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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와 함께 떠나는 남도 기행 (5) - 과거로의 여행 '양반고을' 전주에서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6-07-13 12:2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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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3호, 7월14일] 과거로의 여행 '양반고을' 전주에서   전주는 진입로부터 남다르다.  멋들어진 기와지..
[제133호, 7월14일]


과거로의 여행 '양반고을' 전주에서

  전주는 진입로부터 남다르다.  멋들어진 기와지붕에 기세좋게 '전주'라고 쓴 붓글씨체에서부터 벌써 '양반고을'임이 그대로 느껴진다.  전주 역사와 함께 한 거대한 느티나무 아래 앉아서 장기를 두고 있는 동네 어르신네 어깨 너머로 보이는 '경기전'은 숨 가쁘게 나를 이끌었던 시간을 일순간 정지시키고 먼 먼 과거 속으로 내 발걸음을 인도해 간다.

  조선 태조 이성계를 비롯한 세종, 세조의 영정을 지나 강화도령으로 불리던 '철종'의 영정 앞에서 발걸음이 멎는다.  

  골육상쟁의 제물이 되는 운명을 피하려고 왕족이 한낱 나무꾼이 되어 살다가 갑자기 부름을 받고 왕위에 오른 강화도령 철종. 국정의 중심에 있어야 할 임금이 국정의 변방을 헤매다 주색에 빠져 자기 인생이 아닌 안동김씨의 꼭두각시로 살아야 했던 가엾디 가엾은 인생, 서른셋의 젊은 나이로 바람 속에 나부끼는 먼지가 되어 스러져간 철종이 지금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내 앞에 앉아있다.  

  오솔길을 따라 울창한 대나무 숲으로 들어서니 낡고 초라한 서고가 눈에 들어온다. 드라마 '궁'에서 '명선당'으로 나왔던 곳이란다.  드라마 속의 윤은혜라도 된 양 19세기 과거로부터 불쑥 튀어 나온 상상속의 멋진 황태자가 정중하게 내민 손을 잡고 울창한 숲을 이리저리 거닐어 본다.  귓가로 스치는 바람소리며 지저귀는 새 소리조차 과거로부터 흘러나온 듯 황홀하기 그지없다.

  과거 속에서 서성이던 나는 교복을 깔끔하게 입은 여학생들의 이야기소리에 놀라 내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온다.  그런 내 눈에 유럽의 한적한 시골에나 있을 법한 고풍스러운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 최초의 순교자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세워진 '전동성당'이라는데 우리나라의 '순교1번지'로 불리기도 한단다.

  1889~1908년에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님들에 의해 건물이 완공되었다.  이곳은 또한 영화 '약속'에서 박신양과 전도연이 결혼식을 올린 곳이기도 해 천주교 신자 뿐 아니라 일반 관광객도 잠시 머물며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어보는 곳이 됐다.




  전통가옥 마을에는 전통찻집과 한지공예집, 닥종이공예집, 주막, 전통문화체험관 등과 같은 재미있는 곳이 참 많아 잠시라도 눈을 뗄 수가 없다.  한국에서 지내던 한 때, 꽤나 심취했던 김영동의 음악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이 있어 홀린 듯이 들어간다.  전주 일대에서 나는 고급 차(茶)들을 팔고 있다.  홍콩에서 이래저래 은혜를 입은 분들을 위해 감잎차와 연꽃잎차를 구입해 가방에 넣고 나오니 해는 벌써 황금빛을 저녁노을을 하늘가득 뿌리고 있다.  


조화의 미학 '전주비빔밥'

   전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전주비빔밥'이다.  그리고 비빔밥에, 특히 전주비빔밥을 말하자면 절대 빠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콩나물과 황포묵이다.  콩나물은 전주의 기후 수질이 콩나물 재배에 적합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풍토병인 디스토마로 인한 토혈을 예방하거나 각기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도 많이 먹었다.

  황포묵은 녹두 녹말로 만든 청포묵에 치잣물을 들려 만든 노란 색의 묵이다.


  전주비빔밥은 반드시 유기그릇(놋그릇)에 나와야 전주비빔밥이라고 할 수 있단다.  30여 가지의 재료와 매콤한 순창고추장이 쇠고기육수로 지어진 고슬고슬한 밥알과 어울려 만들어내는 '전주비빔밥'의 은은한 맛을 보면 제5의 맛인 감칠맛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수 십 가지 재료의 환상적인 조화를 느끼며 한 수저 한 수저 뜨다보면 어느 덧 밑바닥이 보인다.  

  우리의 가이드아저씨 케빈에 따르면, 비빔밥은 원래  젓가락으로 비벼야 한단다.  그래야 재료를 뭉개지 않고 골고루 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 광주, 광주여!!

  차는 열심히 광주를 향하고 창 밖의 어둠은 점점 짙어간다.  광주에 다다르자 마음이 조급해지고, 그동안 가져왔던 광주에 대한 갖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스쳐간다.  광주시내를 미끄러지듯 달리던 차는 우리를 호텔에 뚝 떨구고 다시 어둠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홍콩에서 광주가 고향인 사람들을 유독 많이 만나게 되더니 결국 내가 광주까지 오게 됐구나.  그 분들의 집을 찾아가 홀로 계신 노모님에게 안부도 전해드리고, 형제들에게도 홍콩 소식을 전해야 하는데...  

  피맺힌 5월 광주항쟁의 금남로를, 마지막 항전지였던 YWCA도 지금은 없어져 버렸다는 녹두서점의 터에라도 가보고, 전라남도청도 봐야 하는데, 발로 일일히 걸어보고 느끼며 그들의 숨결과 아직도 떠돌고 있을지도 모를 그들의 절규도 들어야 하는데, 망월동에 누워 있는 광주의 영령들에 가서 헌화도 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도 불러드려야 하는데, 내가 이 여행을 선택하게 됐던 것도 실은 이 광주를 느끼고 싶어서였는데, 아! 그런데 나는 무등산을 뭉턱 깎아 세운 이 의미 없는 호텔에 들어앉아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고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리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리
산자여 따르라


<계속... / 글 : 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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