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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나는 지금 터키로 간다 3 - 바가지 옴팡 쓰기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6-10-26 12:4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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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7호, 10월27일] 바가지 옴팡 쓰기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성소피아성당)가 보이는 근사한 호텔 테라스에서 독수리와 아침을 ..
[제147호, 10월27일]

바가지 옴팡 쓰기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성소피아성당)가 보이는 근사한 호텔 테라스에서 독수리와 아침을 사이좋게 나눠먹은 후 가방을 둘러메고 트로이로 가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호텔 매니저가 자기 친구가 여행사를 운영한다며 나를 그리로 데려갔으나 안타깝게도 이른 아침이라 문을 열지 않았다.  트로이로 가기 위해서는 장거리 버스를 타고 '차낙칼레'라는 곳으로 간 다음 그곳에서 다시 트로이로 가야 한다.  택시비가 15예텔 정도 한단다.  그러나 어제 바꿔놓은 터키리라는 택시비와 벨보이 팁을 주고나니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토요일은 은행이 근무를 안한다고 하여 근처에 있는 현금인출기계에서 크레디트카드로 현금을 뺐다.  아, 또 얼마나 많은 수수료가 붙으려나.  '세계를 간다'는 책만 믿고 20미불만 바꾼 것이 후회가 된다.  '세계를 간다'가 요즘엔 '세계를 헤맨다'라고 불리는 이유를 점점 알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여행정보도 늦고 또 올려져 있는 정보도 믿을 수가 없으니 그 책만 믿고 여행했다가는 그야말로 세계를 톡톡히 헤멜 지경이다.

  현금을 인출하는 동안 노란 택시 서너 대가 나를 주시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세계를 헤맨다는 책에 의하면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타면 안 된다고 하던데, 이 상황에서 안 탈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거운 가방을 질질 끌고 택시에 올라타니 7박8일 동안 수염을 안 깎은 듯, 지난 밤 마신 술이 덜 깬 듯한 노인이 허스키한 목소리로 반갑다며 터키말로 인사를 건네 온다.

  택시를 타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택시 뒷좌석이 아닌 기사 옆에 앉아서 양심불량을 유지하며 할증요금을 떡하니 걸어놓고 있는지 아닌지를 점검해 봐야 한단다.  그러나 어찌 기분 스산한 이 노인과 옆자리에 앉아 어딘지도 모를 그곳으로 간단 말인가.  뒷자리에 앉아 슬며시 살펴보니 이 노인의 택시도 아니나 다를까 자정부터 새벽까지만 적용되는 할증요금이 표기돼 있다.  왜 할증요금이냐고 따지고 싶지만 말이 원수인지라 대체 영어한마디 안 통하는 이 사람에게 뭔 소리를 할 수 있으랴.  장거리 버스인 오토뷔스(Otobus) 전용 터미널인 오토갈(Otogar)로 가는 데는 15분이면 되거늘 30분이 다 되도록 이 할어버지는 나를 빙글빙글 돌린다.  시계를 들이대며 시간 없다고 인상을 구겨대고 목소리를 높여도 껄껄껄 웃으며 잠시 후면 도착할거라는 듯한 터키말만 되풀이 한다.  버스들이 운집해 있는 대형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택시비가 25예텔이 나왔다.  홍콩불 200불이 넘는다.  왜 이렇게 비싸냐고 따졌더니 미터기를 보여준다.  미터기대로 받는데 왜 그러냐 이거다.  시퍼렇게 눈뜨고도 이렇게 당해야만 하는 내가 참으로 억울하긴 하지만 대책이 없다.  근처에 경찰이라도 있으면 불러서 애원이라도 하고 싶지만 눈 씻고 찾아봐도 나를 구원해줄 이가 아무도 없다.  이런게 개인 여행이다.  나 혼자 죽든 살든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하는 그런 게.

  바가지는 옴팡 씌웠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트로이 행 버스를 친절하게도 종이에 잘 써준 할아버지가 그나마 고맙게 느껴졌던 건, 그 많은 버스들 중 트로이 행 버스를 골라내긴 참으로 힘들겠다는 걸 알았을 때이다.  


비행기에 버금가는 버스 서비스
  할아버지가 써 준 버스회사는 '트로바'로 버스회사 중 중상급 정도 되는 회사였다는 걸 물 한 모금 안주는 버스를 탄 후에야 알았다.  버스표에 적혀진 좌석을 찾아가니 스카프를 머리에 칭칭감은 뚱뚱한 할머니가 앉아있었다.  잘생기고 젊은 총각이 옆에 앉아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말이 전혀 통할 것 같이 않은 이 할머니와 6시간이나 되는 긴긴 시간을 함께해야 한다.  허긴 터키인구의 99%가 이슬람교도이고 남녀가 과도하게 유별해 어디서건 '남녀부동석'이란다.  버스표를 끊을 때 직원이 알아서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짝지어 주기 때문에 버스 안에서의 멋진 인연을 꿈꾸고 있다면 일찌감치 깨버리는 게 상책이다.  

  이 할머니는 얼마나 신앙이 깊으신지 이슬람식 묵주를 들고 돌려대는데 기도를 하는지 손가락 운동을 하는지 그 빠르기가 신기에 가까울 정도였다.

  복잡한 이스탄불 시내를 벗어나자 차 창밖으로 가을이 무르익은 아름다운 산야가 스쳐 지나간다.  터키의 위도가 우리나라 포항에서부터 백두산까지라 하니 우리나라 산야와 꽤나 흡사하다.

  차가 출발한 지 두어 시간 지나자 버스차장 아저씨가 물티슈를 준 다음 차(tea)를 서비스하고 다시 비스킷을 하나씩 나눠준다.  음료수도 차도 선택해서 마실 수 있고, 차장아저씨가 아주 친절해 이게 버슨가 비행긴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다시 한 시간쯤 지났을까 차장아저씨가 이번에는 '코로냐' 라는 향수를 손바닥에 부어준다.  사람들은 손바닥에 쓱쓱 비벼 손등에 문지르고 얼굴에도 문지른 후 나머지는 머리에도 바른다.  향수가 버스 안을 가득 채워 기분이 한결 가벼워지고 상큼해져 긴 여정이 그다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서비스 만점에 고급형 독일제 최고급 버스는 승차감이 좋아 마치 비행기를 탄 것 같은 안락함을 준다.


여행길에 만난 한국인들
  버스는 마르마라 해를 끼고 동쪽으로 5시간 쯤 달려 해협을 건너기 위해 대형선박에 올랐다.  버스에 내려 배에 오르니 기분이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  터키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한국말이 들린다. '하나여행사'버스가 그곳에 있었다.  하나여행사가 세계를 누비는 구나 싶어 반가운 마음에 인사라도 나눌까 싶었는데, 60대로 보이는 할머니가 동행한 할아버지에게 핏대를 올리며 며느리 험담을 하고 있다.  한국 땅을 떠나 이렇게 아름답고 좋은 곳에 와서 신선한 바람과 따뜻한 햇살,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축복이고 행복이며, 할머니에게는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즐기기에도 부족할 텐데 기껏 여기까지 와서 며느리 험담으로 불행한 1분1초를 보내고 있으니 어찌 불쌍한 인생이 아닐 수 있으랴.  

  아래층에 있던 며느리와 아들이 올라오자 할머니는 말을 멈추고 물끄러미 하늘을 본다.  며느리를 미워하는 시어머니나 미움 속에 사는 며느리, 또 그들의 갈등 속에 서 있는 40대 아들의 얼굴에 두텁게 깔린 어둠이 너무도 짙다.  


아름다운 차낙칼레
  버스가 차낙칼레 해변에 닿자마자 관광안내소에 들어가 호텔을 추천해 달라고 하여 바닷가가 보이는 깔끔하고 세련된 호텔에 짐을 풀었다.

  이스탄불에서 아침 9시에 떠났는데 벌써 오후 4시다. 트로이로의 여행은 내일로 미뤄야 한다.  마음이 급하다.  빨리 밖으로 나가 이름도 이쁜 차낙칼레를 돌아보고 마음껏 느껴야 한다.

  거리로 나서자 온 동네 어린 꼬마부터 80먹은 노인에 이르기까지 남자라는 남자는 모두 동양여자인 내게서 한시도 그 시선을 거둘 줄을 모른다.  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밖으로 나와 해변으로 가니 검푸른 바닷물이 쉼 없이 일렁이고 어디로부터 왔는지 모를 여객선이 기적 소리를 길게 내뿜는다.  트로이로 가는 길목의 차낙칼레는 이렇게 아름답게 내 앞에 그림처럼 놓여있다.  


<글 : 로사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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