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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코치에게서 온 편지(90) - 웬만하면 안 하려던 얘기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6-07-27 16: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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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5호, 7월28일]   평소 알고 지내는 중년부인들로 결성된 봉사단체의 임원들이 정기회의를 위해 시내에 위치한 셀프서비스 커피전문점..
[제135호, 7월28일]

  평소 알고 지내는 중년부인들로 결성된 봉사단체의 임원들이 정기회의를 위해 시내에 위치한 셀프서비스 커피전문점에 모였습니다.  한낮에 시작된 회의는 새로 들어온 임원들의 소개와 여자들 특유의 수다로 인해 턱없이 길어져서 직장인들이 퇴근하는 무렵이 돼서야 끝났습니다.  모임의 회장은 임원들에게 다음 회의의 안건과 장소를 전하는 것으로 회의를 마치고 총총히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뒤에 남은 부인들과 새내기 임원들은 이유모를 어정쩡한 분위기로 커피전문점을 나섰습니다.

  "모처럼 시내에 나와서 남들 퇴근하는 시간에 집에 가니까 처녀시절 직장생활 하던 생각이 나네."
  "그래요? 난 너무 배가 고파서 아무 생각도 안 나는데."
  "저도 그래요, 우리 어디 가서 요기라도 하고 집에 갈까요?"
  "이건 아무리 봉사활동이라지만, 뭘 좀 먹여가면서 일을 시켜야지 말야…"
  "먹여가면서 일을 시키다니요? 누가 누구한테 뭘 먹여요?"

  둥그런 눈으로 멀뚱멀뚱 쳐다보는 새내기 임원의 질문에 당황한 H부인은, 그냥 못들은 척해버릴까 눈 딱 감고 속내를 털어놓을까 3초쯤 고민하다 결심한 듯 얇은 입술을 열었습니다.

  "음… 사실 내가 웬만하면 이런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말이지, 여기저기서 들어보니까 다른 단체들은 회식도 하고 리더가 회원들한테 물심양면으로 베풀면서 일을 시킨다더라구요.  사실 우린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이렇게 자발적으로들 나와서 무보수로 일을 하는데 우리 회장도 다른 단체장들처럼 회원들한테 끼니는 먹여가면서 일을 시킬 수도 있지 않느냐, 뭐 그런 얘기지 내 말은. 오늘도 점심시간에 모여서 다 저녁이 되도록 여태 붙들어놓고는 자기 혼자 저렇게 쏙 가버리잖아."
  "안 그래 보이셔도 회장님은 은근히 짠순이신가 봐요 호호."
  "맞아 맞아, 그러니까 돈이 있어도 M아파트에 살지."
  "그 M아파트가 어떤데요?"
  "어 거긴 사실…"

  서둘러 집에 갈 생각은 어디로들 갔는지, 강강수월래 하는 여학생들 마냥 H부인을 빙 둘러싼 새내기들과 동료 임원들은 아까보다 더 둥그래진 눈으로 그녀의 대답을 재촉했습니다.
  
  "어지간하면 이런 말하기 싫은데 물어보니까 대답은 해줘야지.  솔직히 M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좀 그렇잖아?"
  "그 동네가 공기도 맑고 시설이 좋아서 애들 키우고 살기엔 적격이라기에 나도 그쪽으로 옮기려는 참인데요?"
  "어머 그, 그래요? 아이 참 이래서 제가 말했잖아요, 웬만하면 이런 말하기 싫다구.  괜히 사람 난처하게 말들은 시켜가지구…"
  "제가 같이 활동하면서 지켜보니까, 당신은 툭하면 '웬만하면 이런 말하고 싶지 않다'면서 결국 할말 안 할말 다해버리는 것 같던데, 봉사활동과 상관없는 불필요한 얘기들은 어지간하면 그만 좀 하실 수 없어요?  참 먼저 말씀을 꺼내셨으니까 묻겠는데, M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좀 그렇다니요?  그게 대체 무슨 뜻이죠?"
  "…"


먼저 말을 꺼내는 사람

  다양한 스타일의 사람들이 모여 모임을 갖거나 식사를 하는 등 접촉을 반복하다보면 누가 다그치지 않아도 자연스레 떠오르는 화제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묻는 사람도 편하고 대답하는 쪽에서도 개의치 않는 질문과는 달리, 앉은 자리가 불편해질 정도로 민감한 발언들이 튀어나오는 경우도 가끔 있긴 합니다.  '저런 말을 뭣 하러 꺼내는 것일까' 절로 한숨이 나올 만큼 엉뚱한 소리를 해서 순식간에 분위기를 뒤집는 사람들은 주로 사람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무심코 동물에게 먹이를 던져주듯 황당한 발언을 불쑥 내던지길 좋아합니다.
  "우리 옆집은 부도가 나서 졸지에 다섯 식구가 원룸으로 이사를 갔다네요.  어머, 자기는 애 아빠가 어려울 때 원룸에서 살아봐서 그 심정을 너무 잘 알겠다, 그치? 나야 안 살아봐서 이해가 안 가지만."
  "작년에 이혼수속 하실 때 얼마나 걸리던가요?"
  "어머 딴사람인줄 알았어요!  길에서 봐도 이젠 못 알아보겠네요.  전엔 뚱뚱했는데!"
  "M아파트 10동 사세요?  집세 엄청 싸서 너무 좋으시죠?  호호호"
  "당신은 손재주도 좋아, 매니큐어까지 직접 바르고.  난 손톱발톱은 물론이고 머리까지 그 먼 미용실에 가서 감는데 말야."
  "기미는 치료받아도 소용없다는 말이 맞나보네, 여태까지 달고 다니는 걸 보니…"
  "저번에 치질수술 받은 그 의사 연락처 좀 주세요."
  "우리 중에서 여태 밥값 한번 안 낸 사람은 T밖에 없지? 진짜 짜다 짜.  다음엔 단체로 지갑을 꺼내지 말아볼까?"

  저는 모임에 가면, 상대를 걱정하는 말투, 궁금을 가장한 난처한 질문, 칭찬으로 포장한 비아냥 등이 누구를 겨냥한 것인가에 정신을 팔기 전에, 그런 말을 가장 먼저 꺼낸 사람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그런 다음 그가 애용하는 애매한 문장들을 통해 표현하려는 진심은 과연 무엇인가를 귀 기울여 들어봅니다. 그러다보면 그가 말로 표현하진 않아도 정작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사는 사람인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밥값 안 낸 횟수를 가지고 가장 먼저 따지는 사람은 다른 누구보다 앞장서 그 점을 언급을 할 정도로 공평하게 밥값 내는 일에 신경 쓰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 속에 자주 떠오르는 화두인 "밥값"이란 레퍼토리를 가지고 불평하는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타인의 인색함이 아니라, 번번이 베풀고 돌아서서 후회하는 태도, 진심 없는 호의와 과도한 친절인지도 모릅니다.


라이프 코치 이한미 ICC CTP (T: 2647 8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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