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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홍콩유감 [有感](5) - 촌지…… 학예회…… 반성……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6-06-01 18:2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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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8호, 6월2일] 촌지(寸志)--- 속으로부터 우러나온 마음을 나타낸 작은 선물 학예회--- 학교에서 예능발표나 학예품을 진열하여 보이는 특별교육활..
[제128호, 6월2일]

촌지(寸志)--- 속으로부터 우러나온 마음을 나타낸 작은 선물
학예회--- 학교에서 예능발표나 학예품을 진열하여 보이는 특별교육활동의 하나.
반성(反省)--- 잘못이나 허물이 없었는지 돌이켜 생각하는 것.  


  '심수봉' 노래얘기를 하다가 내친 김에 꺼내본 묵은 CD들.  PLAY 버튼을 누르자마자 들려오는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듯한 전자피아노의 전주, 쳐졌던 몸과 맘을 화들짝 일으켜 세운다.

  오래 전 쌀쌀했던 봄날 서울 변두리의 중학교 교생이던 난, 아이들이 담임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을 적은 종이뭉치를 보게 되었다.  그 중 빈번히 등장하는 말은   "선생님, 항상 공평히 대해 주셔서 참 좋아요" 라는 것이었는데 내가 배치된 반의 담임선생님은 내 언니뻘 되는 나이의 여자분 이셨다.  항상 보송보송하게 화장한 고운 피부에 두 귀엔 달랑달랑 예쁜 귀걸이가 빛나고 있었다.  내 눈엔 황량하게만 보이던 여느 '유부녀' 선생님들과는 참 다른 분이셨다.  선생님은 모범생도 예뻐하셨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나 좀 삐딱한 구석이 보이는 애들에게도 진정으로 애정을 갖고 다가가셨다.  실습이 끝나갈 무렵 가진 모임에서 한창 유행하던 '나 항상 그대를' 을 뒷부분 조옮김되는 절정부분까지 시원스레 소화해 내시던 그 분은 내 기억 속에서 빛을 발하는 선생님들 중 한 분이시다.    

  얼마 전, 부산의 한 여교사가 학부모들에게 노골적으로 촌지요구 압력을 넣다가 들통 났다는 기사를 보았다.  눈치 보며 맘고생 했을 아이들과 그 부모의 심정이 남의 맘 같지 않았다.  이쯤 되면 '촌지'는 순수하고 소박한 사전적인 본 의미를 상당히 벗어나있다고 할 수 있는데…  초등학생 때 난 한동안 방송실 청소를 맡은 적이 있는데 어느 날인가, 청소를 막 시작하려는데 선생님 한 분이 학부모와 방송실로 들어오시면서 "좀 있다 하면 안되겠니?" 하고, 멀찍이 나가 있다 다시 들어와 또 막 빗자루를 들려고 하면 또 다른 분이 한 엄마를 모시고 와서는 "자리 좀 비켜 주겠니? 좀 있다가…" 하시니 감히 안 된다고 말도 못하고 집에 무척 늦게 돌아가 엄마에게 꾸중 들었던 기억이 있다.  왜 선생님들이 어둡고 침침한 방송실에서 엄마들을 조용히(?) 만나야 했는지 어린 맘에도 어렴풋이 '느낌'이 왔다.

  몇 년 전 아들의 국어공부를 도와주다가 읽은 '현이의 연극' 이란 수필이 떠오른다.

  "연극을 보기 위해 시민회관에 부랴부랴 도착한 엄마는 풀잎 역을 하게 되었다면서 연습하느라 학교에서 늦게 돌아오곤 하던 현이를 생각하며 흥분과 기대감에 부푼다.  그러나 무대의 배경인 숲 속에 대열을 이루고 쪼그리고 앉아있는 여러 명의 풀잎 중 하나인 현이를 발견하곤 야릇한 서글픔으로 실망하고 만다.  연극은 어느덧 끝나고 현이는 자기 연기(?)를 보았냐고 엄마에게 묻는다.  얼버무리는 엄마에게 자신이 한 작은 실수를 말하며 엄마가 그걸 못 알아차린 걸 다행으로 여긴다.  하잘것 없는 역할에도 최선을 다한 현이의 성실하고 순수한 맘에 엄마는 미안함을 느끼며 감동한다."

  나도 두 아이 학부모 경력 12년에 열 손가락으로 세도 모자랄 만큼 아이들 학예회에 가보았기에 현이 엄마의 맘이 가슴 깊이 전해져 왔다. 제아무리 다른 아이가 주연을 맡아 기막힌 연기를 한다 해도 공연 내내 엄마의 시선은 내 아이에게 대부분 맞춰져 있으며 비록 '행인 No.1' 이더라도 내 아이가 등장하면 가슴이 콩당콩당 뛰는 것이 아이의 손놀림 하나 미묘한 표정변화만으로도 뿌듯한 만족감을 느낀다는 사실...  주연배우에게 찬사를 보낼 수는 있어도 가장 대견한 것은 역시 내 새끼란 사실 말이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현재 홍콩에 살고 있는' 나의 소회(所懷)라는 한계가 있다.

  그 옛날, 뱁새가 황새 따라가는 격으로 내 큰 언니를 유치원에 넣었던 엄마는 언니가 학예회에서든 교실에서든 찬밥신세 되는 걸 보시곤 심히 맘이 언짢아 난 학교 입학 전까지 집 마루에서 마냥 놀게 하셨다.  도시에서나 그랬지 시골은 어디……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초등학교 시절, 이런저런 행사 때면 엄마들은 내 아이가 앞에 섰나 뒤에 섰나 말을 몇 마디나 하나 저 잔뜩 혼자 말 다하는 애의 엄만 도대체 누군가 겉으론 웃고 있어도 머리 꼭지가 아플 정도로 안테나를 곧추 세우고들 계셨다.

  학예회 준비기간 중 내 딸은 현이처럼 이런저런 얘기들을 해주곤 했는데 캐스팅과정에 관한 얘기는 꼭 들어있었다.  저학년의 경우엔 좀 다르지만 윗 학년의 경우 선생님이 우선 이 역할하고 싶은 사람 손들어보라 하곤 후속 조율[調律]을 걸쳐 배역을 결정하는데 캐스팅 못 된 아이에겐 이유를 설명해주면서 차선책을 제시한단다.  예전에 딸애는 주로 눈에 안 띄는 역할을 했으나 요즘엔 하고 싶다고 스스로 손  드는 경우도 있어 목소리가 간간이 들리는 역을 맡기도 한다.  작년 공연 때 어떤 아이가 강아지 역할을 맡아 내내 '멍멍' 소리만 내고 끝나 길래 "걔네 엄만 좀 섭섭하겠다" 극히 통속적인 말을 했더니 딸 아이 왈 "걔가 하고 싶다고 손들어서 하게 된 거에요."… 나도 자식 가진, 때론 유치찬란한 평범한 엄마인지라 내 아이가 주요 배역 맡는 것이 단역하거나 여럿이서 노래만 부르고 끝나는 것보다 더 기쁜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아이가 무슨 역을 맡건 여럿이 외치기만 하다 끝나건 뭔가 흑막(黑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번도 없다.  그저 저녁에 아이에게 "잘 했는데 다음엔 OO역할 같은 것도 좀 해보겠다고 적극적으로 손들어보렴."  엄마의 욕심이 담긴 말 한 마디를 덧붙였을 뿐이다. 그러나 내가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교양 있고 우아한 반응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여기에도 맘에 안 드는 교사는 있다. 꽤 많은 연봉 받아가며 교재연구는 하는지 안하는지 도통 모르겠고 매사에 성의도 없다.  그러나 그런 교사들일지라도 아이들을 차별한다는 느낌을 준 적은 적어도 내겐 없다.  무관심한 교사는 모든 부모들이 이구동성으로 알아차리고 "올해 우리 아이들이 좀 운이 없군요."  서로 얘기하며, 꼼꼼하고 의욕적인 선생님은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이 열심이다. 국제도시 속 국제학교가 갖는 이점 중의 큰 이점이랄까.

  외부강사가 가르치는 학교 댄스클럽 발표회가 있던 날, 키가 작은 내 애가 맨 뒤 구석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일그러졌던 내 얼굴은 두 번째 음악이 시작되자 버터 녹듯 풀려버렸다.  15명 남짓한 애들을 잘 추고 못 추고에 상관없이 매 순서마다  공평하게 자리 이동시켜 한 부모도 자신의 아이를 잘 보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세심하게 배려한 흔적이 역력했다.  키 큰 아이라고 뒤에만 세우면 키 큰 것이 뭔 죄라고 그 엄마는 아이 상체만 보다가 끝날 것 아닌가.  혹 그것이 비즈니스적인 계산된 배려일지라도 결혼도 안한 처자(處子)들의 그 맘 씀씀이가 참으로 살가웠다.

  교사가 되고 싶은 바램을 난 이루지는 못했다.  아마도 "넌 아직 안돼. 더 많이 인생 공부하고 나중에나 보자."  어떤 분의 계획적인 비켜감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곤 한다.  어쩌면, 날 닮아 밥 천천히 먹기로 유명한 내 딸은 15분 내로 밥 안 먹으면 50번의 반성문을 쓰라는 주문에 '지우개로 아무리 지워도 흔적이 남는 꾹꾹 눌러 쓴 연필자국' 같은 상처를 이 찬란한 계절에 간직하게 되었을는지도 모른다. 그 애 일이 아님에 가슴을 쓸어내리지만 나만 운 좋게 면제받은 것 같은 미안한 씁쓸함은 요 며칠, 내 맘속에서 잘 나가주질 않는다.

  홍콩의 로컬학교에도 촌지(왜곡된 의미의)가 있을까? '홍콩유감'이란 타이틀 값을 좀 하려고 남편에게 거래처 아줌마들에게 넌즈시 물어보라 얘기했건만 협조하지 않았다.

  'School, Bribery, Teacher…' 영 안 어울리는 이 Word Family의 관계를 이해시킨 후에야 물을 수 있으니 영 껄끄러웠나 보다.

[계속] 글 ; J.Y. J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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