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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하 칼럼 - 중국에서 중국어 배우기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4-10-13 17: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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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호]   유학한다고 홍콩에 처음 도착해서 꼬박 3주 동안 나는 김치를 먹지 못했다.  김치뿐만이 아니라 중국음식 ..
[제51호]

  유학한다고 홍콩에 처음 도착해서 꼬박 3주 동안 나는 김치를 먹지 못했다.  김치뿐만이 아니라 중국음식 다운 음식을 먹지 못했다.  그저 쌀밥 위에 오향냄새가 나는 찐 닭다리 하나 덩그러니 올리고, 그 위에 간장을 뿌린 닭다리밥(鷄腿飯)만을 먹었다.  그리고 그것을 목구멍으로 넘기기 위해 꼭 필요한 콜라가 옆에 있었
다.  미국의 닭답게 칠면조 다리 같은 큰 닭다리를 한 입 베어 물고 콜라를 이용해서 그것을 넘길 때는 눈물이 찔끔 나오는 것을 참아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루빨리 현지 적응해야 한다는 선배의 협박, 그리고 한 푼이라도 절약해야 한다는 유학생의 가난, 그리고 개강전이라 학교에 접근하지 못해서 발생했던 이 난관은 김치 꿈으로 절정을 이루었었다.  2주가 지나자 매일 밤 꿈에서 김치와 김치찌개를 허급지급 퍼먹고 있는 나 자신은 내가 봐도 불쌍했다.  3주가 지나서 선배 사촌형의 이사를 도와주고 한국식당에서 뒤풀이를 하면서 나는 미리 나온 반찬을 다 집어먹고서야 지긋지긋한 김치 병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나는 홍콩에서의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홍콩에서 한참이나 지나서야 나는 김치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 되었고, 또 한참이 지나고서는 중국음식을 첫 손가락으로 꼽는 중국음식 마니아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것과 더불어 나의 중국지식은 쌓여 갔던 것이다.  한 국가를 안다고 할 때, 그것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는 그 나라의 음식을 마음대로 시킬 줄 아느냐 모르느냐하는 것이다.  특히 중화권역에서 살면서 중국음식을 모른다거나 또는 싫다고 하는 것은 중화권역에서 그저 목숨만 연명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소극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말의 다름 아니다.  중국요리는 중국문화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현지화하지 않고 현지에서 성공할 수는 없다.  현지인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채 현지에서 성공할 수는 없는 법이다.  현지에서 한국 음식을 먹으면서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현지 한국인만을 상대로 영업해서 연명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보면 틀림없는 연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중국에 도착하면 나는 대체로 그날 저녁은 현지에서 공부하고 있는 후배들이나 학생들과 자리를 함께 한다.  반가운 나머지 무수히 많은 화제가 난무한다.  그들과 대화하면서 나는 유학생은 주로 두 가지 의식형태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즉 유학하고 있는 나라에 대하여 과도한 칭찬이나 극단적인 비판이 그것이다.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은 그것이 고집으로 비칠지라도 칭찬으로 일관한다.  (아마도 그것은 현재 자신의 위치에 대한 자신감의 증진을 위한 것일지도 모름) 위기의식이 비교적 강한 사람은 비판으로 일관한다.  이 논리는 유학생 외에도 교포나 주재원에게도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이 경우 그들의 의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의 외국어 실력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자신의 외국어 실력에 대해서 자신감을 갖고 있을 경우 현지인과의 접촉이나 현지어로 된 정보의 취득이 그만큼 더 쉽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국에서의 외국어 실력은 과정이 아니라 목적일 수밖에 없고 때로는 삶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중국에서 아니면 홍콩에서 어떻게 공부해야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냐 하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아주 까다로운 질문이다.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나는 한국의 라디오 얘기를 먼저 꺼낸다.  나는 FM 라디오 모 프로그램의 애청자이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라디오를 크게 틀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프로그램은 듣고 있으면 그날의 주요 뉴스는 물론 날씨, 교통, 요즈음 유행하는 유머까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것은 진행자의 생기발랄한 목소리로 전해지는 그의 긍정적이면서 적극적인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내가 얼굴을 찌푸리는 코너가 있는데 바로 원어민이 나오는 영어 회화 한마디 시간이다.  간단하거나 특이한 생활영어 회화를 한마디씩 소개하는 코너인데 나는 그야말로 웃기는 장난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생활회화를 하루 한마디씩 가르쳐준다는 것이 그 코너의 목표인 모양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그런 코너는 외국어회화 수준 제고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외국어가 대단히 어렵다는 인식만 깊게 해주는 치명적 독소가 된다.  그렇게 1-2분 들었다고 해서 그 문장이 외워지는 것도 아니고 영원히 뇌리에 남아서 필요한 경우 튀어나오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극단적으로 미국에 갔다고 영어 그냥 잘 되는 것 아니고 중국에 갔다고 중국어가 자동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 이치와 마찬가지이다.  외국어 회화는 자기 스스로 어떤 상황을 설정해서 그 상황을 인식하고 이해한 바탕 하에서 머리 속으로 되풀이해서 떠올려볼 때 자기화 한다.

  요컨대 내가 움직일 때 마다 그 상황을 머리 속으로 바꾸는 작업이나 가만히 책을 보면서 나의 머리 속으로 그 상황을 그리면서 입으로 토해보는 방법 말이다.  그렇게 몇 달간 <머리 굴리는> 연습을 하고나면 그의 외국어 회화 수준은 이런 정도까지 진보하게 된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외국인이거든요. 천천히 말씀해 주세요>, <종이에 써 주시겠습니까?>. 외국에서 외국인에게 눈을 똑바로 뜨고 이렇게 질문이나 요구를 할 수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의 외국어 수준은 이미 충분하다고 본다.  그 때부터 그는 자신감을 가지고 현지화하는 것이다.

  외국에서 외국어 못하면 진짜 왕따로 살거나 한국인끼리만 사이좋게 살아야 한다.  외국에 어학연수 나온 학생들이나 어학 연수하는 직장인들이 자기들끼리만 뭉쳐서 돌아다니면서 하라는 외국어 공부는 안하고 한국어만 잔뜩 늘어서 귀국하는 사람들 많이 있다.  또 직장에서 월급 엄청 받는데도 불구하고 외국어 딸려서 외국인 접촉 기피하면서 어영부영 근무하고 하루 종일 한국 신문 그리고 주간지 월간지를 통독하고 있는 사람도 많다.

  해외 체류는 우선 외롭다.  외국에서는 그냥 외롭다.  따라서 한국인끼리 자꾸 모이게 된다.  같이 있으면 조금 더 위안을 받게 된다.  그래서 학생이면 학생끼리 직장인이면 직장인끼리 동족 모임을 자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외국어가 안 되는 학생이나 직장인은 정도가 훨씬 심해진다.  그들은 필요한 모든 정보를 동족에게만 의존한다.  그리고 모국의 매체에 의존한다.  그러니까 해외에 가서까지도 그 나라에 대한 정보를 국내 언론을 통해서 얻는 것이다.

  한국 유학생에 대한 중국 학생들의 비판은 분명하다.  몰려다니는 것만으로는 조직폭력배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어에 대한 전반적인 수준을 제고시키기 위한 노력은 뒷전이고, H.S.K.(중국어수평고사) 준비에만 몰두한다는 것이다.  몰려다니는 것으로 본다면 이런 현상은 비단 학생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 곳곳에 나가있는 한민족의 몰려다니기는 이제 전 세계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대학의 사회학자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한민족의 몰려다니기를 연구해왔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외국어 학습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생각해보았다.


유영하(柳泳夏 文學博士)

韓國 天安大學校 語文學部 中國語學專攻 敎授
中國 南京師範大學 中韓文化硏究中心 硏究敎授

硏究室 82-41-550-0405 / (校)Fax 82-41-550-0559
website : www.tigertail.co.kr
e-mail : yongyongxia@cheon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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