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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홍콩유감 [有感] 13 - 수퍼에서 생긴 일 (下)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6-10-17 12:4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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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6호, 10월19일]   이것저것 많이 사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가격이 너무 많이 나왔다. '품목은 많지만 대부분 싼 것들인데' 고개..
[제146호, 10월19일]

  이것저것 많이 사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가격이 너무 많이 나왔다. '품목은 많지만 대부분 싼 것들인데' 고개를 갸웃하며 영수증을 재빨리 훑으니, 야채주스 3캔을 글쎄 38캔으로 찍는 바람에 168불이 추가된 것이다.  내내 보고 있다가도 엄마가 고개 한 번 돌린 순간 아이가 고꾸라져 다치듯 내가 잠깐 물건 올리는 사이 그만 계산원 손가락 끝이 '8'자를 건드리는 초대형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계산원 여러분, 대는 횟수 줄이려다가 고객도 자신도 번거롭게 하지 말고 그냥 10개가 되든 11개가 되든 하나씩 곧이곧대로 스캐너에 대 주세요."

  지난 번 내가 한 이 말대로 했더라면 화창한 일요일 오전의 쓴 실수는 없었을 것을...


'너나 잘 하세요'
  물건 값 자체를 할인해 파는 경우도 많지만 더 흔한 것은 '買一送一' 또는 '買二送一' 의 할인방법이다.  근데 싸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닌 것이 바로 이 방법이 괜히 나를 피곤하게 하는데

  우유 같은 경우 '買三送一'하면 하나 사려다가 아예 안 사는 경우가 있다.  딸애 혼자 마시는데 4개 사기는 좀 그렇고 우습지만, 한 개만 사자니 '買三送一' 인데 왠지 손해 보는 것 같아서 급한 것이 아니면 오히려 구매를 미루게 된다.  게다가 덤으로 더 주며 묶어 파는 품목일수록 유효기간이 짧고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도 역으로 안 사고 마는 이유가 된다.  유통기한도 짧은 것을 싸다고 많이 쟁여놓으면 냉장고 안만 복잡하다가 결국 몇 개는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망고 같은 과일의 경우에도 확 익어 빨리 팔아야 하는 경우 그런 식으로 싸게 주는데 그것 또한 우리 집에선 딸만 좋아해 그냥 내 의지대로 큰 것 하나만 사는 경우가 많다.  아직 설익은 것이면 몰라도 세일하는 것은 대부분 이미 농익을 대로 확 익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카운터에 가면 열에 여덟은 내게 꼭 묻는다.  '買三送一'인데 왜 하나만 사냐고.  네 개까지 필요 없어 한 개만 산다고 대답하면 그냥 모른 척 하면 좋으련만 내 광동어 어투가 이상한 걸 알곤 '못 알아 들었나보다' 생각하는지 계속 권한다.  빨리 돈 내고 뜨고 싶은 나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하는데 설상가상으로 내 뒤에 서있던 사람이 'Buy 3 Get 1 Free' 라며 영어로 설명해주는 지나친 호의를 베풀기도 한다.  극히 개인적인 이곳 사람들이 왜 이런 일엔 반기지도 않는 참견을 끝끝내 해대는지...  짜증을 삼키며 "난 4개씩이나 필요 없다"고 마지막으로 대꾸하면 아줌마는 구시렁구시렁 거의 혀 차는 수준의 소리를 내뱉는다.  '참, 싼데도 안 사는 한심한 주부군' 하는 표정과 함께.

  거의 문드러져가는 망고 1개 공짜로 더 준다고 4개 샀다가 딸애가 다 먹기도 전에 다 짓물러 2개 버리면 더 번거롭고 아무 이득도 없으니 한 개 값 내고 한 개만 사겠다는데 '세일 내용은 이미 알고 있지만 딱 한 개만 사고 싶으니 제발 유념하지 마시고 내 뜻대로 하게 하옵소서' 가방 들고 떠나는 나의 소리 없는 독백이다.


'내 일' 밖엔 난 몰라요  
  웰컴은 통로가 좁아 이동하기에 좀 불편하다.  게다가 나의 동선(動線)을 방해하는 이들이 다른 쇼핑객 말고 더 있으니 그들은 바로 직원들이다.  난 한가한 시간에 슈퍼에 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 때엔 주로 계산대를 한 두 개만 열고 대신 새로 들어온 물건을 정리하거나 야채 등을 다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거대한 카트에 새 물건을 담아 진열대에 정리하고 있는 아줌마...  마침 내가 집으려는 품목의 코너라 조심스럽게 접근해보지만 도무지 비켜주려 하질 않는다.  못 본건지 안 본 체 하는 건지.  웬만하면 말 안 시키고 대강 골라 가려 하지만 꽉 막고 있는 경우엔 비켜 달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뭐가 잘못 되어도 한참이나 잘못 됐다. 고객이 눈치를 보이면 얼른 먼저 길을 터주는 것이 직원의 기본태도 아닌가.  인기척을 느끼고도 가만있다가 마지못해 비켜주는 것을 한 두 번본 것이 아니니 정말 괴상한 사람들이다.

  우리 지점 전체 매출이야 어찌되었거나 난 얼른 내가 맡은 일(물건 선반에 정리하는 것)만 마치면 된다는 '단세포논리'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행동이다.  사실 전체 매출이 늘건 말건 나 같은 여자가 다신 안 오든지 말든지 그 아줌씨의 월급엔 큰 차이가 없을테니, 그저 어서 끝내고 밥 먹으러 가면 그만인 것이다.  심지어 외부에서 온 물건 대는 이(우유 대리점에서 우유 물량 가져온 이나 빵 배달 온 이)의 경우엔 빨리 자기 앞길 안 터 주고 서 있다고 불평하는 이도 봤다.

  그 아줌마 전체적으로 생각해 상황을 볼 줄도 아는 '다세포 직원'이 될 수는 없는건지.


전혀 '안 Sorry'
  나는 예나 지금이나 보관기간이 비교적 긴, 팩에 담긴 두부를 구입한다. 홍콩에 살게 된 초창기 어느 날, 찌개에 숭숭 썰어 넣으려고 열어보니 팩에 적힌 날짜는 멀기만 한데 미끈거리고 역한 냄새가 나서 바꾸러 간 적이 있다.  낮에 산 것인데 이렇다며 매니저에게 말했더니 새 것으로 바꾸어주며 미안하다는 말한 마디 더하질 않았다.  요즘이라면 인사치레로라도 "sorry"했을지 모르나 그 땐 호경기라 식당종업원이나 상인들은 지금보다 더 무례해 의례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였다.  '낮잠 자다가 깨어보니 어둑어둑한 저녁이 다 되어 있었을 때' 의 느낌같이 찝찝한 것이 '차라리 그냥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두부 없는 찌개 먹을 것을'온 것을 후회했다.  

  '새 것으로 줬으니 넌 전혀 손해 본 것 아니쟎냐? 는 사고방식.  요리에 지장을 준 것,다시 오는 수고와 시간, 번거로움 같은 것들에 대한 고려는 그들 맘엔 애초에 없었다.  영어만 조금 되면 매니저는 다 시켜주는 것인지 그런 면에선 책임자나 일반직원이나 매한가지였다.


줄을 잘 서야
  한적한 시간이나 왁자지껄하는 시간이나 계산대 앞에서 보내는 시간은 별반 차가 없다.  계산대를 극히 소수만 운영하고 찍는 아줌마들도 축 늘어진 것이 자신이 안 바쁘니 맘껏 느릿느릿하다.  게다가 초보 계산원이 내 앞사람 것 실수라도 하는 경우엔 그 시간은 더디더디 마냥 늘어지니 줄 잘 서야 된다는 말이 정말로 실감나는 순간이다.  그런데 대부분 닫아뒀으니(계산대를) 설 곳도 몇 줄 밖에 없는 형편이다.  피크타임엔 피크대로 한가한 낮엔 낮대로 고객은 그저 '네 뜻(cashier)대로 해 주옵소서'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고객을 덜 기다리게 한다든지 쾌적한 쇼핑환경을 위해 고민하는 모습은 요원하기만 하다.

  '시티수퍼'나 'taste'등 좀 차별화 된 곳에 가면 계산하는 과정(기다림, 계산, 포장의 절차)에서 한결 쾌적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거기 직원들도 실수에선 역시 자유롭지 않다.  또 특별한 상품(파킨샾이나 웰컴엔 없는 것)이 아니곤 선뜻 주워 담을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다.  시티수퍼는 똑같은 과자라도 보통 조금씩 비싸기 때문에 나같이 여러 개씩 왕창 몰아서 사는 사람에겐 일반 슈퍼에 비해 전체 가격이 꽤 벌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꽉 끼는 뽕 소매 제복이 편한 티셔츠로 바뀐 요즘, 슈퍼직원들의 태도가 전보다 조금은 나아졌음을 느끼는데 옷과 몸 사이의 여유분이 맘의 여유까지 가져온 것일까?  

  코앞에 전용(?)슈퍼가 없는 곳에 살다보니 슈퍼 간판만 봤다 하면 낑낑거리며 집으로 퍼 나르기를 어언 5년, 말한 것이 '일각[一角]' 이라면 말할 것은 '빙산 [氷山]'인데 오늘도 지면이 다 차 버렸다  

  어쩌랴 고급슈퍼만 다니기엔 주머니가 가벼우니 새끼들 거두고 맨날 밥해 먹으려면 미우나 고우나 두 체인을 피할 수 없는 것 이것이 여기 사는 한, 나의 숙명 [宿命] 인 것을.


<글 : 진 주 영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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