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홍콩 음식문화의 역사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6-06-15 11:58:06
기사수정
  • [제129호, 6월16일]   사람들은 홍콩을 미식(美食)천국이라고 한다.  홍콩은 동서양 문화가 교차하는 도시로서, 중..
[제129호, 6월16일]

  사람들은 홍콩을 미식(美食)천국이라고 한다.  홍콩은 동서양 문화가 교차하는 도시로서, 중화요리와 서양요리를 혼합시킨 음식문화가 형성되었으며 한국, 일본, 베트남, 태국, 인도 등의 음식점을 홍콩에서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비록 홍콩에서 세계 각국의 미식을 맛볼 수 있다고는 하지만 홍콩인의 입맛에 맞게 변화되어 원래의 맛을 찾기 힘들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도입된 음식문화는 홍콩의 음식문화와 역사를 더욱 풍성하게 변모시켰다.

  홍콩의 차찬탱(茶餐廳)은 바쁜 홍콩인들의 하루식사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홍콩의 밀크티, 양식 스파게티, 접시덮밥 등 저렴하고 다양한 음식은 홍콩만이 가진 특색이 되었다.  도시에 빽빽하게 들어선 음식점은 홍콩의 경제 그래프와 같아서 음식업이 발달할수록 경제도 번성하기 때문에 음식업은 홍콩문화를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고리이다.

  최근, 홍콩역사박물관 명예고문 정보학은 홍콩중앙도서관에서 "낡은 사진 이야기-홍콩의 음식장소"라는 강의를 열고 찻집, 식당, 아이스 숍, 양식 레스토랑, 차찬탱 등의 역사 및 변천에 대한 홍콩 음식장소를 소개한 바 있어, 이를 발췌해 싣는다.

  정보학 고문은 홍콩 음식업 역사에 대해 낡은 사진을 한 장 한 장 들어가며 행화루(杏花樓), 득운다루(得雲茶樓), 고승대다루(高陞大茶樓), 평향다루(平香茶樓), 득남다실(得男茶室), 대동주가(大同酒家), 육우다실(陸羽茶室) 등의 이름들을 외우면서 설명했다.

  사실 우리가 현재 자주 가는 식당은 원래 다루(茶樓)나 다실(茶室)로 불리었고, 일찍이 청나라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그 옛날, 홍콩은 광주의 유행을 쫓았다.

  "이전 홍콩의 다루(茶樓)는 광주에서 건너온 것이며 심지어 연향, 고성 등 다루(茶樓)의 자호(字號)도 광주에서 가져온 것이다."

  다루(茶樓)는 주로 차를 마시고 딤섬을 먹는 곳으로, 기타 요리를 제공하지 않았다.  이전의 주루(酒樓, 식당)는 주로 술을 마시는 곳이나 이후에 점점 다루(茶樓)의 영업을 겸하게 되어 단순히 딤섬만 제공하던 다루(茶樓)는 오히려 도태되었다.  이전의 다루(茶樓)는 찻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선물용 쿠키도 함께 판매하여 경영만 잘하면 몇 배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다루(茶樓)는 손님을 끌어들여 '시집병(餠)'을 팔기 위해 좋은 뜻이 담긴 이름을 사용했고, 당시 홍콩인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아야만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다루(茶樓)는 '男'자가 있는 자호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 예로 득남다루(得男茶樓)가 있다."

  홍콩 다루(茶樓)에 무대가 세워진 것은 약 1922년부터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이 대중화 되지 않던 당시,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별다른 오락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식사 후 다루(茶樓)에 가서 노래를 들었다.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고급 다루(茶樓)는 가수무대를 만들었고, 당시 여자가수는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매일 가수들은 밤새 여러 장소로 옮겨 다녔고, 수입이 매우 높았다.  그 후 텔레비전이 널리 보급되면서 밤무대는 점점 다루(茶樓)에서 사라졌다.

  90년대 중기 홍콩에 "음야차(飮夜茶, 밤에 마시는 차)"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일부 식당은 밤 늦게까지 딤섬을 제공했다.  식당은 대부분 저녁메뉴가 따로 정해져 있었으며 일부 식당은 각종 파티(결혼연회, 돌잔치, 단년(團年)밥 등)를 거행했다.

  최근에는 한국요리, 일본요리, 베트남요리, 태국요리 등 외국음식문화가 유행하면서 다루(茶樓) 영업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운영 방식도 차츰 바뀌게 됐다.

  "현재 육우차실(陸羽茶室), 연향루(蓮香樓)가 다루(茶樓) 고유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 기타 다루(茶樓)는 모두 대주점(大酒樓)이나 해물핫팟주점(海鮮火鍋酒家)로 이름을 바꾸었고, 수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으로는 용화대주점 (榮華大酒樓), 용문대주점(龍門大酒樓), 호채해선주점 (好彩海鮮酒家), 복임문해선주점(福臨門海鮮酒家) 등이 있다."

  이 외에, 조기의 다루(茶樓)나 주점(酒樓)의 대부분이 광동식 이었으나 지금은 京川滬(경천호, 북경사천상해), 客家(객가), 潮州(조주)등으로 발전했다.

  다루(茶樓)나 주점(酒樓)은 손님을 많이 끌어들이기 위해 "一盅兩件(주식 하나에 딤섬 두 가지)"로 제한되지 않고 창의성 있고 정교한 딤섬을 많이 선보였다.  차와 딤섬 외에도 해물 핫팟, 음료수, 커피, 밀크티, 디저트 등도 제공된다.

  사회의 발전에 따라 홍콩인의 생활이 긴장되고 바빠져 식사 시간도 점점 짧아지게 되었다.  직장일이 비교적 한가한 사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사를 급히 마쳐야 했는데 이때부터 패스트 푸드점이 흥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홍콩음식문화를 말하려면 차찬탱을 빼놓을 수 없다.  차찬탱은 홍콩 패스트푸드 음식점의 기원이라 할 수 있고, 홍콩특색을 혼합시킨 서양식 음식을 제공하는 평민화된 홍콩의 음식점이다. 홍콩문화가 점차 전파되면서 기타 국가에서도 차찬탱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전, 홍콩 일대 주택가 부근에는 대패당(大牌檔)이 많았다.  전쟁 이후 홍콩은 서양 생활의 영향을 받았으나, 당시 고급 레스토랑에서만 양식을 제공했다.  가격 또한 비싸 중국인들에게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저렴한 가격에 서양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해 冰室(다방) 및 차찬탱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빙실(冰室)은 원래 커피, 밀크티 등 음료수를 제공하는 곳이었으나 지금은 샌드위치, 토스트 등 음식을 판매한다.  부분 빙실은 자체로 빵 공장을 경영하여 신선한 빵과 커스터드, 에그타트 등을 만들었다.

  다루, 차찬탱 외에 홍콩에는 대패당(大牌檔)이 있는데 대패당은 길 가의 가판행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특색있는 홍콩의 음식업 중 하나이다.  대패당은 대부분 좁은 골목길이나 길옆에 가판행상을 열어놓고 옆에 의자를 몇 개를 놓고 손님을 받는다.

  대패당이란 이름은 일찍이 홍콩정부가 대패당(大牌檔) 경영 허가증을 발급하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대패당의 허가증은 일반 점포의 허가증 보다 크기가 커서 눈에 잘 띄는 곳에 걸게 하였고, 커다란 허가증 때문에 "大牌檔"이란 이름이 생기게 되었다.

  대패당의 음식은 중식요리, 볶음면/밥, 죽, 튀김 등 매우 다양하다.  이 외에도 토스트, 샌드위치, 밀크티, 커피 등 서양 음식을 취급하는 곳도 있다. 대패당 요리는 대부분 즉석에서 판매하기 때문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는 맛"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80년대, 정부는 대패당의 음식이 비위생적이고 쉽게 전염병을 퍼트릴 수 있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허가증을 발급하지 않았다.  낡은 허가증의 소지자나 배우자가 사망한 후 가족들은 이를 물려받을 수가 없고, 정부는 현금을 주고 허가증을 회수하면서 정식 식당을 차리도록 유도했다.

  지난해 작년 5월, 많은 홍콩인들로부터 사랑받아왔던 센츄럴 Elgin Street의 民園麵家(민원국수집)는 허가증 소지자가 사망하자 정부가 허가증을 회수하면서 문을 닫았다.   여러 시민들은 이 집이 폐업하기 전에 전통풍미를 다시 한 번 맛보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또한 정부가 다시 이 국수집에 허가증을 발급하길 요구하였으나 결국 7월 30일에 폐업하기로 결정되었다.
0
스탬포드2
홍콩 미술 여행
홍콩영화 향유기
굽네홍콩_GoobneKK
신세계
NRG_TAEKWONDO KOREA
유니월드gif
aci월드와이드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