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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나는 지금 터키로 간다 4 - 한 줌의 흙과 무너진 성채, 폐허로 남아있는 트로이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6-11-02 13:2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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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8호, 11월3일] 남녀칠세부동석과 이슬람문화   차낙칼레를 감싸는 푸른 빛과 어둠을 엷게 머금은 하늘색도 아름답고, 바람에 실려..
[제148호, 11월3일]

남녀칠세부동석과 이슬람문화
  차낙칼레를 감싸는 푸른 빛과 어둠을 엷게 머금은 하늘색도 아름답고, 바람에 실려 오는 비릿한 바다내음도 싱그럽다.  유난히 많은 사람들 사람들이 차낙칼레 해변을 오가지만 동양인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나 하나밖에 없다.  커다란 카메라를 목에 걸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카메라에 담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에 모든 시선이 꽂힌다.  

   차낙칼레의 사람들은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무리를 지어 다니며 한 벤치위에 남녀가 앉는 법이 없다는 것을 해변을 따라 걷다 우연히 알게 됐다. 우리나라는 주로 여자들끼리 다닐 때 팔짱을 끼고 손을 잡지만 이곳 터키의 차낙칼레는 남자들도 우리처럼 그런다.

  이들의 모습을 문화가 전혀 다른 우리와 비교해 볼 때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터키가 이슬람문화임을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쉬워진다.  남녀 부동석은 유태사회의 삶의 방식이고, 유태인뿐 아니라 이들과 뿌리를 같이하는 이슬람과 기독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정통기독교'인 가톨릭의 여신자가 머리 미사보를 쓰는 것이나 지난 1000년 동안 여성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그리스 정교회 소속의 아토스 수도원 등이 바로 그런 예다.

  이슬람에서는 예배 때에도 남녀를 철저히 구별한다.  집단예배를 비롯해 남녀가 함께 예배를 할 경우 여성들은 남성들의 뒤편에서 따로 한다.  외견상 남녀 간의 차별로 보여 질 수 있지만 사실은 '남성은 시각과 후각에 약하고, 여성은 촉각과 청각에 약하다'는 남녀 간의 본능적인 성차심리(性差心理)를 그대로 파악하고 예배를 잡념 없이 근엄하게 진행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나온 일종의 지혜란다.  착석부동(着席不動)이 아니라, 좌립(坐立)을 반복하는 예배동작에서 남녀가 육체적으로 접촉할 수도 있고 서로가 한눈을 팔수도 있다는 성차심리로부터 오는 유별의식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한 줌의 흙과 무너진 성채, 폐허로 남아있는 트로이
  '세계를 간다'나 '론리 프래닛'에 나온 차낙칼레의 Ansak House는 우리나라 여관 정도에 해당하는 숙소인데, 깨끗하고 저렴하다며 이들 책에서 적극 추천하고 있어 호객꾼(일명, 삐끼)을 따라 들어가 보았다. 그러나  창고 같이 침침한 방에 썰렁한 철제 침대 하나만 놓아둔 방의 모습을 보고 도망치듯 빠져나와 지금 묵고 있는 호텔로 발걸음을 돌렸었다.  그런 허름한 숙소지는 세계 여러나라에서 몰려온 알뜰파 배낭여행족들을 위해 '트로이 반나절 투어'를 상품으로 내놓고 있었다고, 다음 날 아침 8시30분에 트로이로 떠나는 스케줄이 있어 나도 거기에 등록을 해놨다.

  밤새 터키에 관한 책을 읽다가, 비몽사몽간에 잠에서 깨어 Ansak House 로 갔다.  영국에서 온 커플과 미국 에서 온 잘 생긴 청년이 한명 그리고 예쁘게 생긴 젊은 터키 여성이 가이드로 와 있었다.  어제 저녁부터 밤새 내린 비로 차낙칼레는 음산한 초겨울이 된 듯 하다.

  트로이전쟁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전승되어 내려오는 그리스와 트로이간의 전쟁으로《일리아드》는 트로이전쟁 10년째에 일어난 일들이고, 넌픽션적인 요소로 영웅 아킬레우스의 부모인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에 엘리스(불화의 여신)가 초대되지 않은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불화의 여신은 그 분풀이로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게>라고 적은 황금 사과를 결혼식장에 던져 넣었다.  헤라·아테나·아프로디테(비너스)여신이 서로 그 황금사과를 차지하려고 아름다움을 겨루었다.

  그 심판인으로 선정된 트로이 왕자인 파리스는 그리스 제일의 미녀를 줄 것을 약속한 아프로디테에게 황금사과를 주고, 그 대신 스파르타왕 메넬라오스의 왕비 헬레네를 트로이로 데려오는 데 성공하였다.

  아내를 빼앗긴 메넬라오스는 형인 미케네왕 아가멤논을 움직여 그리스 연합선대가 트로이로 향하였고 전쟁은 10년 동안 계속 되었다.  이때 총수인 아가멤논과 영웅 아킬레우스 사이에 불화가 생기고 아킬레우스는 복수의 화신이 되어 싸움터로 달려 가 적장 헥토르를 처치하였으나, 나중에 그 자신도 전사하였다.

   트로이가 우세해지자 그리스군은 이타케왕 오디세우스가 고안해낸 거대한 목마 속에 군사를 숨겨두고 퇴각하였다.  승리에 취한 트로이군은 그 목마를 성 안으로 끌어들였고, 목마 속의 그리스군은 간단히 성을 함락시켜 역전승을 거두었다.

  트로이의 패장 아이네이아스는 시칠리아를 거쳐 이탈리아로 달아나 로마 건국의 전설적 인물이 되었고, 아가멤논은 미케네로 귀국한 바로 그 날 왕비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 아이기스토스에게 죽음을 당한다.

  검푸른 에게해를 뒤로하며 두어 시간 버스를 타고 신화가 마침내 현실의 역사로 확인 된 트로이에 도착했다.  어제 저녁부터 내린 비가 계속 부슬거리고 내리고 있다.  뎅그러니 볼품없이 서 있는 트로이 목마에 사람들이 몰려서 사진을 찍고 있다.  나도 사진 한 장을 기념으로 찍고 트로이 목마로 올라가 보니 밖에서 보는 것보다 목마 안은 생각보다 꽤 넓다.  위 아래층으로 되어 있으니 20명 남짓 들어갈 수 있겠다.  비록 신화에 나온 모형을 조잡하게나마 재현해 놓은 목마지만 그리스 군들이 밤새 숨죽이고 이곳에 숨어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목마 밖으로 보이는 세상에서 들끓는 군인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고, 신화 속 혹은 역사속의 한 페이지에 내가 오도카니 들어와 있다는 착각에 빠져드는 것이다.

  목마 뒤에는 자그마한 10평 규모의 작은 박물관이 있는데 이곳을 발견한 독일인 슐리만과 그의 그리스 아내 소피가 트로이를 발굴하던 흔적을 설명해 놓고 있다.

  독일의 사업가이자 부호였으며 아마추어 역사학자였던 슐리만이 트로이 유적을 발굴하기 위한 애초의 목적이 보물찾기 였음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세계최대의 발굴현장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로 근대 고고학의 시발점을 연 사람이라며 이곳 터키박물관은 물론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그를 추앙하고 있다.  물론 나 역시 그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폐허로 남아있는 트로이 유적을 바라보며, 슐리만이 어쩌면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해 유적의 원형을 무참히 파괴한 사람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에서 그를 향한 분노가 슬슬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트로이는 BC 3000년 경 부터 사람이 살던 곳으로 지금까지 9층의 유적이 시기별로 달리하며 발굴되고 있는데 우리가 아는 트로이 전쟁시기는 제6층 유적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너무 많은 파괴로 인하여 원형을 찾아볼 수 있는 유물은 거의 없어 상상으로나 아쉬움을 달래야 하지만, 슐리만의 발굴이후 지금까지 계속 복원작업을 하고 있는 현장은 그래도 고대유적에 대한 터어키인의 지속적인 애정을 보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2년 전 상영됐던 영화 "트로이"에 등장했던 목마가 이곳에 기증된다고 하니 조금 있으면 아마도 좀더 세련된 목마 하나를 이 곳에서 덤으로 구경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목마 하나만 만들어서 세워놓은 트로이를 방문한 후 허망함과 끓어오르는 화를 참기 힘들었다며, 시간이 남아 떡을 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절대 가지 말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나는 난공불락의 옛 도시가 한 사람의 사리사욕으로 한 줌의 벌 건 흙과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무너내일은 진 성채, 폐허로 남아있었지만 역사가 살아 숨쉬는 그 땅에 서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황홀하고 감동적이었다.


<글 : 로사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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