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으로부터 본격적인 학문 연마를 지시받은 제자가 쭈뼛거리며 말했습니다.
“저는 둔하고, 막혔고, 미련해서 안 됩니다.”
스승이 말했습니다.
“배우는 사람에게 병통(탈이 생기는 원인)이 세 가지 있는데, 네게는 그것이 없구나. 외우는 데 빠르면 소홀하고, 글짓기에 날래면 부실하고, 깨달음이 재빠르면 거칠다. 둔한데도 파고들면 구멍이 넓어지고, 막힌 것을 틔우면 소통이 커지고, 어리숙한 것을 연마하면 빛이 난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된 뒤 첫 제자로 삼은 열다섯 살 황상과 주고받은 말입니다.
한국경제신문 3월2일자 A34면 칼럼 <고두현의 문화살롱: 다산의 ‘3·3·3 공부법’과 목민심서>는 다산이 황상에게 학문하는 ‘비법’을 알려준 대목도 소개했습니다.
“파고드는 것은 어떻게 하느냐? 부지런하면(勤) 된다. 틔우는 것은 어떻게 하느냐? 부지런하면(勤) 된다. 연마는 어떻게 하느냐? 부지런하면(勤) 된다.”
그가 첫 제자에게 가르침을 준 곳은 오지(奧地) 강진의 주막집 뒷방이었습니다.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유배생활에 내몰렸지만, 그에게는 강인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유배지의 누추한 방에 ‘사의재(四宜齋)’라는 이름을 붙이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생각(思)과 용모(貌), 말(言), 행동(動) 네 가지를 반듯하게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다산은 책을 읽을 때도 뜻을 새겨 가며 깊이 읽는 정독(精讀)을 중시했다. 꼼꼼하게 읽지 않으면 글의 의미와 맛을 제대로 음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요한 부분을 발췌해서 옮겨 쓰는 초서(抄書)도 귀하게 생각했다. 이를 항아리에 담아뒀다 하나씩 꺼내 읽곤 했다.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낀 점, 깨달은 것들을 기록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정독하고, 초서하고, 메모하는’ 세 가지가 다산의 ‘삼독법’이었다. 500여 권의 저서를 남길 수 있었던 비결이 여기에 있다.”
다산이 공부를 시작하면 얼마나 집요하고 치열하게 집중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느라 복사뼈(踝骨)에 구멍(穿)이 세 번이나 났다. ‘과골삼천(踝骨三穿)’의 명예로운 흉터였다. 앉을 수가 없자 선 채로 책을 읽었다. 공자가 책 가죽끈(韋編)이 세 번 끊어질(絶) 정도로 독서에 매진했다는 위편삼절(韋編三絶)의 고사보다 더했다.”
올해는 다산이 대표저서인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완성한 지 200년 되는 해입니다. 48권 분량의 이 책에서 그는 관리들의 폐해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지방 수령에게 꼭 필요한 지침을 제시했습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예비후보등록이 시작됐습니다. 관직(官職) 출사표를 던진 이들만이 아니라, 세상 살아가는 모두가 갖춰야 할 ‘기본’에 대한 가르침을 새깁니다.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이학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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