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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홍생] 통라우(唐樓)를 통해 보는 홍콩 건축양식 발전 역사와 현재(1편)
  • 위클리홍콩
  • 등록 2023-02-24 13:51:35
  • 수정 2023-03-09 23:5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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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바로 현대적인 초고층 건물들이 빚어낸 멋진 스카이라인이다. 하지만 완차이, 몽콕, 셩완 등 골목골목 오래된 거리를 걷다 보면 1층에는 상점 혹은 식당이 있고, 2층 바닥이 행인들이 걸어다니는 보도블록 위로 툭 튀어나온 저층 건물들을 볼 수 있다. 빛바랜 기둥들이 튀어나온 2층 바닥을 받치고 있는데, 뚜벅이들에게는 비와 강한 햇빛을 피할 수 있는 자연 천막이 되어준다. 홍콩을 포함해 화교들이 대거 이주한 동남아시아 곳곳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이런 예스러운 건물 양식은 통라우(唐樓)라고 부른다.


통라우는 19세기 말부터 1960년대까지 중국 남부, 홍콩, 대만,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지어진 주택 양식이다. 보통 통라우의 1층에는 상점이나 식당과 같은 상업 공간이 들어서고 그 위로는 주거 공간으로 사용되는 ‘샵하우스(Shophouse)’의 건축 형태를 가졌다. 통라우의 한자를 뜯어보면, 당나라 당(唐)과 건물 루(樓)로, 당나라는 넓은 범위에서 중국을 뜻하기 때문에 중국식 건물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적당하다. 중국 본토인들이 홍콩으로 이주해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전통적 건물 양식을 그대로 가져오게 되었고, 통라우는 홍콩 건축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 



통라우는 홍콩의 사회정치적 요인이 잘 나타난 건축물이다. 중국 남부와 동남아시아 전역의 상인들이 무역 도시인 홍콩을 오가며 상인들의 필요에 따라 1층을 상점으로 사용했고, 그 위로 거주 공간이 있는 3,4층 건물의 초기 통라우가 지어졌다.


같은 시기에 도시 건설을 위해 수많은 본토 노동자들이 홍콩으로 유입되었다. 통라우는 이들에게 가장 편리하고 경제적인 거주 공간으로 떠올랐다. 비좁고 채광이 부족하고 칙칙한 통라우는 수많은 저소득층 노동자들의 거주 공간이 되었다. 


이후 영국 식민지를 거치면서 유럽식 건축 양식인 콜로니얼(Colonial)과 로지아(Loggia), 신고전주의(Neoclassical)적 건축 특징이 반영되면서 중국과 유러피안 건축 양식이 혼합된 통라우가 탄생했다.



1950년에 들어서면서 통라우는 3,4층 높이 건물에서 최고 8층, 9층 높이로 높아졌다. 2차 세계대전이 종식 이후, 중국 공산 정권이 수립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홍콩으로 수많은 본토 난민들이 유입되었는데, 기존 저층 통라우으로는 늘어난 인구를 수용하기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홍콩 정부는 1955년에 ‘건물 조례(Building Ordinance)’를 개정해 최대 9층까지 엘리베이터 없이 주상 복합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허용했고, 실내 천장 높이 제한도 없앴다. 그러면서 수많은 건설업체들이 시장에 뛰어들었고, 그때 지어진 대표적인 건물이 침사추이의 1959년에 지어진 미라도 맨션(Mirador Mansion), 1961년에 지어진 청킹맨션(Chung King Mansion)이다. 


1959년에서 1979년 사이 수많은 고층 건물의 후기 통라우가 건축됐다. 후기 통라우 중 10%는 1,500명이 넘는 주민들이 거주했으며 ‘건물 속 소도시’라는 별명이 붙여지기도 했다.


침사추이 청킹맨션

홍콩 인구가 계속 늘어나면서 더 높은 고층 건물인 아파트의 수요가 높아지면서 저층 건물인 통라우의 인기는 자연스럽게 사그라들었다. 또한 정부 정책에 따라 50년이 넘은 건물들은 철거가 허용되어 수많은 건물들이 철거 위기에 직면해있다. 다행스럽게도 일부 통라우는 문화유산으로써 가치를 인정받아 보존되었지만, 통라우의 복원 사업 노력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도시 재개발로 수많은 통라우 건물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다. 

 

2주 후, 시대별 통라우의 건축과 대표적인 건물들을 소개하는 2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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