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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홍콩유감 [有感] 15 - 학교 가는 날 (下)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6-11-16 12: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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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0호, 11월17일]   여러 해 전, 아들이 막 중학생이 되었을 때 담임선생님과의 만남을 제외하곤 큰 아이의 교과목 선생님 면담은..
[제150호, 11월17일]

  여러 해 전, 아들이 막 중학생이 되었을 때 담임선생님과의 만남을 제외하곤 큰 아이의 교과목 선생님 면담은 몇 년째 '남편 혼자' 가고 있다.  남편 대신 내가 가면 혹(둘째 애)을 달고 가야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왠지 중고등학교 선생님들 말은 더 어렵고 수준 높을 것만 같아서 아직 자립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중학교엔 스콧티시 억양의 선생님도 많아 영어로 밥 먹고 사는 남편도 귀를 쫑긋 세우고 있어야 하는 형편이라 하니…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이유는, 조용한 교실에서 선생님과 일대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홀 여기저기에 테이블을 놓고 여기서 웅성, 저기서 웅성 하는 시끌벅적한 장터 분위기이기에 이런저런 방해요소가 겁나고 싫은 것이다.

  나 같은 엄마들의 맘을 아는지 작년인가, 원하면 시니어 학생들의 통역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가정통신문을 읽었는데 이곳 시니어면 일상적인 모국어는 좀 해도 우리말 수준이 높은 아이들은 아닐진데, 영어는 잘하고 우리말로 저 혼자 이해는 해도 과연 교사의 말을 한글로 나에게 잘 전달할 지가 의문이었다.  

  좀 자신 없어도 차라리 직접 듣고 얘기하는 편이 중간에서 서툴게 거르는 것보다 오해생길 위험도 없을 것 같았고 '선 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서툰 통역이 꼈다가 시간만 두 배로 걸려 제대로 아이에 대해 듣지도 못하고 더 찝찝해 질 것 같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두 아이가 다 중고등학생이니 남편에게 다 떠맡길 수도 없고 애 딸려 못 간다고 핑계 댈 수도 없으니 바야흐로 '내가' 나서야 할 때인 것이다.

물위의 기름
  중등학교에 올라가면 면담 뿐 아니라 이것저것 설명회를 많이 여는데 힘들게 저녁 지어놓고 부랴부랴 갔다가 '아이고 괜히 왔다.  공[空] 쳤다.' 허탈했던 적이 있다.  궁금증을 잘 풀어 설명해 주겠지 생각하며 앉아있었는데 담당자가 10분여 간단하게 개요를 말하더니 각 과목 선생님들이 다 와 계시니 각자 자유롭게 찾아가서 재주껏 물어보라는 것이 아닌가.  그 때의 그 난감함이란…… 우리말로도 이런 형식에선 '뭘 물어보긴... 나중에 아는 이에게 살짝 물어봐야지' 할 판에 뭘 이해 못하는지도 잘 모르는 사람에게, 처음 보는 선생님에게 내 발로 다가가서 와글와글 하는 분위기 속에서 '충분히' 물어보라니, 내겐 참 황당하고 어려운 주문이 아닌가.

  산해진미가 다 모인 동남아의 뷔페식당에서 다른 나라 음식은 입에 안 맞고 먹을 줄 몰라 비싼 돈 내 놓고도 몰래 들고 온 김치 통 무르팍에 놓고 눈치 봐가며 흰밥 먹듯, 실컷 차려놓고 어서 와서 잡수라는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놓은 밥상도 슬슬 눈치 보며 못 찾아 먹고 말았다.

  초등부터 대학까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대다수는 가만히 듣는 일요일 아침 설교 같은 수업 방식에 길들여진 나에겐 우리말로 진행되어도 껄끄러울 형식이었으니 두말해 무엇하랴.  꼭 영어에 대한 자신감 부족뿐만이 아니라 그런 자유로운 질문과 답변의 시끌벅적한 스탠딩 형식의 저녁마당이 나를 물 위에 둥둥 뜬 기름이 되게 한 것이다.

7년 만의 외출
  어제도 그런저런 설명회가 있었다.  한참 바쁜 저녁시간의 그런 자리는 이리저리 피하는 나지만 이번엔 꼭 가야만 할 것 같아 미리 사인을 해놓고 남편에게도 시간을 비어두라 당부했다.  시니어가 되는 아들의 교과과정이 내년부터 바뀌는데 과목 선택 최종일을 코앞에 두고 학교에서 마지막으로 질의응답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사실 그 주제에 관한 부모모임은 내가  '공 친' 무지 추웠던 그날을 시작으로 이미 두세 번의 기회가 있었으나, 피하기도 하고 가보려다 때론 못 가기도 했다.  참석 안 하더라도,나보다 아들이 학교에서 더 충분한 정보를 얻고 있고 가정통신문으로 주워 읽은 내용도 좀 있으니 굳이 가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비록 서면으로 된 내용이 있고 벌써 교과목결정의 윤곽도 거의 다 잡아둔 상태지만 활자만으로는 이해 안 되고 미심쩍은 부분이 남아있었고 우리나라로 치면 고2,고3 시절을 앞둔 장래 진로형성에 중요한 2년 과정의 선택이기에 어쨌든 가보리라 마음먹은 것이다.

  남편과 내가 학교에 같이 가기는 7여 년 만에 처음인 자리였는데, 질문하라고 해도 "뭘..." 하면서 어서 뜨자던 예전과 달리 어제 저녁엔 남편의 태도가 사뭇 달랐다.  여기저기 서있는 선생님들께 요모조모 자세하게 물어봤으며 듣기보다 입 떼기가 영 안 되는 나대신 내가 궁금한 것까지 진지하게 물어봐 줬다.

  그저 학교 왔다 갔다 하고 잘 놀면 그만이던 코흘리개 아들과 미래를 위해 공부할 것 빡빡해진 고등학생인 아들 사이의 학부형 입장의 차이도 컸을 것이고 사안이 사안인 만큼 중요성을 감지하고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영어는 나보다 나아도 영 도움이 안 된다."는 내가 지난 번 쓴 글을 읽고 뭔가 깨달은 바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가 있는 동안 집안 일이 밀려 어제 밤늦게 까지 손에 물을 묻히고 있어야 하긴 했지만 참석하길  잘했다 싶은  참 오랜만에 '간 보람이 있는' 시간이었다.

홀로서기를 꿈꾸며..
  '일대다'로 질문 답변한다면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까지도 할 수 없이 다시 들어야 하고 정작 궁금한 것은 시간 상 차례가 안 와 말도 못하고 끝날 수도 있는데 이방 저방에 선생님들을 세워놓고 각자 필요한 위치에 가서 '1대1'로 필요한 사항을 알아보라니 시간상으로나 '1대1'이라는 효과 면으로나  따지고 보면 참으로 마땅한 방법이다. 그저 내가 익숙하지 않아 불편한 것이다.

  필요 없는 말까지 도매급으로 다 앉아 들은 후 정작 질문은 한두 개만 형식적으로 받거나 사실은 질문받기를 꺼리는 일방적인 전달보다는 확실히 제대로 된 것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전문 통역 서비스(시니어 학생 말고)까지 더 해 '영어가 서투른 맘(Mom)'에 대한 배려까지 있다면 금상첨화 [錦上添花]련만…  홍콩은 여러 국적의 부모가 있는 국제도시이니 어제와 같이 중요한 안건인 경우만이라도 그런 서비스를 고려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너무 바랬나?

  알고 보면 그런 모임이 사실 대단한 말하기나 듣기 실력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모르게 불편하고 자신 없고 서투른 것이 오히려 이유라면 이유다.

  남편이 출장 가고 없어도 혼자서도, 그런 자리에서 쭈그러 들지말고 교사에게 다가가 자신있게 또박또박 질문할 수 있는 내가 되도록 하는 일이 내게 남겨진 숙제일 뿐.                        

<글 : 진주영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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