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수필>홍콩유감 [有感] - 7.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례함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6-07-06 12:20:00
기사수정
  • [제132호, 7월7일]   하루에도 몇 차례씩 안방이 거실, 침실, 식당으로 바뀌는 한옥집에서 17년을 보낸 나는 멀티기능의 안방을 유지..
[제132호, 7월7일]

  하루에도 몇 차례씩 안방이 거실, 침실, 식당으로 바뀌는 한옥집에서 17년을 보낸 나는 멀티기능의 안방을 유지하기 위해 수시로 물걸레를 들고 계시는 엄마를 보며 자랐다.  그래서인지 선반의 뽀얀 먼지는 귀찮으면 일부러 못 본 체하지만 마루바닥 더러운 것은 못 참는 나다.  하지만 매일 긴 손잡이 달린 대걸레로 물걸레질을 하고 그렇지 않아도 시큰거리는 팔로 빡빡 비벼 비틀어 짜 말려야 한다면 참 버겁다.  얄따란 걸레머리만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신식 mop이며 물걸레 청소기까지 나와 있긴 하지만 그도 저도 번거로운 것은 내겐 매한가지.  그래서 난, 먼지를 사랑한 나머지 자신에게 착착 붙여버리는 일본산 펄프종이 청소도구를 너무 좋아한다.  평소 일본인을 그리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나지만 아이디어를 제품개발로 곧장 연결시키는 그들의 발 빠름에 감탄해 청소할 때만큼은 물리지 않는 찬사를 반복하게 된다.  종이 청소로 성이 안 찰 때는 가끔 진공청소기를 돌려준 후 대걸레로 문질러주는 데에 만족하고.  근본적인 문제해결은 안 되지만 그때그때 미봉책(彌縫策)으로 '펄프 자루'만한 도구가 내게는 없다.

  자고 나면 반복되는 집안 일 중 요즘 한 가지가 더 늘었다. 하루 두 번 에어컨 밑에 잘 조준[照準]해둔 플라스틱 통 안의 물을 버리는 일이다.  작년 여름 큰 맘 먹고 청소업체에 의뢰해 대대적으로 에어컨 청소를 했기에 올해는 건너뛰었는데 벌써 한 달 넘게 물이 똑똑똑...  다행히 문제의 에어컨 밑엔 높은 붙박이장이 설치되어있어 커다란 통을 받쳐두니 빈한한 집 새는 지붕 밑에 양은대야 받쳐놓은 행색이다. 홍콩에 살면서 내가 가장 꺼리는 일 중 하나는 수선공이나 배달원을 맞는 일이다. 내가 만난 그들은 9시에서 1시 사이로 약속하면  1시가 훨씬 넘어서 나타났으며 모두 남자였고 대부분 지저분하고 무례했으며 광동어만 할 줄 알았다.  우리가 광동어를 해야지 그들에게 영어를 기대하는 것이 무리인 것은 알지만 서울에서 막 이주해온 직후일수록 집안에 손 볼 것이 많고도 많은 법. 이곳 생활 초창기 광동어 한마디도 모를 땐 정말 답답하기만 했다.

초이 하이 음꺼이 (除鞋唔該)
  우선 부닥치는 문제는 '신발을 벗길 것인가 말 것인가' 이다.  실내에서도 신을 신은 채 사는 홍콩인들이다 보니 내가 현관에서 '초이 하이 음꺼이' 하면 싫은 기색을 역력히 내보이며 구시렁거리기 일쑤고 어떤 이들은 벗기를 완강히 거부하기도 했다.  그들의 이유 있는 변명인 즉, 맨발로 드릴을 갖고 일하다가 전기쇼크가 올 수 있다나?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으나 맞는 말인지 확인해 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후에 일하러 온 이들 중 순순히 신을 벗고 들어와 조용하게 무사히 일하고 간 이들은 뭐며 서울 살 때 당연히 신 벗고 들어와 몇 시간 씩 일하던 보수센터 아저씨는 또 뭔가.  설사 전기쇼크의 가능성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렇다면 냉장고면 냉장고 옆, 욕실이면 욕실 위험한 그 장소에서만 신을 신으면 되지 이리저리 집안을 헤집고 다니며 다른 곳까지 온통 흙바닥 만드는 건 뭔지.  신고 벗는 일이 귀찮다고 대대적인 집수리도 아닌데 남의 집을 온통 더럽혀도 된단 말인가.  신문지를 깔아도 주의 안하고 마구 다니니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사고(事故)나면 네가 책임질 거냐는 꽥꽥거림에 물러서고 말았지만 그가 돌아간 후 바닥 물걸레질을 하느라 낑낑거리면서 다시는 저 인간을 안 부르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이 곳 생활 초창기라 마땅히 아는 곳도 없어 손 봐야 할 일이 생기면 급한 맘에 다시 부르기를 몇 번, 유난히 더러운 신발로 버적버적 집안을 짓이기고 다니는 무례를 두 눈 뜬 채 참아내야 했다.  어느 해인가 재계약을 하면서 집주인이 욕실에 '비데'를 설치해 주기로 했는데 동네 일군을 부른다 하기에 그 사람은 안 된다고 일렀다.  그런데 근처에 '비데'를 설치 할 줄 아는 이가 그 밖에 없다며 데려왔기에 주인여자를 한 쪽으로 데려가 "난 저 남자와 집에 오랜 시간 같이 못 있겠으니 당신이 직접 상대하라" 했다. 그녀는 일이 끝날 때까지 우리 집에 머물렀고 난 부엌에서 내 일을 했다.

삼중고(三重苦)
  훗날에도 수선공을 불러야 할 때면 웬만하면 그 상황을 피해보려고 내가 직접 만져보기도 하고 남편을 '문'가이버(형만한 아우 없다는데 '맥가이버' 형)라 치켜세우며 어쨌든 우리 선에서 해결해 보려 했다. 이도저도 소용없을 땐 그냥 둬도 큰 일 안 나는 것이면 살림에 신물 난 늙은 주부 지저분한 집안 구석 일부러 안 쳐다보고 지나치듯 그냥 놔뒀다. 그래도 불러야만 하는 일은 가끔씩 생기고야 말았는데...

1. 처음부터 아무 말 않고 신발을 신게 놔두는 경우 : 무례함은 덜 하나 먼지와 흙범벅이 되어가는 집안을 고스란히 보고 있어야 하며 후에 엄청난 노동이 뒤따른다.
2. 끝까지 신발을 벗기고야 마는 경우 : 시작부터 감이 안 좋다.  신발 벗기 싫어 뭐 씹은 표정으로 들어오는 일군을 목마른 이가 샘물 파는 격으로 집안에서 단둘이 상대해야 하며 구멍 난 양말 사이로 에어컨 바람을 타고 솔솔, 그러나 엄청난 위력으로 풍겨 나오는 발 고린내를 감당해야 한다.  역시 바닥 청소가 뒤따르나 흙바닥보다는 한결 수월하다.

  전보다 좀 나은 집으로 이사한 요즘 관리처에서 연결해주는 수선공들은 문을 열면 먼저 알아서 신을 밖에 벗어두고 들어오며 혹 문제가 생겨도 기본적인 예의가 있으니 웃고 보낼 수 있다.  파킨샾 배달원 중에도 매너가 좋은 이상한(?) 아저씨도 가끔 있다.  내가 대문 열면 박스를 부엌 입구에 놔주고 사인 받아가는 단 1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지만 그런 배달원을 만나면 희한하면서도 유쾌하다.  그러나 삼중고   (늦음, 무례함, 지저분함과 발냄새)의 기억은 아직도 나에게 확연히 남아있기에 올 여름 난 에어컨을 안 고치고 버티려 한다. 성능은 별반 문제가 없고 이웃집에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녕 불러야만 하는 일이 생긴다면 '초이 하이 음꺼이' 말하는 대신 "請鞋" 라고 적은 큰 종이를 정중하게 코앞에 갖다 대리라.

  '하인스 워드' 기사가 일간지 주요 면을 차지하던 지난 봄, 신문에서 읽은 한 구절이 생각난다. 학창 시절 친구들이 그의 집에 놀러오기 싫어한 이유는 집안에서 신발을 벗어야 한다는 것이었다는데, 아들의 홍콩 친구 또한 우리 집에 오면 십수 년간 하던 습관대로 막 신을 신고 들어온다.  "신 벗어 나를 주렴" 끝까지 얘기하지만 잠깐 나가 놀다가 다시 들어올 땐 또 잊어버리곤 신은 채로 돌아다닌다.  너무나 예쁜 티브이 외화 속의 소녀가 먼지 하나도 안 묻어날 것 같은 공주방 같은 곳에서 온갖 것 묻히고 다닌 신을 신은 채 침대에 다리 쭉 뻗고 누워있는 것을 보고는 "아이고 지저분해"하는 소리가 내 입에서 절로 나오는 것을 보면 오랜 생활습관의 힘은 정말 질기고도 질기다.

  주로 주부들을 상대하게 되므로 사람을 뽑을 때 깔끔하며 인상 좋고 온화한 성품의 사람을 채용한다는, 서울 살 때 들은 보수센터 주인장의 말씀을 이 곳 수리공 아저씨들도 좀 귀 기울였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사람 불러 에어컨 고칠 텐데...

<계속/ 글 : J. Y. JEEN>
0
스탬포드2
홍콩 미술 여행
홍콩영화 향유기
굽네홍콩_GoobneKK
신세계
NRG_TAEKWONDO KOREA
유니월드gif
aci월드와이드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