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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코치에게서 온 편지(96) - 오고 가는 사람들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6-10-26 12:2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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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7호, 10월27일] 서울, 2006년 가을풍경   각국에서 몰려든 여행객과 주재원들이 넘쳐나는 홍콩에서 10여 년을 사는 중..
[제147호, 10월27일]

서울, 2006년 가을풍경

  각국에서 몰려든 여행객과 주재원들이 넘쳐나는 홍콩에서 10여 년을 사는 중에 제대로 배운 게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 익숙해지는 법입니다.  객지생활이 낯설기만 하던 시절엔 동료나 아는 사람이 고국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 후 얼마간은 우울의 먹구름 아래서 잔뜩 풀이 죽어 지내곤 했습니다.  떠나온 곳을 오매불망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벅찬 가슴을 안고 돌아갈 수 있는 어딘가로 떠나는 이들의 뒷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순간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서로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송별회에 초대해준 사람도 있었고, 딴에는 꽤 친근한 사이였다고 여겼지만 그것도 동상이몽이었는지 공항에서의 짧은 전화 한통으로 작별을 대신하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떠남의 방법이야 당사자의 스케줄과 개인사정에 따른 것인 줄은 알지만 온다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연기처럼 사라져버리는 것은 관계의 돈독함과는 무관하게 마음의 한구석에 아쉬움의 여운을 남깁니다. 그렇게 떠났던 사람이 사전 예고도 없이 다시 돌아오는 바람에 어느 날 불쑥 마주쳐 머쓱해하던 경험도 있긴 합니다.  게다가 누군가와 이런 식의 대화라도 나누고 돌아서는 순간이면 정말이지 홍콩이 얼마나 살기 바쁘게 돌아가는 곳인가를 뼛속 깊이 느끼게 됩니다.
  "어머, 안녕하셨어요? 정말 너무 오랜만이네요! 그간 잘 지내셨어요?"
  "이사하느라 바빴죠 뭐.  지금도 짐정리가 덜 끝난걸요."
  "집을 옮기셨어요?"
  "온 식구가 나갔다 다시 들어왔잖우."
  "그럼 홍콩에 죽 안 계셨다는…"
  "적어도 2년은 비웠지 아마?"
  "…"

  그런데 참 어처구니없고 본의 아니게도 제가 바로 위에 묘사한, 온다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연기처럼 사라져버리는' 사람이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갑작스런 남편의 발령으로 인해 졸지에 주재원의 아내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정말 예측불허의 인생반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차근차근 계획해서 미리 준비했던 일이 아니었기에 서둘러 짐을 부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해 시내로 향하는 차 안.  이젠 방문객이 아닌 거주인으로 이곳에서 살아가는 거라고 스스로에게 소곤댈수록 왠지 정신만 산란해졌습니다.  과거 한국을 방문할 때면 늘 비행기표에 적혀있던 Departure Date.  그 익숙하고 당연하게만 보이던 여섯자리 숫자가 부재하는 원웨이 티켓의 얼굴이 서먹하게만 보였습니다.



  홍콩에서 부친 짐이 도착하고 이사를 들어갈 때까지 묵을 예정인 호텔에서 창밖을 내다보니 떠날 때는 없었던 건물들이 전에 있던 건물의 수보다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실눈을 뜨고 고개를 들면 멀리 경복궁 뒤로 보이는 청와대의 파란 지붕. 북악산자락의 바람이 몰고 온 익숙한 향기가 태어나서 자란 서울로의 귀환을 제대로 알려주려는 듯 코끝을 떠나지 않고 서성입니다.  혹자는 해외에 나가 살 운을 타고난 사람은 따로 있다고 말합니다.  입시 준비하듯 몇 년을 바쳐 철저히 준비하고 백방으로 뛰어다녀도 외국은 고사하고 수도권 주변지역도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이 있는 반면에, 평소 외국어 실력으론 생계유지도 어려울 법한 사람이 자타가 선망하는 꿈의 도시로 떠나게 되는 행운을 거머쥐기도 합니다.  살던 곳을 벗어나 다른 지방으로 떠나는 선을 넘어 새처럼 훨훨 국경을 넘어가고픈 열망은 한번 품으면 쉽게 잠들지 않는 집착이 되어 가슴 한구석에 또아리를 트는가 봅니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그 자세한 원인은 기억나지 않지만, 고등학교 시절 한 남자선생님은, 수업을 하다말고 대뜸 주먹을 불끈 쥐더니 선언문을 낭독하는 자의삼엄한 말투로 허공에 대고 맹세했습니다.  "내가 살아 생전에 이 나라를 꼭 벗어나겠다.  미국이든 유럽이든 가고야 말겠다 이거야.  더 넓은 세상에 나가서 거기서 단 하루라도 살다 죽는 게 내 소원이니까.  내가 못가면 내 아들이라도 보내고 설령 내 아들이 못가면 손자라도 보내고야 말테다." 해외로 입양가는 아기를 데려다주는 임무를 떠맡고 미국 어디로 가버린 사회초년 입사동기는 불혹에 가까워졌을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A needle in a haystack"이란 말을 들으면 그 넓은 미국땅에 용케 뿌리내려 살아가고 있을 그 친구의 마지막 미소가 눈앞에 어른거리곤 합니다.

  어제는 무심코 시내를 걷다가 새로 증명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마침 길건너에 보이는 사진관엘 들어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그곳이 제가 출국준비를 할 당시에 여권사진을 찍어갔던 바로 그 사진관임을 깨달았습니다.  희한한 마음에 그런 얘기를 하니까 뒤쪽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사진사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어? 15년전이면 막 개업을 했을 때니까 내가 찍어줬을걸.  그때나 지금이나 사진은 2층 스튜디오에서 찍으니까.  아이구 어떻게 이렇게 다시 찾아오셨네.  15년이라… 아니 그럼 지금은 나이도 제법 들었을 텐데 어째 목주름이 하나도 없나?  어디 보자, 으음 정말 하나도 없네. 그럼 사진 수정은 별로 할 것도 없겠구만.  좋았어, 내 10분안에 빼주지!"

  호텔로 돌아와서 출국 당시 발급받았던 여권이 든 서류케이스를 찾아 속을 들춰보니  "국전스튜디오"라고 씌여진 명함 사이즈의 노르스름한 봉투가 눈에 들어옵니다.  설마 여태 남은 사진이 있을까 봉투를 열어보니 제법 빳빳한 명함판 사진 한 장이 딸려나옵니다.  웃는 표정은 물론이고 머리모양과 입은 옷색깔까지 그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는 지금의 제 모습과 닮은 것을 보면, 나의 살던 고향으로 돌아오긴 돌아온 모양입니다.

라이프코치 이한미 ICC C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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