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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별곡 (17) - 우리집 미용사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4-10-20 13:4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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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호] 우리집 미용사   남편은 출장을 떠나고, 아이들과 함께 지내던 어느 나른한 오후, 사무실에서 감기는 눈을 억지로 치켜뜨..
[제52호]

우리집 미용사

  남편은 출장을 떠나고, 아이들과 함께 지내던 어느 나른한 오후, 사무실에서 감기는 눈을 억지로 치켜뜨며 졸음과 싸움을 하고 있을 때, 딸아이 서진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서진이는 다짜고짜 "엄마, 왜 진호 머리가 짧아? 엄마가 또 머리 잘라줬어요?" 라고 물었다.

  얼마 전, 애 아빠가 출장간 사이를 틈타 내가 진호 머리를 잘라 줬더니, 애 아빠가 출장에서 돌아와서는 "왜 멀쩡한 애를 만두집 아들로 만들어 놨냐"며 한 쿠사리 하던 일을 기억하고, "엄마는 왜 또 아빠 출장간 사이에 똑 같은 사고를 저지르는 거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아이는 안다.  이 엄마가 머리 자르는 데는 영 젬병이라는 사실을.

  그러저나 나는 머리 잘라준 일이 없는데 이것은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순간 나는 어지럽기 시작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빌려다 놓은 머리 쳐내리는 빗에 유독 관심표명 하던 이 아이가 제가 동생 머리를 잘라놓고는 나한테 미루며 시침을 떼는건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아냐 서진아. 엄만 그런 적 없어, 진호 머리가 증말 짧아졌는지 확인해 봐"
"진짜 짧대니까, 엄마, 내가 안티가 잘라줬는지 물어볼까요?"

  전화선으로 서진이가 안티를 불러 대화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잠시 후 다시 나타난 서진이가 안티가 진호 머리를 잘라줬다고 하더란다고 알려왔다.  나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아이 머리를 싹뚝 잘라놨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아 그녀에게 물었다.
"로이다, 너 정말 진호머리 잘라줬니?"
"예스 맘, 와이 맘?"
그녀의 대답엔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난 이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당황해 하는데 말이다.
"왜, 왜 잘라줬어?"
"그냥요 맘, 머리가 너무 길잖아요. 맘"
"오마이 갓~~ 로이다~~"
"왜 그러는대요 맘?"
"그래두 그렇지 어떻게 나한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아이 머릴 자를 수가 있니?"
"어머, 말 해야돼요 맘? 그러면 미안해요,  맘"

  에구구구... 너무 쉽다.  너무 쉬워.  아이 머리 자르는 일도, 내가 당황+황당+당혹스러워 하는데에 대한 대답도 너무 너무 쉽다.  뭐랄까, 손톱이 길었으니 잘라줘야지, 하는 식이다.  내가 잘라줬을 때 만두집 아들 같았으니 오늘 들어가면 뭐 호빵집 아들이 돼 있는건 아닌가 모르겠다.

  저녁에 고문으로 속해있는 성당 청년회 모임을 마치고 헐레벌떡 집에 와보니 진호가 멀쩡하게도 이쁜 모습으로 엄마를 보고 활짝 웃고 있었다.
휴우~~ 한숨...

  로이다는 나한테 엄청 쿠사리 맞을 줄 알고 한 켠에 서서 마음 졸이며 눈을 꺼먹거리고 서 있다.
"로이다, 너 너무 웃긴다... 알지?"
"예스 맘, 아임 쏘리 맘..."

  며칠 후 출장 간 남편이 돌아왔다.
"자기야, 진호 머리 어때?"
"이쁜데? 왜?"
"저거 있잖아, 나 출근한 사이 로이다가 나한테 말 한마디 없이 지가 싹뚝 잘라논거다.“
  기가 막혀 허허 웃던 남편이 로이다에게 물었다.
"로이다, 누가 너한테 진호 머리 잘라도 된다고 허락했니?"
"아임 쏘리 썰"
"근데 너 머리 잘 잘랐다.  너, 필리핀에 있는 동생들 머리 네가 잘라 줬니?"
"예, 동생들은 물론 제 머리도 제가 잘라요 썰"
푸하하하하.  대단한 우리 로이다.  중도 제 머리를 못 깎는데 우리 로이다는 스스로 머릴 자른단다.  남편이 한 마디 했다.
"그래, 로이다, 앞으로 진호 머린 네가 잘라라, 근데 미리 우리한테는  얘길 해라."
  기분 좋아진 로이다가 경쾌하게 대답했다.
"예ㅅ~~~~써~~ㄹ"

나의 미용실력에 대한 이력
  머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의 미용 실력을 얘기 안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의 유서 깊은 미용 실력을 얘기하려면 아주 머나먼 과거 저편으로 넘어가야 한다.  충청도 까마득한 시골 마을에 가면 아직도 나에 대한 이야기가 전설로 또는 설화로 구비구비 전해져 내려오니 그곳을 지나다 동생머리 자르다 어쩌구 저쩌구 하는 얘기가 들려오면 바로 나 인줄 알면 된다. 헴헴.

  국민학교라 불리던 초등학교 5학년 때쯤 되었던 것 같다.  들에 나가시던 엄마가 막내 동생의 머리가 긴 것이 눈이 거슬리는지 동생에게 머리 깎을 돈을 건네시며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자르고 오라고 이르셨다.  피노키오의 금화를 탐내던 고양이같이 동생의 돈을 흘끗 훔쳐본 나는 엄마가 나간 틈을 타서 꼬시기 시작했다.
"야야, 있잖아.  너 이 돈 이발소 가면 머리 깎고 다 줘야 된다.  근데, 나한테 그 돈 반만 주면 내가 머리 잘라 줄께.  그럼 너 그 돈으로 아스께끼도 사먹구, 쫀드기도 왕창 사먹을 수 있다"
  내 꼬드김에 솔깃한 아이가 얼른 돈을 건넸다.  나는 매우 양심적인 아이였다.  그 돈의 딱 절반만 내 주머니에 쓰윽 쑤셔 넣고 반은 동생에게 돌려주며 아껴서 잘 쓰라는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마루에서 대 작업이 이루어졌다.  싹뚝싹뚝 가위질 소리... 떨어져 쌓이는 시커먼 머리카락... 생각만큼 머리 자르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아무리 잘라도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이발소에서 아저씨들이 잘라줬던 머리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애가 마구마구 타기 시작했다.

  한참을 붙들고 씨름하다 더 이상 자르면 민둥산이 될 듯싶어 중간에서 손을 놓았다.  마무리 되지 않는 머리를 억지로 마무리 하고 동생에게 다 됐다고, 아주 멋지게 됐노라고 말하고는 밖으로 나가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뛰어놀았다.

  해가 서산에 져서 집으로 돌아와 보니 방에서 동생의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방에 들어가려 해도 방문이 잠겨 들어갈 수도 없었다.
"야~ 왜 울어, 왜 문 잠근거야. 어?
"엉엉 엉엉"
"야~ 왜울어 나와바바 엉?"
"잉잉, 엉엉"
"야, 머리가 맘에 안들어? 그러면 내가 다시 잘라줄께 응? 마음에 들때 까지..."
"엉엉엉엉...."
...
...
...

  그렇게 나의 막내 동생은 들에 가셨던 엄마가 돌아와 사태를 파악하시고, 마당 쓰는 싸리비를 이러저리 휘두르며 나를 장시간에 걸쳐 쫓아다닐 때까지(그렇다고 쉽게 잡힐 나도 아니지만), 방에 틀어박혀 꼼짝도 않고 울다울다 꼴~딱 잠이 들어버렸다.

  그 막내 동생이 어느덧 이쁜 여자친구가 생겼다.  얼마 전에 집에 내려갔더니 스티커 사진을 슬그머니 보여주며 여자친구 자랑을 했다.  그 아이는 지금도 머리 얘기만 나오면 학을 떼고, 미용실에만 가면 유년시절의 뼈아픈 기억으로 인해 공포감에 사로잡히곤 한단다.  
  나의 죄가 실로 크다.

  멋진 머리모양을 매일매일 창출하시는 미용업에 종사하시는 분들, 정말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화이륑~~~
/ 계속... <글 : 로사>


* 위클리홍콩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12-0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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