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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연의 미술도시, 홍콩] [17] 이 작품은 누가 완성하나요?
  • 위클리홍콩
  • 등록 2024-03-22 01:3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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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 미술관에서 이우환의 <관계항>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과 ‘관계’를 맺는다. 내가 관계를 맺은 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물건이나 장소, 혹은 어떤 상황일 수도 있다. 이러한 관계는 대부분 사람이 매일 마주하고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때로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움을 줄 때도 있다. 그런데 가끔 예술 작품이 반복적인 일상에 간단하고 작은 파동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지금 M+ 미술관에 설치된 이우환(Lee Ufan, 1936-)의 <관계항-거울 길(Relatum-The Mirror Road)>은 일상과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그동안 보았던 것을 보지 않고, 또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하는 어떤 관계를 제안한다.


[그림1] <이우환, <관계항-거울 길(Relatum-The Mirror Road)>, 2021/2024>

 미술관 밖 홍콩 풍경이 내다보이는 넓은 창을 가진 넓은 직사각형의 전시실에 들어서면 돌과 스테인리스 철판으로 설치된 <관계항-거울 길>을 만난다. 넓은 바닥의 절반에는 작은 조약돌들이 펼쳐져 있고 그 위에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수 있는 폭의 기다란 은빛 스테인리스 강판이 놓여있다. 그리고 두 개의 큰 돌이 이 강판을 사이에 두고 올려져 있다. 강판은 작품의 부제가 말해주는 것처럼 거울처럼 돌과 그 주변을 반사하고 있다[그림1].

 

 처음 작품을 보았을 때는 그 재료와 설치가 매우 단순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작품에 서서히 접근하면서 곧 자연에서 온 거친 느낌의 돌과 공장에서 매끈하게 가공된 강판이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작품 설명판의 안내에 따라 조약돌을 밟으며 작품에 들어서는 순간, 조약돌과 내 발이 맞부딪힐 때 나는 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몇 발자국 후, 카펫처럼 긴 스테인리스에 올라서면 그 소리는 사라지고 창문을 통과한 햇살과 나와 내 주위를 반사하고 있는 스테인리스에 눈이 부시다. 그리고 다시 돌 사이를 지나 다시 조약돌을 밟고 나오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 장소와 나를 조금은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돌, 철판, 그리고 그사이의 공간 모두는 각기 다른 모양과 성질을 가졌다. 그러나 이렇게 장소에 들어서는 순간과 과정에서 이들은 관람자인 나와 각 ‘항(項)’으로서 작용하며 서로 관계를 맺는다. 작가 역시 돌 등의 재료를 선택하고 장소에 걸맞게 배치하는 항(項)으로서 동등하게 이 관계에 자리한다.


 이우환은 일본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일본의 주요 현대 미술 현상이었던 모노하(もの派)를 이론적으로 선도한 인물이다. 모노하는 1960년대 후반 등장하여 1970년대에 전후 일본의 자기 비판적 사회운동이 전개되는 분위기 속에서 산업 재료와 자연 재료의 특성을 탐구했다. 이우환은 모노하의 중심에 선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관계항 작업을 지속해오고 있으며 이와 맥락을 함께하는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바람>, <조응>, <대화> 시리즈로 단색화를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관계항은 세계 주요 미술관뿐만 아니라 베르사유의 궁전, 나오시마 섬, 고려대학교의 잔디 위 등의 다양한 실내외 장소에 설치되었다. <관계항>은 다양한 장소에 위치한 만큼, 세계의 각기 다른 공간의 특성을 세심하게 고려한 작가의 배열과 배치로 돌, 유리, 강판 등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홍콩 M+ 미술관에서와같이 관계항에서 돌은 돌의 모양을 하고 있고, 강판는 강판의 모양을 하고 있다. 따라서 관람자는 관계항을 통해 특정한 이미지나 표현을 떠올리거나 감상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공간에서 각 ‘항’들을 마주했을 때의 그 공간의 흐름을 느끼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이는 다양한 ‘항’들 속에서 항들과 같이 존재하는 나 자신만이 완성할 수 있는 고요하지만 강렬한 만남일 것이다(칼럼 인스타그램: @wjyart).

 

 

PLACE M+ 미술관

M+미술관은 홍콩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빅토리아 하버가 내려다보이는 서구룡문화지구에 위치한다. 홍콩과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전시와 교육을 제공하고, 예술과 문화가 가지는 영향력을 통해 동서양의 교두보 역할을 하겠다는 비전으로 2021년 개관했다. 스위스 건축회사인 헤르조그&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이 설계했으며 다양한 매체로 제작된 동시대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칼럼 소개 :  홍콩에서는 가장 큰 아트 페어 중 하나인 아트 바젤이 열리고, 세계적인 옥션 회사들이 일 년 내내 프리뷰와 전시를 개최하며, 대형 갤러리들은 동시대 작가들의 최근 작품을 쉴 틈 없이 선보인다. 그리고 홍콩에는 M+ 미술관과 홍콩고궁문화박물관 등이 위치한 시주룽문화지구, 시대에 상관없이 내실 있는 전시를 선보이는 HKMoA와 시각예술 복합문화공간인 K11Musea, PMQ, 타이콴 헤리티지, 전 세계의 유명 및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판매하는 중소형 갤러리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홍콩은 동서양의 고전미술과 현대미술이 살아 숨 쉬는 미술 도시이다. [미술도시, 홍콩] 칼럼은 미술교육자 원정연이 이러한 장소들을 방문하며 전하는 미술, 시각문화, 작가, 전시에 관한 이야기이다.


원정연

미술사/미술교육을 공부하고 미술을 통한 글쓰기를 강의했습니다. 현재는 홍콩에 거주하면서 온·오프라인으로 강의를 진행하고, 홍콩의 다채로운 시각문화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미술사 석사 졸업, 서울대 사범대학 미술교육(이론) 박사 수료

- 강남대 교양교수부 강사, 서울대 사범대학 협동과정 책임연구원 및 창의예술교육과정 강사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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