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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화 산책 - 광동성 사람들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6-11-16 11:5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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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0호, 11월17일]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인 루쉰(魯迅)은 그의 저서 『북방인과 남방인(北人與南人)』에서 "북방인의 장점은 중후..
[제150호, 11월17일]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인 루쉰(魯迅)은 그의 저서 『북방인과 남방인(北人與南人)』에서 "북방인의 장점은 중후함이며 남방인은 영리하고 약삭빠르다는 게 장점이다.  하지만 중후함이 지나치면 어리석음으로 발전하고, 영리하고 약삭빠름이 과도하면 교활함으로 나아간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흔히 '남대문(南大門)'으로 일컬어지는 광동(廣東)성의 사람들은 남방문화의 장단점을 두루 갖춘, 이를테면 남방문화의 총대표격이다.

  루쉰의 지적대로 영리함과 약삭빠름이 지나쳐 교활함을 갖췄으며 이재(理財)에 열심이고 관상·풍수·점복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한다.  집집마다 돈을 가져다준다는 재신(財神)을 모셔놓고서는 부모 모시듯이 떠받든다. 음악과 문학 등을 거론할라치면 "그것은 역사의 유산"이라며 가볍게 제쳐놓고 돈 모으는 얘기에 다시 열심이다.  돈을 번다는 뜻인 파차이(發財)의 파(發)와 발음이 비슷한 숫자 '8'을 이상하리만치 중히 여긴다.

  이에 관련된 우스개 한 토막.  사고로 다쳐 병원을 찾은 한 광동 사람이 의사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몇 바늘을 꿰매야 하지요?" 상처를 이리저리 살핀 의사는 "일곱 바늘을 꿰매면 되겠군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광동인은 주저하지 않고 "이왕이면 여덟 바늘 꿰매주세요"라고 말했다.  북쪽에는 험준하기로 유명한 남령  (南嶺)산맥이 지나고 있어 일명 '영남(嶺南)'이라고도 부르는 광동성 사람들의 면면을 살피게 해주는 일화다.

  이들은 1994년 '황금연(黃金宴)'을 개발해 개혁·개방으로 한참 치닫고 있던 중국에서 커다란 화제를 뿌린 적이 있다.  일본의 첨단 기술을 이용해 1g의 24K 황금을 0.5㎡로 편 뒤 이를 직접 먹어보는 자리인데 광동인들의 기이한 발상과 황금에 대한 열정이 겹쳐 중국인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양자(揚子)강 이남의 다른 남방문화권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또한 이민개척사를 배경에 두고 있다.  남령으로 가로막혀 인구 이동이 자유롭지 못했지만 이들은 진(秦)대 이래로 북방의 각종 전란을 피해 남쪽으로 이동한 한족들의 후예다.  원래 인도차이나반도 사람들과 비슷한 월(越)족이 살았던 땅에 한족들이 유입되면서 끊임없는 융화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광둥문화가 형성됐다.

  광동사람들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광동성 성도(省都)인 광주(廣州) 중심의 사람들과 성 북동부의 메이셴(梅縣)사람, 남동부의 산터우(汕頭), 차오저우(潮州)사람이다.  인구와 언어 분포가 가장 광범위한 광주 사람들이 광동성 문화의 핵심이며, 메이셴 사람들은 비교적 늦은 시기인 송대(宋代)에 중원지역으로부터 광동성으로 이주한 객가(客家)족이다.  '중국의 유대인'으로 불릴 정도로 대규모 상업행위에 능한 산터우, 차오저우 사람들은 언어와 혈통이 동쪽으로 인접한 복건(福建) 계통이다.

  홍콩 중문대 다국적문화연구소 궈사오탕(郭少棠)교수는 "메이셴의 객가사람들은 뒤늦게 이주했기 때문에 물산이 척박한 산지(山地)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생존을 위한 근로정신이 몸에 배어 있다"며 "산터우 사람들은 근검절약 정신이 강하고 단결력이 높은 데다 기업 경영에 능해 현재 홍콩경제를 지배하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들 세 부류의 사람들이 그려내는 광동의 문화는 앞에서 소개했듯이 일단은 '배금주의(拜金主義)'적 성격이 농후하다.  돈을 좋아하다 못해 사랑하기까지 하는 이들의 기질은 이 지역이 꽃피워낸 오래된 상업문화에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광저우 무역관 어성일 차장은 "광저우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 되고 규모 또한 최대인 상업무역항이었으며 1천8백여년 전인 삼국시대에 이미 동서를 잇는 해상 실크로드의 기점 역할을 했다"며 "이처럼 유구한 전통이 오늘날 금전을 숭배하는 광동인들의 기질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기에 이주의 역사에서 키워낸 남방 특유의 임기응변(臨機應變) 내지는 변통(變通)식 기질도 빼놓을 수 없다. 사안에 따라 방법을 달리하고 요령 좋게 일을 처리하는 태도다.  남방으로 새 정착지를 찾아 이주해 가면서 맞닥뜨리는 낯선 환경에 적극 대응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문화다. 현재의 중국 남방문화권에서 이 변통문화가 고루 나타나지만 광동성은 이를 더욱 발전시킨 지역에 해당한다.

  황제의 권력이 자리잡았던 중원의 지역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남방의 오지라는 점과 거대 산맥인 남령으로 북방의 영향을 차단할 수 있었던 점 등이 이들에게 각종 형식에 매달리지 않고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산은 높고 황제는 멀다(山高皇帝遠)'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광동인들은 북방 사람들에게 이단아(異端兒)로 비칠 때가 많다.  그래서 베이징(北京) 정부는 지금도 광동을 주의관찰 대상 1호로 삼고 있다.  모든 성(省)에 '현지인 통치원칙'을 적용하지만 유독 광둥성에만은 중앙에서 최고위 관리를 직접 파견한다.

  실제 역사적인 경험을 두고 볼 때도 청(淸)왕조가 붕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태평천국의 난은 광동 출신인 홍수전(洪秀全)이 주도했으며, 서양의 문물이 밀물처럼 닥칠 때 '중체서용(中體西用·중국 학문으로 몸체를 삼고 서양학은 실용에 쓴다)'의 변법(變法)운동을 주도한 캉유웨이(康有爲), 량치차오(梁啓超) 등이 모두 이 지역 출신이다.

  또 청 왕조를 뒤엎고 중국에서 왕조시대에 종지부를 찍은 신해혁명의 쑨원(孫文)이 광동성 출신이며 신해혁명에 이어 장제스(蔣介石)를 중심으로 펼쳐진 북벌(北伐)전쟁이 광동에서 깃발을 올렸다.

  일부 통계에 따르면 근대 들어 광동성에서 일어난 농민기의는 34건으로 전국에서 수위를 달리고 있으며 나머지 반란성 정치적 움직임도 가장 빈번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금전을 숭상하며 독특한 기질을 형성한 광동사람들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전체적으로 광동인들의 기질은 사변적이기보다는 직관적이고,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다. 감각과 경험을 중시하지만 추상적 이론은 극력 회피한다.

  광동 출신의 대학자라고 치부하는 캉유웨이와 량치차오도 감각주의와 경험론에만 치중했다는 비판을 듣는다.

  과거 급제자의 숫자나 유명 문인·관료로서 역사에 기록된 사람의 수는 광동이 전국 각 지역과 비교할 때 꼴찌에서 넷째에 해당한다.  광동인들은 이같은 현상을 두고 "경제는 오아시스, 문화는 사막"이라는 표현으로 자조(自嘲)하기도 한다.


광동의 요리
  '음식은 광주(食在廣州)'란 말이 있듯이 광동음식은 중국의 4대 요리 가운데 하나다.  중국 5대 하천의 하나인 주장(珠江)강을 끼고 있으며 산지와 함께 기다란 해안선이 발달해 있고 북회귀선이 지나는 아열대 고온다습의 기후라 물산이 많기로 유명하다.

  게다가 기이한 것을 찾아 이를 응용하기 좋아하는 광동인들의 기질이 더해 온갖 요리가 발달한 게 특징이며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광동요리는 재료의 원래 맛과 색깔을 최대한 살려내는 데 무게를 둔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뱀 요리가 발달해 있다는 점이다.  뱀과 줄머리사향삵을 함께 삶는 '용호투(龍虎鬪)'를 상품(上品)으로 치는데, 줄머리사향삵이 워낙 구하기 힘든 동물이라 이를 고양이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뱀은 보신에 효과가 있다는 속설이 더해지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광동인들의 식탁에 오르고 있다.  주장강 삼각주와 남중국해에서 건져내는 해산물 요리도 풍부하다.  상품으로 치는 상어지느러미 요리에서부터 전복과 자라를 비롯한 각종 생선 요리가 유명하다.

  '얌차(飮茶)'라고 하는 식생활도 광동요리를 거론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차를 마시면서 국수와 죽을 비롯해 조그맣게 간식용으로 만든 딤섬(點心)을 먹는 습관인데 광둥성 각 지역과 홍콩 등에 널려 있는 차루(茶樓)를 이용하면 된다.  광동인들은 아침과 점심 등에 이 얌차를 한다.

  광동성의 죽도 매우 유명하다.  차오저우(潮州)의 흰죽을 비롯해 돼지고기와 쇠고기, 삭힌 오리알 등을 넣고 만든 죽 등은 매우 일반적이다.  이 밖에 어린돼지구이  (乳猪)는 독특한 구이방식으로 이름을 얻고 있는 음식이며 오리와 거위 바비큐, 닭,오리, 거위 발바닥 요리도 자주 애용되는 음식이다.  산 원숭이를 탁자에 잡아둔 채 뜨거운 물을 부어가며 골을 꺼내 먹는다는 엽기적 음식은 청대(淸代) 초기 광동으로 넘어와 반란을 일으킨 오삼계(吳三桂)의 부하장수가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만든 음식으로 정식 광동요리는 아니다.
  
<중앙일보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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