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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쏭달쏭 우리말 사냥] ‘워라밸’을 중시하는 삶... 그런데 ‘워라밸’이 뭐야?
  • 위클리홍콩
  • 등록 2021-02-09 15: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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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2005년에 경기도 문산 지역에서 군 생활을 했는데, 당시 군에서는 부대별로 그곳만의 특별한 생활신조 혹은 좌우명 등을 표어로 만들어 전 부대원이 열심히 외치고 다니도록 권장하곤 하였다. 당시 필자가 근무하던 부대에서는 대대장님께서 표어를 직접 만드셔서 그 표어를 전 대대원이 외치고 다녔는데, 그 표어는 바로 ‘긍사적천(肯思積踐)’이라는 표어였다. 긍사적천(肯思積踐), 그 말의 뜻은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하라」는 뜻이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는 그 말은 군대에서 필자가 가장 많이 사용한 표현 중 하나가 되었으며, 그 말을 모르거나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가차 없는 형벌(?)이 내려졌음은 물론이었다. 그 이후로도 대대장님은 생활 태도와 관련된 다양한 모토를 가지고 부대 생활에 접목시키셨고, 그런 더 나은 삶을 위한 표현이 등장할 때마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부대원들은 암기해야 할 내용이 하나씩 늘어나는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바람직한 삶의 방식 혹은 태도를 뜻하거나 그러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을 뜻하는 표현은 2000년대 이후로 굉장히 많이 등장했는데, 웰빙(Well-Being), 로하스(LOHAS, 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웰니스(Wellness) 등 그 단어들을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러한 표현들을 사용하면 내 삶이 곧 이렇게 바뀌기라도 할 것처럼 사람들은 앞다투어 그 표현을 대화 주제로 사용하고, 혹여 그 표현을 모르는 사람이 등장하면 그 사람이 이러한 삶과 멀리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훈계하듯 그 표현이 추구하는 삶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가르쳐 주곤 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한 표현이나 모토가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나은 삶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스트레스만 증가시키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표현들의 또 다른 문제점은 이 표현들의 대부분이 영어 표현에서 왔다는 점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외국어인지 외래어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표현들이라는 점이다. 사실 로하스나 욜로 등은 그 단어만 들었을 경우에는 당장 그 뜻을 확인하거나 유추할 수조차 없는 표현들이다. 우리말 표현은 줄여놓거나 새로 만든다고 하더라도 드러난 글자들을 통해 어느 정도 의미를 유추할 수 있지만, 이러한 영어 약자 표현은 그 의미를 유추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대화 내내 그 표현이 셀 수도 없이 많이 등장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너무 익숙한 표현처럼 사용하고 있어서 그 뜻이 무엇이냐고 감히 묻지도 못하고 멀뚱멀뚱 앉아 있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온 후에, 혹은 잠깐 화장실에 가서 몰래 사전을 찾아본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필자에게도 이런 비슷한 경험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워라밸’ 표현과 관련된 경험이었다. 필자의 기억에 2년 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당시 필자는 지인 세 명과 함께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건강한 삶, 인생을 즐기는 삶, 보다 안정된 삶 등에 대한 관심은 높아질 대로 높아져,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게 더 오래 살 수 있는지는 대화의 일반적인 주제가 된 지 오래였고, 그 당시에도 그에 대한 열띤 논의(?)가 한창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는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많이 등장했는데, 필자는 그 전까지 ‘워라밸’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대충 웰빙 정도의 단어로 유추는 할 수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 길이 없어, 그 대화에서 그에 대한 언급은 가급적 피하였다. 그냥 기존에 있는 어떤 한 단어를 ‘건강한 삶’과 관련해서 열심히 사용하는가 보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지나갔는데, 그 이후로도 그 단어가 재차 등장하자 녹색 검색창에 그 단어를 입력하게 되었고 단어의 뜻을 확인하고 나니 좀 화가 났다. 

 

워라밸은 ‘Work-Life Balance’를 뜻하는 표현으로, 우선 우리말 발음으로 ‘워크-라이프 밸런스’로 바꾼 뒤 앞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줄여놓은 표현이다. 의미는 좋다. ‘일과 삶의 균형’... 필요하기도 하고 해야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삶을 추구하고 표현할 때 굳이 그것을 원어 표현과 맞지도 않는 이상한 줄임말로 만들어 놓으면 그 의미도 정확하게 전달되기 어려울뿐더러, 필자와 같은 사람에게는 이러한 표현이 다소 거북하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로하스와 같이 이미 원어 표현이 줄여져 나온 경우는 그렇다 치더라도, 원어도 그대로인 표현을 줄여놓은 것도 문제이거니와, 우리말로 충분히 짧게, 그리고 의미 전달이 가능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이런 식으로 이상하게 만들어 놓은 것은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대중의 심리는 충분히 이해한다. 있어 보이기 위해서. 하지만 이러한 대중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국적 불명, 의미 미상의 표현을 공공기관이나 방송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마치 권장하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는 삶은 분명 우리의 일상을 더욱 건강하고 윤택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고, 생활신조로도 삼을 만하다. 하지만 그러한 삶을 사는 데 있어, 그 표현이 꼭 “있어 보여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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