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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홍콩유감 [有感] 9 - '목욕탕 찾아 삼만리' VS '비 사이로 막가'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6-08-03 12: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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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6호, 8월4일]   요 며칠 비가 좀 내리긴 했지만 쨍쨍한 날 한치의 양보도 없이 작열하는 햇볕 밑을 걸어 다니다 보면 잠시만 지..
[제136호, 8월4일]

  요 며칠 비가 좀 내리긴 했지만 쨍쨍한 날 한치의 양보도 없이 작열하는 햇볕 밑을 걸어 다니다 보면 잠시만 지나도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이 어서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진다.

  우리나라의 겨울이 혹독하다지만 따뜻하다 못해 더운 실내가 있기에 살만 하듯이 이 곳의 찜통 같은 여름도 추울 정도로 시원한 실내가 있기에 그런대로 지낼 만하다.  환경보호 단체의 권장 온도엔 아직도 못 미친다지만 요즘엔 홍콩도 오싹오싹 하도록 강하게 냉방을 하는 곳이 많이 줄어들었다.  꽤 오래 전, 아무 보온장비(?)없이 영화관에 갔다가 중간 무렵부터 추위에 떠느라 어서 끝나고 따뜻한(?) 밖으로 방출되기만을 바랬던 기억이 있는데 얼마 전 'Over The Hedge' 를 볼 때는 얄따란 긴 팔만으로도 충분히 쾌적했다.

  뒤끓는 인파 속에서 때로는 어깨를 부딪혀가며 뚫고 가야하긴 하지만 홍콩의 거리는 그래도 걸을만하다.  소나기를 피할 수 있도록 지붕으로 덮인 곳이 많아 웬만한 우산은 맥도 못 추는 장대비를 피할 수 있으며 처음엔 멋모르고 곧이곧대로 가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이리저리 건물 안을 관통해 잠시나마 땀을 식히며 시원한 실내를 통해 갈 수 있는 지름길도 많다.  그래서 똑 같은 거리라도 걸어가는 여정이 한결 간단하고도 짧게 느껴진다.

  예전 단 며칠의 서울 방문 길, 떠나기 전날 목욕탕에 꼭 한번은 가야겠기에 코앞에 있는 전에 다니던 목욕탕을 찾았으나 웬걸 바로 수요일… 요즘엔 연중무휴로 여는 곳도 많기에 목욕을 하고야 말리라는 강한 의지로 이리저리 찾아 헤맸으나 그 많던 사우나 찜질방 간판이 내가 왔다고 다 숨었는지 꽃샘추위 칼바람을 맞아가며 아무리 헤매도 김 펄펄 나는 온천표시는 영 찾아볼 수가 없었다.  결국, 버스로 두  정거장 가까이나 떨어진 다른 단지의 한 상가 구석에서 '사우나' 란 간판이    '잔디에서 바늘 찾기' 란 말이 생각날 즈음 내 눈에 들어왔으니 그 날씨에, 엎드리면 코 닿을 데 간다고 부실하기 짝이 없는 옷차림에, 아이까지 데리고, 험한 길을 그저 걸어서… 나의 집념이 아니면 이루지 못했을 쾌거였다.

  이렇듯 우리나라에선 언뜻 보기에 바로 옆같이 보이는 곳도 보행자에겐 험난한 길인 경우가 많다.  다 건너기도 전에 빨간 신호등으로 바뀌어버리기 십상[十常]인 멀고 먼 왕복 8차선에 그려진 횡단보도를 달음질쳐야 하며 보도블록은 울퉁불퉁, 근처에 황망하게 서있는 높은 건물들은 숨 가쁜 종종걸음을 한결 더 더딘 듯 느끼게 한다.

  주택가의 골목길은 또 어떠한가.  좁은 길에는 관대하게 주차되어 있는 자가용이 양쪽에 진치고 있으며 인도와 차도의 구별은 없는 곳이 많아 아이 손을 잡고 걷다보면 꽤나 신경이 쓰인다.  게다가 그 사이로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롤러브레이드나 자전거 탄 아이들까지… 여기처럼 인산인해[人山人海]는 아니지만 보행자에겐 특히 나같이 잘 헤매는 이에겐 여간 피곤한 여정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혹독한 겨울철엔 그 정도가 더하다.

  반면 홍콩은 빌딩과 빌딩 사이가 튜브 같은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이리저리 닦아놓은 곡선도로에 걸맞는 여러 개로 나눠진 잔챙이 횡단보도, MTR과 연결되는 편리한 지하도가 있다.

  이른 아침 뉴스화면 상단에 비가 온다는 표시라도 있으면 난 잠시지만 아들과 실랑이를 벌여야 한다. "우산 가져가라"  "필요 없어요"  "몇 차례의 소나기에 천둥 번개라쟎니?"  "비 안 맞아요"... 지가 무슨    '비 사이로 막가'라도 되는지.  그 후 학교에 들렀을 때 관심을 갖고 한번 잘 살펴보니 건물 끄트머리에는 'Shelter' 가 있어 번거롭게 우산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게끔 설계되어 있었다.  과연 아들이 '비 피해서 막가' 가 될 만 했다.

  잠실에 '롯데월드'가 처음 생겼을 무렵    '비가와도 놀 수 있어요' 라는 홍보용 문구에 대해 딴죽을 거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먹으며 마냥 뛰어노는 것이 진정한 놀이동산이 아닌가"  대충 이런 내용의 글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렇게 따진다면 사람이란 모름지기 비 오는 대로 쨍쨍한 대로 바람 부는 대로 뻥 뚫린 하늘을 보며 다니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비도 눈도 산성[酸性]이라 예전 같지 않고 어차피 돈 많은 이들은 비 맞거나 뙤약볕 아래 걸을 일이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다수의 평범한 이들의 이동의 편리함을 고려한, 나에겐 무엇보다도 밤에도 밝아서 좋은, 홍콩의 거리는 에어컨 물도 좀 떨어지고 구저분한 곳도 많아 썩 쾌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걸을 만하다.

  그러나......  
  혼란 하나... 몽콕 고층건물에서 떨어진 가위에 부상을 당한 할머니 얘기를 듣고도 그런 일은 나에겐 안 일어난다고 굳게 믿다가 우리 동 게시판에 단골로 등장하는 고층에서 던져진 이런저런 물건들 사진의 최신판을 보곤 홍콩의 거리는 과연 걸을 만 한가 괜한 기우[杞憂]일 뿐인가 좀 헷갈린다.

  혼란 둘..."Peace 쌀"을 받으려고 황색 호우경보에도 불구하고 새벽 3시부터 나와 맨 앞에 섰다는 80살 되신 정정한 할아버지의 "주최 측에선 신경 썼다고 하지만 Shelter가 많이 부족하다. (줄 서느라)힘들지만, 가족의 평화(안녕)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는 말, 자손들 잘 되길 바라는 맘으로 이 힘든 줄서기를 마다 않는다는, 점심도시락과 간이의자까지 갖고 온 바짝 마른 한 할머니의 모습, 며칠 전 뉴스에서 본 광경이다.  '그저 공짜라니까 저렇게 난리들이군' 작년까지만 해도 그렇게만 생각했었는데 올해에는   '공짜 쌀 받지 게다가 좋은 의미란 그럴싸한 명분까지 있지 이 곳 정서상 이해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더니 그래도 가족의 안녕보다는 '공짜'라는 것이 더 큰 이유 아닐까 혼란이 오면서 그분들의 연세만큼이나 쑥 들어가야 보일락 말락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구곡간장'[九曲肝腸] 속내가 자못 궁금해진다.

  김나는 새빨간 해가 오랜만에 뉴스 상단에 나타난 날이지만 집안 구석구석이 쾌적하니 오늘도 지낼만하다.  현관 바로 옆에 붙어 있어 거실 에어컨 바람이 가다가 지쳐버리는 우리 집에서 제일 덥고 침침한 부엌이 나의 본거지이긴 하지만……


(계속 / 글 : J.Y. JE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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