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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나는 지금 터키로 간다 1 - 대한항공과 함께 트로이를 찾아 떠나는 여행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6-10-12 12: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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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5호, 10월13일] "트로이, 우리는 그 이름만 들어도 얼마나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되는가! 우리 아카이아인들이 거기서 참아야 했던 불행들은..
[제145호, 10월13일]



"트로이, 우리는 그 이름만 들어도 얼마나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되는가! 우리 아카이아인들이 거기서 참아야 했던 불행들은 어떠했던가! 아킬레우스가 시키는 대로 약탈을 하기 위해 안개 자욱한 바다를 가로질러 이어졌던 공격들, 프리아모스의 왕도의 성벽을 에워싸고 벌어졌던 전투들........."

노년의 왕 네스토르는 그리스 서쪽 연안에 있는 이타카 섬에서 찾아온 귀족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북쪽으로 몇 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트로이의 푸르른 평원에서 이루어진 피의 원정에 대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이야기 했다.


  언제 봐도 가슴 설레는 매력적인 남자 브레드 피트가 트로이의 전쟁영웅 아킬레우스로 분한 영화 <트로이>가 극장가에서 한창 피치를 올리던 2년 전 여름, 나는 이집트로 가기 위해 대한항공편에 몸을 실었었다.

  긴 여행일정으로 커질 대로 커진 내 여행 가방 속에는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   2권과 이집트 여행안내서   2권, 고대미술과 문학으로 읽는 트로이 신화, 그리스로마신화 등이 무게를 더하고 있었고, 나는 밤을 지새워 가며 그 책들을 읽어 내렸다.  그 중에서 수잔 우드포드가 쓴 '트로이 신화'는 나를 더욱 깊숙이 트로이의 매력에 빠져들게 했다.  더구나 비행기의 스크린에서는 '하인리히 슐리만'이 신화속의 고대 트로이가 존재한다고 철저히 믿고 그것을 발굴해 내는 역사 다큐멘터리가 상영되고 있었으니 이집트로 향하고 있는 내 가슴속에는 람세스 2세와 함께 트로이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이미 트로이가 있는 터키를 다음의 내 여행 목적지로 삼았는지 모른다.  

  터키로 가기위한 마음의 준비는 이미 2년 전에 마친 상태이나 해외여행으로 인한 재정적인 부담은 몇 개월 혹은 1년 가까이 내 생활을 궁핍하게 하는지라 '터키행=마음만 굴뚝'인 채로 지내고 있을 즈음, 대한항공의 김남선 상무님과 만남을 갖게 된 자리에서 염치도 좋게 내 마음속의 '굴뚝'을 슬며시 보여드렸더니 흔쾌히 터키행을 후원하겠다고 하시는 게 아닌가?  아,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드디어 내 꿈이 이루어지려고 한다.  나는 터키로, 고대의 도시 트로이가 잠들어 있는 곳으로 아킬레우스의 숨결을 느끼러 떠날 수 있으리라.  터키여, 트로이여 기다려 다오.  내가, 내가 그대 곁으로 간다네!

  여행 일정을 짜는 동안 내가 다니고 있는 홍콩한인성당에서는 같은 시기에 이집트-터키 성지순례를 준비하고 있었다.  다행히 내 일정과 잘 맞아 떨어지는 지라 신부님께 특별히 부탁을 드려 터키에서만 합류하는 것으로 하고, 일행이 이집트를 순례하고 있는 동안 나는 터키로 먼저 날아가 내가 보고 싶고, 느껴보고 싶은 나만의 여행을 하기로 했다.  밤을 꼬박 새고 다음 주 신문 원고를 쓰고 나니 아침이 뿌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비몽사몽간에 짐을 꾸렸다. 짐은 왜 그렇게 꾸려도 꾸려도 부족한 게 많은지, 두어 시간이 지나도 마무리리가 되질 않았다. 미리 불러놓은 택시기사는 왜 안내려 오냐며 성화를 댔다.

  10여 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대한항공 공항 직원이 나를 반갑게 맞았다.  같은 비즈니스석이라도 아래층보다는 위층이 한적하고 좋다며 위층으로 마련하겠단다.  임보경 과장이 어떤 물밑 작업을 벌였는지 홍콩에서부터 서울, 터키 그리고 돌아오는 여정까지 전 노선을 비즈니스석으로 안배를 해 놓은 모양이다.

   비행기 탑승을 위해 게이트로 걸어가던 중 비몽사몽간이던 내 머릿속으로 찌리릿 하며 1천 볼트의 전기가 한 순간 투입되는 것이 아닌가.  아뿔싸! 짐 싸는 동안 빠트린 걸 채워 넣기 위해 공항 왓슨스에서 이것저것 샀는데, 돈을 잘 지불한 후 지갑을 안전하게 챙기는데 신경을 쓰느라 산 물건 들고 나오는 걸 깜빡하고 만 것이다.  이를 어쩐다.  이리저리 잘 흘리고 다니는 내가 출발 전부터 사고를 치고 있다. 적선했다 치자, 여권이나 비행기 티켓, 지갑을 두고나오지 않을 걸 천만 다행으로 여기자. 액땜이다 액땜. 그러나 저러나 어째 이번의 내 터키 여행도 점점 조짐이 심상치가 않아진다.  아, 이러는 내가 정말 나도 무섭다.


신데렐라가 되어

  터키로 가기위해 서울을   경유하는 대한항공편의 내 자리는 2층 비즈니스석 가장 앞쪽에 마련돼 있었다.  햇살 잘 드는 넓고 안락한 의자에 앉아 래드 와인 한잔하며 눈을 감는다.  수많은 상념들이 앞 다퉈 스치고 또 끊임없이 뒤따른다.  여행 계획부터 예약, 발권까지 수차례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백만불짜리 미소를 잃지 않고 묵묵히 일처리해준 대한항공의 임보경 과장님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역시 든든한 후원을 보내주신 신무철 부장님, 트로이를 찾아 떠나는 이번 여행에 결정적인 힘이 되어 주신 김남선 상무님께 대한 무한한 감사로 가슴이 뭉클해져 온다.  어찌 이런 큰 행운이 내게 있을까... 꿈이면 제발 깨어나지 않길.  내가 이들을 위해 '터키에서 날아다니는 양탄자라도 한 짐 가득 사가지고 와서 은혜를 톡톡히 갚아야지' 하며 '마음을 먹어보려는 순간' 피곤에 절은 내 영혼과 육신은 어느새 까무룩 잠이 들어버렸다.  

  서울에 내려 서점으로 달려가 터키관련 여행책자 두어 권과 외교부 이희철 외교사료과장이 썼다는 신화와 성서의 무대, 이슬람이 숨쉬는 땅 '터키'책 한 권, 박완서와 이문열의 책 한 권씩을 사서 배낭에 넣고 어깨에 멨다.  순간 부자가 된 느낌에 뿌듯함이 밀려온다.  책 무게가 짐 무게에 더해져 내 몸이 휘청댄다.  내가 가진 지식의 무게에 못 이겨 내가 이렇게 휘청대면 얼마나 좋을까....  

  인천공항의 대한항공 비즈니스라운지에서 치즈와 와인을 들며 열심히 시간 죽이기를 하다 5시30에 출발하는 KE-955편에 올랐다.  산뜻하고 생동감 넘치는 유니폼에 얕게 패는 볼우물이 매력인 아름다운 여성 승무원과 친절한 웃음이 너무도 스윗하고 잘생긴 남성 사무장님이 쉼 없이 오가며 고객서비스를 한다.  이렇게 앉아 그들의 빈틈없는 서비스를 받는 게 송구스러워 몸에 배인 무수리 감각으로 벌떡 일어나 무어라도 거들고 싶지만, 비즈니스석에 앉은 점잖은 비즈니스맨들이 기겁을 할까봐 애써 본능을 억누른다.  

  비즈니스석은 일반석에 비해 무척이나 넓고 편안하고 조용해 쾌적한데다 기내식도 훌륭하다.  전채부터 디저트까지 코스별로 나오는 스테이크요리와 삼삼한 된장국이 포함된 맛깔스런 유기농 웰빙 비빔밥은 또 어떤가, 맛있는 치즈와 갖가지 화이트, 래드 와인... 이런 이유에서 사람들은 일반석의 몇 배나 하는 비용을 과감히 지불하고서라도 비즈니스석을 이용하는가 보다.  

  그러나 저러나 어쩐다.  밤 12시가 되면 누더기로 돌아와야 하는 신데렐라처럼 나도 이번 여행을 마치고 나면 저렴한 항공사를 찾아 이리저리 전화를 돌려대야 하고, 그나마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의 일반석이라도 탈수 있다는 것에 그저 감지덕지 하는 홍콩의 평범한 소시민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을.  

  나를 억누르고 있는 무거운 피로감에 터키로 날아가는 11시간 내내 죽은 듯이 잠을 자고 싶었지만 배낭 속에 잔뜩 넣어가지고 온 책들이 도대체 궁금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에구 내 신세야, 나는 이래서 또 누적된 피로를 여행지로 짊어지고 가야하는가 보다.

  사람들이 모두 잠든 내내, 일정을 다시 짜는 작업을 하고 터키에 관한 공부에 매달려 책과 씨름을 하고 있으려니 '도대체 뭐 하는 여잔데 잠도 안자고 저러고 앉아있나, 그 먼 길을 왜 혼자가고 있나' 싶은지 승무원들이 궁금증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물 한잔 드릴까요?" 하며 다가가 물을 줄 생각은 않고 이것저것 묻기 시작한다.  직업이 무엇이에요? 교수세요? 역사학자세요? 전문 여행가 같기도 하고...  어머머머 혼자 여행하세요, 대단하세요.  무섭지 않으세요.  멋지세요. 며칠 동안 어디를 가실건데요, 호텔은 잡으셨어요.  그들이 그렇게 내게 다가와 이야기 하고 있는 동안 그 달콤한 웃음의 잘생긴 사무장님도 합세를 한다.  이 나이에도 그를 보니 갑자기 마구 쑥스러워 진다.  80살 먹은 할머니도 여자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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