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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은 왜 먹는 것에 목숨을 걸게 되었을까? (1)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6-09-21 12:2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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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3호, 9월22일]   중국인들은 왜 먹는 것에 목숨을 걸게 되었을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제143호, 9월22일]

  중국인들은 왜 먹는 것에 목숨을 걸게 되었을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  텍스트의 분량으로 따져도 족히 책 2권정도 되는 문제로 포스트 한두 단락으로 설명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또한 여러가지 측면을 함께 살펴봐야 해결 될 복합적인 문제이다.

  위의 질문을 달리 표현 하면, 중국에서 '음식문화가 왜 발달할 수밖에 없었는가?' 이다.  먼저 역사적 요인에서 그 원인을 찾아보자.


잦은 전란과 인구증가에 의한 생산력 발전의 불균형과 불안정

  중국 역사는 끊임없는 왕조들이 멸망하고 성립되고 분열되고 통일되는 과정이었다.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면 수십 년에서 수백 년 정도의 일정기간 동안 인구증가와 농경지 개간이 이루어지며 안정적으로 먹을 문제가 해결 되는 듯 하나, 다시 한 왕조의 부패와 무능으로 인해 일어나게 되는 농민들의 봉기와 이민족의 팽창으로 또다시 혼란과 전란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기 마련이다.

  중국 역사에서 중요한 기점이 된 수(隋), 당(唐), 송(宋), 명(明) 말기에는 예외 없이 대규모 농민 봉기와 이민족과의 전란이 일어났으며, 수십 년 동안 진행된 전란에서 많은 인구(생산력)와 농경지(생산수단)가 사라졌다.


인구증가의 문제도 늘 '먹을 것'을 제한하는 이유가 됐다.

  중국 역사상 최초로 인구조사가 이루어진 한(漢)대 이후 송(宋)이전까지 2000만~6000만 정도이던 인구가 명(明)에 와서 1억 2000만에 이르렀고, 청(淸)나라 건륭(乾隆)무렵에 3억을 넘어 섰으며, 아편전쟁 무렵에는 이미 4억을 넘어섰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의 면적(경작지)이 유한한 상태에서 사람과 가축, 철기류의 농기구에 의존하는 농업생산 방식이 인구 증가율을 따라가지 못했다.

  놀라운 것은 1인당 먹을 수 있는 식량의 비율이 한(漢)이후 2000년 동안 큰 차이가 없었고 대부분의 시기에는 오히려 한(漢)나라때 보다도 1인당 먹을 수 있는 식량의 비율이 낮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중국인들은 '먹을 수 있는 모든 것'과 '먹을 수 있는 모든 방법(조리와 가공,저장법)'을 강구해야 했다.

  명(明)때 지어진 <구황본초(救荒本草)>라는 책에는 양식이 없을 때를 대비해 먹을 수 있는 풀 종류와 나무 종류를 무려 414종이나 열거 하고 있다.

  '먹어서는 안되는 것'이 없었던 중국인들의 관념 세계는 어찌 보면 인류가 걸어 온 고난의 역사를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 문제는 중국이 중세까지 서양국가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문명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반복 되어온 "안정 - 전란 - 인구증가 - 생산력 발전의 불균형"의 악순환으로 인해 명청(明淸)이후 서구 열강에게 끊임없이 침략 당한 원인과 관련된 중요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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