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수필> 홍콩유감 [有感] 14 - 학교 가는 날 (上)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6-11-02 12:53:19
기사수정
  • [제148호, 11월3일] 005년 11월 22일 화요일   아침에 급히 병원에 갔다가 학교에 늦게 간 큰 아이가 못 견디겠는지 수학수..
[제148호, 11월3일]

005년 11월 22일 화요일
  아침에 급히 병원에 갔다가 학교에 늦게 간 큰 아이가 못 견디겠는지 수학수업만 하고 조퇴를 했다.  약을 먹여 재우곤 널브러진 집안 구석을 뒤로 한 채 서둘러 딸의 학교로 향한다.  MTR 안에서 선생님께 말하고 싶은 것을 머릿속에 정리한다.  화장실 가서 얼굴과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교실 문 앞에 도달하니 여기저기 나 같은 부모들이 앉아있다.  10분간의 짧은 면담이고 이미 수없이 해본 절차이건만 이번에도 역시 면접시험 대기하던 때와 흡사한 긴장이 내 주위를 맴돈다.  입안이 자꾸만 말라와 'Eclipse' 민트 하나를 다시 혀 위에 올려놓는다.

  15시 40분, 앞 사람이 나오고 "Mrs. Moon!" 부르는 음성이 들린다.  행여 못 알아들을 새라 의자를 선생님 쪽으로 바짝 붙여 앉고 손은 가지런히, 최대한 자연스럽게 선생님을 응시한다.  석 달간의 아이의 학습 진행성과에 대한 언급이 있은 후 하고 싶은 말 없냐는 선생님의 말, 독서를 하기는 하나 맨날 비슷한 수준의 '소녀들 얘기'만 몇 년 째 사들이고 위인전이나 "Chicken Soup For The Kid's Soul"같이 내가 권하는 소위 유익한 책은 몇 페이지 보다가 자기 방 가장 높은 선반에 올려두고 못 본 체 하는데 어찌하면 좀더 수준 높은(?) 책으로 발전하도록 자연스레 유도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하니 같은 '딸 가진 엄마'로서의 조언이 이어진다.  기다리는 뒷사람이 좀 신경 쓰이기는 하나 '그래도 한 마디만 더…' 하며, 친구들이 몸집에 대해 무심코 던진 말에도 키가 작은 딸이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나의 말에 자신감을 갖도록 수시로 격려하겠다는, 듣기만 해도 고마운 답변이 이어진다.  최대한 경쾌한 목소리로 인사하고 문을 나선다.  중간에 멈칫멈칫 매끄럽지 못하기는 했으나 난 영어 모국어자가 아닌 것을 저분도 익히 알고 계시니 이 정도면 됐지 뭐.  '휴우, 이번에도 다행히…'


그대 앞에만 서면…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예전에 우리나라에선, 교사를 만나러 가야 하는 날이 다가오면 엄마들은 갈팡질팡 하셨던 것 같다.  '학기 초인데, 5월이 다가오는데, 학년 말인데… 빈 손으로 가도 되나' 하면서. 여기선 그런 모호한 고민은 탁 접어도 되니 개운해 좋긴 하다.

  홍콩와서 처음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야말로 안 되는 영어를 "과감하게 설쳐가며", 일부러 영어 쓸 상황을 쫓아다니곤 했다.  내 흥에 겨워 듣는 이의 난감함은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그러다가 자신의 참 모습을 깨닫기까지 부서지고 위축되고 다시 해보다가 이번엔 상황을 피해 다니는 시절이 이어졌다.  나의 실상을 고스란히 깨닫고 나니 섣불리 해대기가 쑥스럽고 불편해진 것이다.  그러다보니 얼마 안 가, 무식하던 시절보다 혀가 더 안 돌아 가고 간단한 말도 입 주변에서 엉겨 붙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적극적으로 해 볼까 했는데 학생도 직장인도 아니다 보니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렇게 녹슨 채로 있다가 갑자기 닦고 조이고 기름쳐야 할 날이 있으니 바로 1년에 두 번 선생님을 만나는 날이다.  잘은 못해도 이젠 좀 차분하고 당당하게 의사소통을 하려하고 남편 말마따나 영어가 나에겐 '밥줄'도 아니니 유창하지 못해도 아쉬울 것 없지만 다른 이는 몰라도 선생님 앞에서만은 얄팍한 수준을 들키기 싫은 것이 솔직한 맘이다.  수많은 부모를 만나본 선생님은 몇 마디 운만 떼어도 내 수준을 금방 감지하련만 그래도… 1년에 딱 두 번 얼굴 대고 가까이서 만나는 내 자식 선생님에게만은 책잡히기 싫은 것이다.(내가 영어 못한다고 내 아이를 다르게 볼 리는 없지만) 대강 물 맞춰도 허구한 날 고실 밥 짓다가 하필 시부모님 오신 날 꼬들 밥 내놓듯이, 종종 역효과가 나서 "선생님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면담 후 집에 오는 길 때론 김수희 노래 가사가 가슴에 와닿는다.
  

짧은 것이 더 좋아
  아들이 처음 다니던 학교는 아예 이틀을 할애해 수업 없이 면담을 하곤 했다.  주어진 시간도 20분… 10분이면 선생님이 브리핑해주고 질문 한두 가지 하면 꽉 차고도 넘치지만 20분은 나의 짧은 영어로는 채우기 좀 부담스러운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힘들게 온 보람을 느끼도록 내가 어려워하면 자신이라도 아이에 관해 더 말해주고 조언해 주면서 유용했다는 맘이 들도록 어떻게든지 성의를 보였지만, 그냥 그런 사람은 '옳다, 이거 잘 됐다.  이 사람 순서에 5분이라도 일찍 끝내고 한숨 돌리며 좀 쉬자.' 하는 속내가 엿보여 맘 한켠이 씁쓸하기도 했다.  부부가 함께 와서 담임과 열성적으로 대화하는 칸막이 뒤 편 이웃 반 부모를 부러운 듯 훔쳐보며 아쉬운 발길을 옮기기도 하고.... 나같이 영어 잘 못해서 준 시간도 잘 못 찾아 먹는 사람에겐 너나 나나 '짧은 듯 아쉬운 10분'이 오히려 뱃속 편한 것이다.

  나도 초기 한두 번은 남편을 대동하고 다녔다.  혹시 선생님 말을 잘 못 알아들으면 옆에서 눈치껏 보완해 줄 지지[支持]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웬만하면 혼자 간다.  '내가 영어에 자신이 있어서?'는 천부당 만부당한 말씀.  남편은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은데다 어렵사리 시간 내놓고는 선생님의 일방적인 5분간의 설명만 듣곤 질문 있냐하면   "없습니다" 군대 식으로 딱 잘라 대답하곤 10분이 채 안 되었는데도 얼른 뜨고 싶어하니 그가 영어는 나보다 나은지 몰라도 내 눈엔 영 못마땅하며 참으로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  


TIPS 두 가지
  중년남자 선생님들은 대부분, 그냥 다 잘한다고만 말하며 대강 때우려 하는 인상을 준 반면 여선생님들은 꼼꼼하고 정확하게 아이에 관해 객관적으로 얘기해 줘 비교적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내 아이들이 별로라는(깐깐하고 엄격해 그다지 안좋아 하는)선생님이 부모와의 만남에선 오히려 십분 성의를 보이곤 했다.  그러나 이것은 수년 간의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소회[所懷]일 뿐 느낌의 편차는 부모 개개인에 따라 다르리라.

  하나, 10분이라는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대부분의 교사는, 물어볼 말이 있는지 반대로 부모로서 담임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는지 묻는다.  할 말을 한두 가지 생각하고 가면 멀게는 아이에게 좋고(선생님이 기억하고 배려해주니까) 가깝게는 면담 후 문을 나설 때 뿌듯하다.

  둘, 선생님 앞에서 "전 영어를 너무 못해서…"라든지 "우리 애는 이런 점이 영 형편 없어서" 등의 지나친 겸손은 내 경험상 오히려 득[得]보다 실[失]이다.  짧은 영어 들통 날까봐 너무 감싸는 것도 안 좋지만 길지 않은 시간이니 또렷하고 의연하게 자신을 갖고 대하는 것(사실 난 이게 참 어렵다)이 적당하다.  아이의 부족한 점을 간단히 언급할 수는 있으나 어차피 길게 대화할 수는 없으니 무심코 내 아이를 팍 깎아내리는 지나친 솔직함은 삼가는 것이 좋을 듯.

  교과서에 밑줄 쫘악 그어가며 문법 위주의 영어교육을 받은, 나와 비슷한 연령 대이거나 그보다 연세가 많은 부모님에겐 동병상련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오늘도 주저리주저리 주접을 떨었다.  "내겐 그런 것은 '그까지꺼'인데 쓸데없는 얘기들이군" 하는 자신이 팍팍 넘치는 정말 부러운 분들도 물론 계시겠지만…

  다음엔 중학교 얘기....


<글 : 진 주 영 / 계속...>
0
스탬포드2
홍콩 미술 여행
홍콩영화 향유기
굽네홍콩_GoobneKK
신세계
NRG_TAEKWONDO KOREA
유니월드gif
aci월드와이드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