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수필> 홍콩유감 [有感] 10 - 수사반장 신드롬 (syndrome)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6-08-17 13:15:50
기사수정
  • [제138호, 8월18일]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국어시간에도 배웠던 '안톤 슈낙(Anton Schinack)'의 '우리를 슬프게 ..
[제138호, 8월18일]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국어시간에도 배웠던 '안톤 슈낙(Anton Schinack)'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이란 글 중 감성적으로 다가온 구절이 '정원의 한편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와 '무성한 나무 위에 떨어지는 백설[白雪]' 이었다면 실질적으로 다가온 부분은 바로 '휴가의 마지막 날'이란 어구[語句]였다.

수사반장 BLUE
  70년대에 타계한 '서형사' 대신 캐스팅되어 고정배역을 따냄으로써 결국 중견연기자의 대열에 설 수 있었던 남형사역의 남성훈 씨,'박반장ㅡ최불암'으로 시작되던 고정출연자들의 이름이 주제곡과 함께 화면에 뜰 때 '미쓰리ㅡ이금복' 으로 마무리되던, 훗날 야구 선수와 결혼한 이금복 씨, 고정배역은 아니었지만 어느 에피소드에선가 소름 돋는 악역을 맡았던 추송웅 씨, 요즘 같은 고령화 사회에 너무나 일찍 고인이 된 이가 출연자중 네 사람이나 된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묘할 정도로.

  다른 이들도 조금씩은 그런 경험이 있었겠지만 난 학창시절 내내 좀 유난스레 '일요일 저녁 Blue'를 경험했는데 일명 '수사반장 Blue' 라고나 할까.  내가 6살 나던 해부터 80년대 끝자락까지 20년 가까이 계속되던 프로그램이었으니 그야말로 '초등, 중·고등, 대학까지의 나의 학창시절 = 수사반장의 시절'이라 하겠다.  꽤 오랜 기간 일요일 저녁 8시로 고정되어 있던 방영시간은 초등학교 때까진 그런대로 가족들과 저녁 먹고 둘러앉아 보기에 적당한 시간이었지만 극이 끝나는 9시쯤 되면 왠지 모를 심난함 내지는 우울이 나를 에워싸곤 했다.  중학생 땐 너무나 엄격한 학교를 다닌 관계로 새로운 한 주가 못내 부담스러워서, 때론 주말 끼고 시험기간인 적이 많아 엉덩이는 못 붙인 채 좌불안석 기웃기웃, 그러나 항상 끝까지 보고야 말았다.  '돌아오는 토요일 낮에 재방송 볼 것을' 후회와 자괴감[自愧感]으로 'Blue'는 더욱 진해졌는데 또 한 주가 지나고 다시 일요일이 되면 영락없이 들썩들썩, 도돌이표를 그리곤 했다.

  괜시리 애들에게 짜증내고 온몸이 늘어지는 생리 전[生理 前]증후군이 막상 생리가 시작되면 없어지듯, 동화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속의 '오로라'공주가 왕자님의 사랑의 키스 한번에 침 흘린 흔적하나, 눈곱하나 없는 얼굴로 깊은 잠에서 우아하게 깨어나듯 나의 '수사반장 Blue'도 막상 월요일 아침이 밝으면 바쁜 일상에 묻혀버리곤 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수사반장'이 쫓겨난 안방마님처럼 일요일 8시 자리를 슬며시 내주자 나의 '수사반장 Blue'도 중학생 소녀가 팔자 좋은(?) 대학생으로 자라면서 어느새 꼬리를 감췄다.

  가리워졌던 '일요일 Blue'가 내 앞에 푸르무레하게 다시 다가온 것은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난 후였다. 7시 15분이란 살벌한 버스시간에 맞추느라 겨울철엔 창 밖이 거무스름할 때 일어나 도시락 들려 학교 보냈으니 세상 모든 엄마가 하는 일이긴 하나 올빼미 형인 나에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등교시간은 좀 늦어졌지만 몇 년 후 그 행렬에 행동 무지 느린 둘째까지 합세했으니 매일 아침 눈곱만 겨우 떼고 학교버스 정류장에 따라 나가기도 버거운 시절이 한동안 계속됐다.

  그 때에 비하면 기막히게 나아진 요즘의 아침풍경인데도 애들 학기 중엔 아직도 유사한 감정이 일요일 밤의 내 주변을 맴도니 '수사반장 Blue'가 환생하여 'Queer Eye (For The Straight Guy)ㅡBlue' 또는 'America's Next Top ModelㅡBlue'로 현대화되었다고나 할까.  몇 주의 간격을 두고 번갈아 일요일 밤 8시 반에 전파를 타는 두 에피소드를 난 앉아보지는 못하고 다른 일 해가며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는데 남편과 딸, 특히 남편은 'America's Next Top Model' 의 애[愛]시청자다.  9시면 딸아이는 씻고 가방 싸고 잘 준비를 시작해야 하지만 그래도 '즉시 짐 싸서 집에 가야하는 한 참가자'가 제거되는 마지막 장면은 꼭 보려고 애를 쓴다. 나 또한 9시가 넘어가면 주말이라 풀어졌던 맘을 다그쳐가며 또 한 주를 시작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일요일이라도 일찍 자려고 애써보지만 어두울수록 꼼지락거리는 오랜 습관은 고쳐지지 않은 채 어느새 잠 충분히 자긴 틀린 시간이 돼버리기 일쑤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일들
  어느덧 아이들의 개학이 일주일도 채 안 남았다.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긴 방학이건만 난 벌써부터 좀 슬프다.  내가 그런 소리를 하면 다른 엄마들은 어서 개학해야지 무슨 소리냐고들 하고 남편도, 일주일씩이나 남았냐며 자신은 일주일 아니 이틀이라도 더 놀면 참 좋겠다고 핀잔을 주지만 그래도 아쉽다.  내가 학생도 아닌데, 을씨년스런 꽃샘추위의 3월 신학기도 아닌데, 아마도 '새 학년 Blue'가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나 보다.  그러나 첫 날 애들을 보내고 나면 이런 맘이 커다란 풍선처럼 날아가 버릴 것이란 걸 난 안다.  혼자서는 참 오랜만에, 집 정리를 하면서 아들의 흐트러진 소지품을 보곤 '이젠 공부부담도 커질 텐데 그동안 잔소리 좀 덜 하고 좀 더 편하게 놔둘 걸...' 그 애 방에서 생각하고, 거실 비디오를 정리하다가는 "방학 땐 같이 앉아 네가 좋아하는 DVD 많이 보자.  수영장도 많이 가자"고 해놓고 말대로 못한 것이 아쉽고 딸애에게 미안하기도 하겠지만, 거의 두 달 만에 느긋하게 혼자 아침 커피도 마실 수 있고 운동도 할 수 있고 비록 잔신경 써야 할 것은 다시 많아지지만 몸과 맘의 리듬이 폴폴 살아나니 '시작이 반'이란 옛 말이 딱 맞음을 실감하게 되리라.  잘 나가다가 끝에 가서 이상해지기 전에 좀 아쉬운 듯한 지금이 우리(나와 아이들)가 분리되어야 할 시간이리라.

  신문에서 '생각해보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란 카피의 어느 기업의 전면광고를 보고 외출한 날 쇼핑센터엔 여름 막바지 세일품목들과 더불어 이미 추동 신상품이 나와 있었다.

  10월 초면 성큼 다가오는 뽀송뽀송한 아침공기(우리나라에서 막 이주해 오신 분에겐 여전히 여름공기 같겠지만), 그리고 이어지는 아이들의 잠깐 가을 방학, 일년 중 최적의 날씨의 11월과 함께 시작되는 시원한 바비큐 시즌, 12월10일이면 사방팔방 울려 퍼지기 시작하는 캐럴과 형형색색의 고층 빌딩들... 겉모습은 이러하나 사이사이 채워질 내 일상의 조각들은 다 상쾌하고 곱지만은 않겠지만, 병든 공기로 뿌연 하늘과 마지막 기승을 부리는 늦더위에 때론 지치는 9월이 아직 남아있긴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를 행복하게 할 일들이 올 가을겨울에 참 많네' 스스로에게  되뇌며 '기대와 낙관'이라는 노란색으로 '부담, 잔걱정'이란 파란 색을 빽빽이 칠해 '평화'란 초록 빛 내 마음의 추동 신상품도 이제 마련해두어야겠다. 2006년 후반기를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걸어가기 위해...    
  

(계속 / 글 J.Y. JEEN)
0
스탬포드2
홍콩 미술 여행
홍콩영화 향유기
굽네홍콩_GoobneKK
신세계
NRG_TAEKWONDO KOREA
유니월드gif
aci월드와이드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