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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코치에게서 온 편지(94) - 주고 싶은 마음 받고 싶은 마음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6-09-21 14: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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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3호, 9월22일]   사방을 둘러봐도 유리창 하나 없는 컴컴하고 습한 동네 우체국보다 창이 큼지막해서 기분까지 후련해지는 센트럴의..
[제143호, 9월22일]

  사방을 둘러봐도 유리창 하나 없는 컴컴하고 습한 동네 우체국보다 창이 큼지막해서 기분까지 후련해지는 센트럴의 중앙 우체국을 일부러 찾아갈 때가 종종 있습니다.  미리 주소를 적고 우표를 붙인 봉투를 가까운 우체통에 밀어 넣고 돌아서면 심플한 것을 굳이 그 먼 데까지 가서 우표를 사고 수첩을 뒤져 주소를 써가며 시간+정력낭비를 감행하는 까닭은, 하늘이 내다보이는 창가에서 유난을 떠는 그런 순간에나 맛볼 수 있는 느림의 여유와 로맨스의 감흥 때문입니다.  마침 흐르는 분위기에 절묘히 들어맞는 배경음악이 깔리듯 떠오르는 한 편의 시 때문이기도 합니다.


                                       행 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본격적인 사랑의 참맛은 알지 못해 부푼 기대와 호기심만 넘치던 시절, 사방에서 쏟아지는 사랑의 정의들이 가뜩이나 어리숙한 마음에 뿌연 혼돈만 더하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엔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면서"라는 유행가가 인기의 절정을 누렸습니다.  친척에게 소개받은 남자와 3개월 만에 결혼한 과 선배는, 비비고 살다보면 없다가도 생기는 게 사랑이더라며 실전으로 깨달은 나름의 사랑 론을 후배들 앞에 늘어놨습니다.  자칭 "소개팅의 여왕"이라 불리던 미모의 친구는 사랑에 대해 믿음도 완전포기도 아닌 애매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얘, 너 미팅하고 오니? 어떻든? 내 고등학교 동창은 미팅에서 만난 남자랑 잘 돼서 지난주에 결혼식까지 했다는데, 넌 여태 미팅에서 사랑으로 연결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니?"
  "미팅에서 뭘로 연결이 된다구? 너 지금 누구 놀리니? 마침 폭탄들만 주르르 나온 지뢰밭에서 겨우 살아 돌아왔구만."
  "일단 외모에서 1차 통과한 자들만 상대해주겠다 그거니?"
  "예스! 내가 실명을 했다면 모를까.  그리고 난 미팅자리에 소울메이트 찾으러 오는 애들이 당최 이해가 안 되더라."
  "미팅한 남자랑 혼인 서약한 친구가 있다니까 얘가 이러네."
  "미팅이란 시스템의 '혹시나 역시나' 사이클을 깨고 성공한 부러운 극소수가 있기는 하지 그런데 아냐, 아무리 그래도 미팅에서 사랑을 찾느니 차라리 우물에서 파르페를 찾겠다! 로맨스에 대한 기대가 클수록 실망의 상처도 깊은 법이니까."

  이성을 고르는 기준에 있어서 외모지상주의를 외치던 그녀는, 키가 작아 자기가 하이힐을 신을 수가 없다는 이유로 네 번이나 퇴짜를 놓은 남학생 J를 다시 만나 약혼식을 올린 후 함께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사랑의 존재를 믿고 싶지만 그것을 찾지 못할 것이 두려워 도도함과 시니컬한 태도로 마음을 무장해왔던 그녀에게 하루는 물었습니다.

  "넌 사랑을 주는 게 좋으니 받는 게 좋으니?"
  "난 욕심이 많아서 받는 게 좋은 것 같아."
  "너 지금 J랑 행복하니?"
  "물론이지!"
  "몇년전 J가 스토커마냥 꽃을 사들고 나타나 헌신적으로 쫓아다닐 때 넌 전혀 행복하지 않았어.  그렇지만 지금의 너를 봐.  그때와는 정반대로 그에게 사랑을 주는 지금에야 비로소 행복을 느끼잖아?  넌 네가 생각하는 만큼 냉정한 사람이 결코 아니다."
  "?"

  그때 친구에게 물었던 똑같은 질문을 며칠 전 만난 싱글녀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들은 사랑을 명품이나 다이아몬드같은 고가품이나 돈다발쯤으로 해석했는지, 큼지막한 걸로 무조건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고 팔까지 벌려가며 말했습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사랑을 줄 때가 행복합니까 아니면 받을 때가 행복합니까?  이유야 어쨌든 사랑을 주지 못하는 심정이 어떤 것인가를 웬만큼 알게 된 지금의 저는 청마의 의견에 자신 있게 한 표를 던지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머리로만 이해했던 한 줄의 시구를 수십 년이 지난 요즘에야 가슴으로 공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덜 이기적이고 아낌없이 줄 수 있는 마음을 지녔다고 믿습니다.


라이프 코치 이한미 ICC CTP
veronica@coaching-zo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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