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수필> 홍콩유감 [有感] 11 - 윌러드(Willard)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6-08-31 12:23:56
기사수정
  • [제140호, 9월1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절절히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누군가를 만나면, 그 만남이 어느 ..
[제140호, 9월1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절절히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누군가를 만나면, 그 만남이 어느 정도 종결되기 전까지는 그이에 관한 내 생각을(좋은 면이든 나쁜 면이든)속으로 단정 짓지 말고, 밖으로 말하지도 말라는 것'이며 '인간관계에 있어서 이성과 감정 또는 공[公]과 사[私]의 수위를 적절히 조절하는 것은 참 까다롭고 미묘한 일이라는 것'이다. 상대가 외국인일 경우는 더욱더…  

'Crispin Glover'의 'Willard'
  "20여 년 전 '백튜더퓨처'에 '죠지 맥플라이'로 나왔던 그 사람이네" 옛날과 너무나 흡사한 머리모양과 인상 때문에 단박에 알아본 '크리스핀 글로버(Crispin Glover)… 아버지가 죽자 사장자리를 차지한 채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고 모욕하며 끝내는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Mr. Martin'을 직접 훈련한 쥐들로 하여금 공격하게 해 쥐떼에 파묻혀 죽게 만들고야 마는 주인공 '윌러드(Willard)'로 분[扮]했다.  그의 방식이 좀 괴상하기는 했지만 '맞아, 저런 생각할 수 있어.  어쩜 저렇게 몇 년 전 내 마음과….'란 생각이 들게 한 영화였다.

  몇 해 전 난 아이들과 홍콩여자에게 피아노를 배웠었는데 그녀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의 완벽주의자였다.  주로 아이들과 엄마들을 상대하며 자신의 집에서 레슨을 하면서도 1년12달 너무도 깔끔하게 화장한 얼굴, 편한 디자인이지만 한껏 갖춰 입은 옷차림, 완벽한 헤어스타일로 우리를 맞았으며 많은 이들이 뻔질나게 문지방을 넘나듦에도 불구하고 집 구석구석은 머리칼 몇 올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윤기가 잘잘 흘렀다.  처음엔 가끔씩 오는 아줌마가 보이기도 했으나 어느 날인가 안 보여 물었더니 불법이라 내보냈다며 자신이 직접 청소를 한다나.  매사에 지지부진[遲遲不進]한 내 눈에 그녀는 경이롭다 못해 사람이 아닌 듯 느껴질 정도였다.  선생과 학생이라는 관계로 알게 된 그녀의 방식들이 가끔은 부담스럽고 싫기도 했지만(자신의 시간은 황금, 나 같은 노는(?)이의 시간은 돌[石]이라는 차별적 관념…)전에 만난 사람들보다 그래도 프로다운 그녀의 수업방식 때문에 레슨 횟수는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        

  그러던 중 우리가 이사를 하게 되어 오고가는 시간 때문에 부득이 시간을 바꿔야만 하게 되었는데 아무리 수요가 넘쳐 우리 셋쯤 안 가르쳐도 아쉬울 것이 없는 잘 나가는 그녀라지만 그 반응이 정말로 기대 이하였다.  까짓 것 피아노 선생이 너 하나냐 그만두면 되는 것이었지만 문제는 선불로 지급한 레슨비였다.  첫 수업에 선불이라 들었을 때부터 찝찝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나중에 이런 불쾌한 일이 실제로 생길 줄은 예상치 않았었다.  감정상으론 당장 말아야 했지만 이성적으론 '참고 돈 낸 날까지는 계속해야지' 하는 맘이었다.  허나 이미 관계에 흠집이 난 사람에게 어찌 나의 두 자식을 맡길 것이며 나 또한 그냥 붙어 앉아 그녀에게 배울 수 있겠는가.  참으로 고약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이성과 감정의 갈등은 며칠 후의 그녀와의 전화통화 후 깨끗이 없어졌다.  얼마나 정나미가 떨어지던지.  세 명이다 보니 남은 레슨비가 꽤 됐다.  선불로 준 돈을 어떤 경우에라도 절대 안 돌려준다는 약관[約款] 이나 언질을 그녀로부터 들은 적은 없기에 그래도 하는데 까지 해보자고 딸의 레슨 날을 기다렸다.  나름대로 '서류'(?)도 준비하고.

  이제까지 봐온 그녀의 성격상 반응이 충분히 짐작되었기에 걸 맞는 대응책 몇 가지를 잘 생각한 후 단단한 맘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이미 서로 불편해진 상태에서 딸아이를 들여보내고 나니 가시방석이었지만 어쩌랴.  레슨이 다 끝나가는 데도 다음 학생이 오지 않는 것을 보니 그 여자 또한 내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예견하고 오늘만은 일부러 시간차를 두고 다음 레슨시간을 잡는 치밀한 사전조치를 해 놓았음을 알 수 있었다.

   껄끄러운 얘기였지만 준비한 데로 차분히 그러나 단호하게 내 할 말은 다 했다.  그러자 그녀의 낯빛이 바뀌면서 반응을 하는데 뭐랄까 참으로 사람 환장[換腸]하게 만드는 반응이랄까.  빈정대는 듯 농담하는 듯.  "돈이 없어서 주고 싶어도 못 준다"는 둥 묘한 미소까지 지어가면서.  '지불한 시점까지는 레슨 받고 잘 마무리 하고 싶었지만 관계가 일그러진 상태에서는 서로에게 참 어려운 일 아니냐'는 극히 인간적인 말로 대꾸하기엔 이미 자신의 본색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었기에 난 그 말을 삼켰다.  잠시 언쟁 비슷한 것이 오고 간 후, 딸의 레슨 후 정확하게 20분의 차이를 두고 다음 학생이 들어섰다.  2년 동안 보아온 그녀의 레슨 스케줄 상 전무후무한 시간간격이었다.

'바퀴벌레 scenario'
  '돈 문제가 개입되면 많이 배우고 우아한 사람이나 못 배우고 가난에 찌든 사람이나 너무나 똑같은, 아니 오히려 전자가 greedy하고 더 닳고 닳아 천박한 광택이 나는 구나' '돈 앞에선 그동안의 인간관계도 말짱 꽝이구나' '누군가와 헤어질 땐 안면을 확 바꾸며(본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 차라리 옳겠다) 세상 끝날 까지 안 마주칠 사람이라고 여겨 자신이 어떻게 인식될 것인지에 관해서는 전혀 안중에 없구나'.  십여 년 간 이곳 사람들을 접하며 끼적거리던 내 머리 속 그림에 그녀가 톡톡히 '화룡점정'[畵龍點睛] 했다고나 할까.  시어머니는 아무리 좋아도 시어머니이듯이 '이런 행태가 교양과 학력과 사회적 위치에 따라 사뭇 다르지 않은 이 곳 사람들의 공통적인 모습이구나'이 생각 저 생각으로 머릿속은 참 복잡했다.

  소비자보호원에 전화도 하고 교민신분의 '소액 재판'기사도 오려가며 실제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한편 설거지와 욕실 청소를 하는 내 머리 속엔 한 시나리오가 떠오르고 있었다.

  "흉하게 생긴 놈들로 고르고 고른 바퀴벌레를 D-day, 희디흰 그녀의 집에 방출한다.  어느 날 밤 부엌 한 켠에서 바퀴떼를 발견한 그녀는 기절초풍하고, 화장실 침실에 이어 피아노 레슨 중에도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바퀴 떼에 그녀의 곱게 화장한 얼굴은 한없이 망가지며 구겨진다.  급기야는 박멸회사에 연락 며칠 간 레슨을 중지할 수밖에 없게 되며 바퀴소굴이란 소문이 쫘악 퍼져 그 많던 학생의 발길이 뚝 끊긴다.  그녀는 엄청난 금전적 손해를 안게 되며 매일 이어지는 바퀴 악몽으로 불면증에 시달리게 된다." - 시나리오 by J. Y. JEEN

  누구에게도 위로를 받을 수 없었던 'Willard’는 쥐를 이용한 복수극을 감행한 후 안타깝게도 결국 자기 파멸에 빠지고 말지만 남편에게 한껏 다 쏟아내며 맞장구를 받은 나는 각본 구상단계에서 그만 주춤하고 말았다.

  서로 얼굴 붉힌 후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얼마든지 우리 셋을 가르쳐 주겠다는 '진짜 프로' 그녀는, 관계가 엎어진 이상 아무리 돈이 걸렸어도 더 이상 배울 수는 없다는 칠칠찮고 소견머리 좁은 '쌩[生] 아마추어'인 내가 상대하기엔 너무나 먼 닳아빠진 베테랑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아한 자태로 "I don't have any money" 하며 썩은 미소를 짓던 노련한 그 얼굴을 떠올리면 한밤에 밖에서 날라든 바퀴벌레를 집 목욕탕에서 봤을 때 같이 섬뜩하여 징그럽고 소름이 돋는다.

마치기 전 강추 하나.
  3일에 한 번씩 세 끼 식사 전 'Willard' 영화의 백미[白眉]를 골라보고 식사 시엔 'The Jackson Five'의 감미로운 노래 'Ben'을 틀어놓는다. (웬 'Ben'노래? 영화를 보신 분은 이해가 되실 것) 맨날 작심삼일로 끝나는 당신도 드디어 체중감량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글 : 진주영(J.Y.JEEN) / 계속...>
0
스탬포드2
홍콩 미술 여행
홍콩영화 향유기
굽네홍콩_GoobneKK
신세계
NRG_TAEKWONDO KOREA
유니월드gif
aci월드와이드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