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로사와 함께 떠나는 남도 기행 (8) - 하동의 화개장터와 재첩국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6-08-03 13:45:12
기사수정
  • [제136호, 8월4일]   홍쌍리여사의 청매실 농원을 나와 화개장터에 이르는 수십 미터의 벚꽃 길.  계절이 계..
[제136호, 8월4일]



  홍쌍리여사의 청매실 농원을 나와 화개장터에 이르는 수십 미터의 벚꽃 길.  계절이 계절인 만큼 꽤나 화려했을 법한 벚꽃은 오간데 없이 무성한 나뭇잎만 우릴 반긴다.  그러나 벚꽃나무터널의 싱그러움으로도 족하다. 나무 사이사이로 보이는 섬진강의 잔잔한 노래 소리가 우리와 함께하므로.

차는 섬진강 물길을 따라가다 섬진교를 넘어 화개장터 건너편에 있는 허름한 식당 앞에서 우릴 내려놨다.  오늘의 점심 메뉴는 '재첩국' 이란다.  재첩? 생소한 이름이다.  그러나 여자들은 '첩'자만 들으면 긴장이 되는지 유난히 '첩'자가 내 귀에 거슬린다.  대체 재첩이 뭘까, 일단 먹어보기로 한다.



  재첩국에 앞서 주인아주머니가 내오는 이집 반찬은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전라도 일대는 지나다 들른 이런 허름한 식당에서도 기본 반찬은 12가지고, 좀 신경 좀 쓴다 싶은 곳은 15가지 이상이다.  제대로 된 음식점을 찾아 들어가면 20가지가 넘는다.  나도 20여년을 한국에서 살았지만 들어보지도 못한 반찬들이 줄줄이 늘어선 데는 입이 딱 벌어진다.  

  지금 막 무쳤다는 배추겉절이가 우리 입맛을 사로잡는다.  깻잎은 또 어떠랴, 이렇게 맛있는 깻잎은 처음 먹어본다니까 주인아주머니는 부엌으로 들어가 주섬주섬 깻잎을 싸서 친정어머니처럼 짐 가방 속에 꼭꼭 넣어주신다.

  재첩국 한 뚝배기가 내 앞에 나온다. 재첩이란 가막조개·다슬기라고도 부르는 엄지손톱만한 민물조개란다.  재첩국은 '재치국'으로도 불린다는데 속 풀이 해장국으로 큰 인기를 끈단다.  실제로 국물을 숟가락으로 훌훌 떠서 입에 넣어보니 조갯살의 향긋함과 부추의 깔끔함이 어우러져 입에서 마냥 "히야~ 시원하다"가 연발해 나온다.  이렇게 속이 확 풀리는 해장국이 있는 줄 알았더라면 어제저녁 순천에서 소주나 한 잔 했으면 딱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식당 앞에 꽤 오랜 세월동안 서 있었을 법한 굵은 나무아래서 멀리 흐르는 섬진강 물길을 바라보며 앉아 맑은 공기에 흠뻑 취해있으려니 미국교포 아저씨가 자판기커피 한잔을 뽑아 오신다.  아, 자판기 커피의 맛은 바쁜 여행일정 속에서 가질 수 있는 여유와, 더불어 느껴지는 행복의 농도만큼 진하고 달콤하다.  담배 한 대를 꺼내 불을 붙여 깊게 들이마신 후 천천히 훅하니 내 뱉던 가이드 아저씨 케빈과 교포아저씨의 담배의 맛도 그러하겠지.



 차로 달린지 10여분이나 됐으려나. 화개장터가 눈에 들어온다. 하동이다.  하동은 우리에게 익숙한 두 소설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화개장터는 김동리의 단편'역마'의 무대다.  이복 이모를 사랑한 주인공이 얄궂은 운명에 좌절하고 길을 떠나는 장소다.

  화개장터엔 소설 내용과 그림이 새겨진 돌비석이 있다.  깔끔한 초가집 상점이 들어서서 전통차와 해산물, 산나물, 꿀, 황토 옷 등 지방 특산물을 판매한다. 예전과 같은 재래시장은 아니지만, 엿장수 리어카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풍악 소리는 장터 분위기를 빚어내기에 손색이 없다.

  장터를 이리저리 헤매던 나는 검정고무신과 하양고무신을 늘어놓고 파는 상점 앞에 멈춰선다.  아, 고무  신이구나!  이슬에 젖고 물에 젖어 빠드득 뽀드득 맹꽁이 소리를 내는 저 검정고무신을 신고 뛰놀던 유년시절이 내겐 있었는데, 색 바랜 흑백사진처럼 먼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던 고무신이 이렇게 내 앞에 나타나니 오죽 반가우랴!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최참판댁



  화개장터에서 다시 20분쯤 차로 달려가니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최참판댁'이 나온다.  드라마 '토지' 촬영지로 쓰였던 이곳은 3000여 평의 공간에 조선시대 기와집과 초가집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처마를 마주대고 있는 초가집마다 용이네, 월선네, 귀녀네 등이라고 쓴 안내판이 있다.

  최참판댁 대처마루에서는 판소리 공연이 한창이다.  한 무형문화재 한 분이 이렇게 하루에 두어 번씩 나와 무료로 자원 봉사하신단다.  멋들어진 장구와 판소리에 어깨가 저절로 들썩거린다.  우리 팀인 미교포 아주머니가 판소리 하는 그 분 앞에 앉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데, 내가 처음 차를 잘못 탔을 때 얼굴을 익혔던 그 차의 다른 미국 교포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한 할머니가 노랑머리 손녀를 앞세우더니 우리 교포 아줌마 앞으로 와서는 "우린 미국 교포고, 얘는 우리 손녀다"라며 한국인인 너희는 미국교포이고, 그 손녀인 우릴 위해 자릴 양보하라는 무언의 압력을 가해온다.  우리 팀 교포아줌마가 기가 막힌지 "우리도 미국 교포다"라고 말한다.  그쪽에서 약간 뻘쭘해 한다.  우리 교포아줌마가 우린 샌디에고에서 왔는데 당신네는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 미국 서부 어디께 라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는 동네다.  교포 아줌마는 "흑인과 동양인들이 주로 사는 가난한 그런 동네"라고 귀띔한다.  그렇게 미국 교포라며 기세등등하던 할머니는 샌디에고에서 이번에 코넬대학  (미국의 명문대학)에 입학한 딸과 함께 가족여행 왔다는 이 아줌마의 말 한 마디에 바로 주눅이 든다.  거참, 희한한 일이다.


<글 : 로사 / 계속....>
0
스탬포드2
홍콩 미술 여행
홍콩영화 향유기
굽네홍콩_GoobneKK
신세계
NRG_TAEKWONDO KOREA
유니월드gif
aci월드와이드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