을 새깁니다. “평생을 순풍에 돛 단 듯 흘러가는 인생이 있으랴. 누구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하는 시간을 맞닥뜨리고 극복해간다. 가족이 큰 힘이 되는 순간이다.”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이학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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