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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홍생] 홍콩의 대표 국민 음료, 홍콩식 밀크티 ‘나이차(Naai Caa)’
  • 위클리홍콩
  • 등록 2022-05-20 11:12:09
  • 수정 2022-05-24 20:3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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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의 차(茶), 영국의 차(茶)와 다른 홍콩 고유의 차(茶)


평소에는 단 것을 찾는 사람이 아니지만,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이 좀 빠진다 싶으면 이상하게 달달한 것이 당긴다. 그럴 때면 찬장에 고이 넣어둔 립톤 인스턴트 밀크티 스틱을 두 개를 꺼내서, 가루가 녹을 정도로만 뜨거운 물을 조금만 부어준 후 얼음을 가득 채워 우유를 부어준다. 이것이 바로 나만의 초간단 레시피 동라이차(아이스 밀크티)다. 부드럽고 달달한 홍콩식 밀크티 한잔에 피로가 가시고 몸속 hp(에너지)가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평소에는 립톤 인스턴트 밀크티 스틱을 이용한 편법으로 밀크티를 만들어 마시지만, 손님이 오거나 기분을 내고 싶은 날에는 직접 집에서 밀크티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홍콩식 밀크티를 만드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마치 우리나라에서 집집마다 자신만의 김치 레시피를 갖고 있듯이 홍콩에서도 식당마다 자신만의 밀크티 레시피를 가지고 있다. 어떤 종류의 홍차잎을 얼마만큼 넣고 얼마나 오랫동안 끓이냐, 어떤 필터에 풀링(pulling, 끓인 홍차를 실크같이 부드러운 천 필터에 여러차례 차잎을 걸러내는 과정)을 어떤 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밀크티의 맛이 달라지고 차별화된 맛을 내게 된다. 정석은 아니지만, 집에서 직접 홍콩식 밀크티를 만들 때는, 집에 있는 아무 종류의 홍차 티백 여러 개를 뜨거운 물에 팔팔 끓여준 후 찻잎을 진하게 우려낸다. 살짝 따뜻하게 데운 가당 연유와 찻물을 3:7 비율로 잔에 부어주면 나만의 밀크티가 완성된다. 여러 번 만들어 먹다 보면 내 입맛에 딱 맞는 황금 비율의 나만의 밀크티를 찾게 된다.

 

제대로 된 밀크티를 마시고 싶다면, 동네 차찬텡(Cha Cheng Teng·茶餐廳)이나 대가락같은 패스트푸드점에 가면 된다. 홍콩식 밀크티인 나이차(Naai Caa·奶茶)는 골목골목마다 파는 가게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그야말로 홍콩의 국민 음료다. 홍콩에서 하루에 소비되는 홍콩식 밀크티가 약 250만 잔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올림픽 규격 수영장 8.5개에 달하는 양이다. 

 

사실 대부분 사람들은 차와 우유를 섞어 마시는 나라를 떠올릴 때 영국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영국에서는 홍차에 우유를 붓느냐(Milk in After), 우유에 홍차를 붓느냐(Milk in First)냐 논쟁이 있을 정도로 밀크티 사랑이 유별나다. 홍콩도 홍차와 우유를 섞는다는 개념에서는 비슷할 수 있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홍콩식 밀크티는 영국식 밀크티보다 홍차를 더 진하게 우려내서 우유 대신 무가당 연유(evaporated milk)를 넣는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무가당 연유는 일반 우유의 수분 60%를 증발시켜 농축시킨 우유로, 홍콩에서는 일반적으로 무가당 연유를 섞은 밀크티에 고객이 자신의 입맛대로 설탕을 첨가하는 밀크티와 처음부터 가당연유를 넣어 만든 달달한 밀크티가 있다. 영국 밀크티보다 진하게 우린 홍차에 연유를 넣기 때문에 영국 밀크티보다 진하고 크리미하면서 부드러운 맛을 낸다. 

 

 

홍콩식 밀크티는 어떻게 국민 음료가 되었을까? 홍콩식 밀크티는 영국 식민지 시대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홍콩의 영국 식민지 시대에 많은 영국인들이 홍콩에 왔는데, 이때도 영국인들은 차를 마셨다. 그러나 당시 중국은 낙농업이 발전되지 않았기 때문에 홍콩에서 신선한 우유를 찾기란 매우 어려웠고 가격도 비쌌다. 그래서 영국식 밀크티는 고급 레스토랑이나 호텔에서만 찾을 수 있는 상류층들의 음료였다. 구하기 어려운 우유를 대체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바로 연유다. 우유의 수분을 증발시켜 부피를 절반으로 줄이고 캔에 보관해 보관성을 높였다. 네슬레(Nestlé)에 따르면, 대영 제국 시대에 영국의 지배를 받던 국가에 연유가 가장 많이 수출됐다. 


Richard Collins, ‘A Family of Three at Tea’, 1727 | © DeAgostini / Getty Images

상류층들이 주로 향유하던 밀크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하나의 트랜드로써 서민 음식으로 서서히 변모했다. 뺑삿(Bing Sutt·冰室, 홍콩식 옛날 다방), 따이파이동(Dai Pai Dong·大排檔, 홍콩식 노천식당) 등에서 영국인의 음료인 밀크티를 홍콩 서민들의 입맛에 맞게 바꿔 제공됐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육체적 노동이 많은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즐겨 찾았다. 고된 육체 노동에 고갈된 체력과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진하게 우린 홍차와 달달한 연유를 넣어 만든 고카페일 밀크티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이후 1950~60년대에는 홍콩 서양식 레스토랑인 차찬텡이 등장하면서 직장인 등 일반 서민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로 자리매김했다. 시간에 따라 홍차의 진함 정도도 달라졌고 남녀노소 모두가 즐겨 마실 수 있는 음료가 되었다.

 

 

홍콩식 밀크티는 홍콩인들의 탈식민지 역사와 홍콩인으로서의 정체성 확립과도 관통된다. 1997년 홍콩 주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되면서 많은 홍콩인들이 중국 본토인과 영국인과는 다른 홍콩인이라는 정체성을 정의하고 규명하려던 역동적 시기였다. 홍콩인들은 중국에도 없고 영국에도 없는 홍콩에만 찾을 수 있는 고유의 문화 유산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정의했으며, 이때 홍콩식 밀크티가 바로 그 중 하나다. 홍콩식 밀크티는 2017년 홍콩 무형문화재로 지정됐으며, 무형문화재 중 먹거리로 등재된 음식 3가지 중 밀크티가 포함됐다.

 

오늘은 홍콩의 국민 음료인 나이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봤는데, 나이차 얘기를 하다보니, 나이차 한잔 생각나지 않으신가요? 취향껏 잇나이차(따뜻한 밀크티)나 동나이차(아이스 밀크티) 한잔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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