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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영 회장의 생활칼럼 시즌3] 3탄- 뉴월드 그룹과의 인연
  • 위클리홍콩
  • 등록 2022-04-22 11: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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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4대 재벌그룹 중의 하나인 뉴월드 그룹과 나의 인연은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이루어졌다. 홍콩에서 창업한 후 건축용 삼양밸브와 선박용 벤드 아이템을 취급하는 1인 오퍼상으로 서울과 부산의 제조업체를 방문하며 분주히 다닐 때였다. 이즈음에 많은 물량을 한꺼번에 한국으로 역수출해야 하는 무역 아이템이 갑자기 생겨났다. 한국산 제품을 동남아 국가에 수출하는 것만으로도 바빴던 오퍼상이라 감히 타 국가에서 한국 시장으로 역수출하는 비즈니스는 엄두도 못 내고 있었는데 뜻밖의 기회가 다가왔다.

 

홍콩에서 수입된 벽타일을 일부 사용하여 완공된 아파트 단지 전경대한민국 제6공화국 시절에 노태우 대통령이 추진한 '2백만호 아파트 건설'은 국내에 급작스런 건설 붐을 가져왔다. 국내의 모든 건설자재 제조업체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갈 수 없게 되었으며 해외의 건자재를 국내로 급격히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어느 날 나는 유원건설 재직 시 면식이 있었던 미광타일 정고휘 사장과 하림통상의 김병철 팀장으로부터 벽타일을 중국이나 홍콩에서 공급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당시 홍콩에서 건자재 관련한 생산업체가 거의 없었던 시절이었지만 업체 Sourcing 방법의 ABC였던 전화번호부 Yellow Page를 찾았다. 직원도 한사람밖에 없었던 시절이라 혼자서 열심히 번호부를 뒤적였고, 홍콩 TaiPo(大埔) 공업단지에 소재한 뉴월드 그룹 산하의 '세인트 갤러리'공장을 무작정 찾아가게 되었다. 이것은 1인 오퍼상의 제일 중요한 생존 철칙인 '즉각적인 행동 실행'이었다.

 

그 당시 이 공장은 홍콩의 유일한 벽타일 제조업체였다. 부동산 건설이 주업종인 뉴월드 그룹의 계열사로서 이태리에서 제조설비를 전부 턴키베이스(Turn-Key Basis) 방식으로 수입하여 타일을 제조한 지 몇 년 되지 않았던 신설공장이었다. 그래서 초기에 생산되었던 타일 제품들은 홍콩 내수 외에는 수출 판로가 거의 없었다. 또한 타일생산 공장인 경우 제품생산설비가 일단 가동을 시작하면 연속적으로 많은 양의 제품이 한꺼번에 만들어져 나오는 시스템이라 초반에 생산된 제품의 재고가 상당히 많이 창고에 쌓여있었다. 따라서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많은 양의 재고를 신속히 처분하라는 재촉을 그룹 비서실로부터 받은 타일 공장 책임자는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엄청난 양의 제품인 약 200 컨테이너 재고 물량을 그 당시 Fanling(粉嶺) 지역의 자회사 창고에 보관 중이었기 때문에 공장의 재무 상황이 상당히 어려웠던 때였다.

 

공장 측에서는 갑자기 나타난 홍콩 거주 한국인인 나에게 공장 상황을 상세하게 알려주었으며, 한국 시장에 모든 재고 물량과 신규 생산품을 판매코자 파격적인 가격과 조건을 제안하였다.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덤핑가격이었다. 샘플을 한국의 수입업체가 신속하게 분석해 본 결과, 품질도 한국에서 사용 가능한 수준으로 판명되었다. 그리하여 홍콩의 공장 재고 물량 전부를 계약하여 수출을 추진하였고, 그 뒤에도 새로운 생산품에 대한 수출도 같이 병행하게 되었다.

 

사실 홍콩 '세인트 갤러리' 타일 공장의 초기 생산제품은 한국의 타일에 비하여 품질이 많이 떨어지는 제품이었으나 적절한 사용처를 찾아서 판매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으로 인하여 확보한 모든 물량을 단기간에 소진할 수 있었다. 그 당시는 한국 시장에서 단기적으로 모든 건설 관련 원자재의 수요가 엄청났기 때문에 타일, 시멘트, 건축용 철강 재료 등, 심지어 모래조차도 외국에서 수입하였던 시절이었다.

 왼쪽 두 번째 Henry Cheng 명예회장, 오른쪽 첫 번째 아들 Adrian Cheng 회장, 오른쪽에서 두 번째 딸 Sonia Cheng

타일은 아파트 건설 시 마감재로서 중요한 자재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대량의 재고가 갑자기 수입되었으니 부족한 타일로 인하여 건축공사의 준공을 받지 못하던 수많은 시공업체에게는 굉장한 도움이 되었다. 한편 수출 물량확보는 되었으나 워낙 많은 물량이라 화물 해상운송도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외국 선사 대신 한국인 소유의 선사를 고르다 보니 그 당시 모교 이사장(거창대성고)이셨던 양재원 회장 소유의 동남아 해운 홍콩대리점인 'Kong Hing Shipping'을 이용하였다.

 

한편 홍콩의 공장 측에도 엄청나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이때까지 판매할 수 없었던 재고로 인하여 경영층의 질책을 받고 있었던 공장장 및 책임자들이 그룹 비서실로 달려가서 상황을 보고한 후 극한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급기야는 뉴월드 그룹 회장의 관심 사항으로까지 보고되었다. 내가 홍콩에서 한국 시장에 판매를 중개한 것을 알게 되었고, 자초지종을 파악한 그룹 회장의 지시로 회장실에서 Henry Cheng (鄭家純) 그룹 회장과의 미팅이 어레인지 되었다. 이 미팅에서 한국 시장에 대한 정식 대리점 계약서를 영광스럽게 받았다. 그날 또한 레스토랑의 벽면과 천정 연결 부분을 사방으로 도금하였다는 그룹 소유의 빅토리아 하버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구룡 바닷가의 'Regent' 호텔 레스토랑에서 기억에 남는 Seafood 요리도 대접받았다.


한국인의 긍지를 강하게 느꼈던 날이었다.

 K11 MUSEA' 쇼핑몰 앞에 서있는 김운영 회장

30여년이 흘러서는 뉴월드 그룹의 재개발계획으로 침사초이(尖沙咀)의 뉴월드 호텔 및 쇼핑몰은 사라지고, 초현대식 스타일의 거대한 'K11 MUSEA' 쇼핑몰이 탄생하였다. 몇 년간의 재건축공사를 통하여 최근에 홍콩의 핫한 명소로 오픈한 것이다. 아쉽게도 홍콩의 유일한 벽타일 제조공장인 '세인트 갤러리' 회사는 뉴월드 그룹의 구조조정에 따라 몇 년 전 중국으로 설비를 옮겨 홍콩에는 예전의 흔적이 사라졌다. 창업주인 선대 회장도 몇 년 전 별세하였으며, 대리점계약과 함께 나에게 감사 인사를 해주었던 신사복 상의와 멜빵 스타일 바지 차림의 멋쟁이 2세 Henry Cheng 회장도 지금은 명예회장으로만 활동하고 있다. 최근 3세 경영인 Adrian Cheng(鄭志剛)의 한국문화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 홍콩재계에서도 널리 알려지고 있다.

 

세월이 유수(流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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