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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나는 지금 터키로 간다 8 - 비자카드가 통하는 앙카라의 재래 시장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6-11-30 17:4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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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2호, 12월1일]   죽이 되나 밥이 되나 혼자 낯선 곳을 하루 종일 헤매고 다니다 이렇게 일행을 만나 단체로 움직이니 가이드가 ..
[제152호, 12월1일]

  죽이 되나 밥이 되나 혼자 낯선 곳을 하루 종일 헤매고 다니다 이렇게 일행을 만나 단체로 움직이니 가이드가 알아서 밥 먹는데 데려다 주고, 잠자는데 데려다 준다.  길 잃을 염려도, 어딜 갈까 하는 고민도 없다.  나를 노리는 사기꾼들로부터도 자유롭다.  그러나 내 생각이 그 순간부터 딱 멈춘 듯 하다.  무리 속에서 생각 없는 나 개인이 되는 건 정말이지 체질은 아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성지순례'이다.  내가 앞으로 어떠한 성지를 여행하게 되고, 그 성지가 나를 어떻게 변화시켜낼지, 여러 어른들 틈에서 제일 막내로서 또 제일 늦게 합류한 늦깎이로서 호흡을 맞춰가는 것 자체도 변화로 가는 하나의 여정이리라.

  터키에 와서 처음으로 한국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이곳에 와서 죽어라 터키음식만 먹고 싶었는데 가이드를 만난 첫날부터 한국식당으로 갔다.  그래도 이집트에서 음식다운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고생을 하다온 일행들은 게 눈 감추듯 황홀에 젖어 한국음식을 먹어치웠다.  
  저녁을 먹고 호텔로 들어간 후 그나마 젊은 우리 몇몇은 근사한 데 가서 맥주나 한 잔 하고, 근사한 터키 오빠야들 구경이나 하자며 호텔을 슬쩍 빠져나가기로 했다.  그들은 나만 믿는단다.  터키를 혼자 그토록 돌아다녔으니 오죽 잘 알겠노라며.  우리는 꽃단장을 하고 방을 나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터키의 밤거리로 나서보겠노라고 한 무리의 다른 사람들이 로비에 죽 서있는 게 아닌가.  더구나 그들은 젊은 우리를 보고 반색을 한다.  택시타고 이스탄불의 최고 번화가인 술탄아흐메트에 가서 만나자고 하니 무섭다고 싫단다.  가이드 김방수씨의 엄포가 효과를 톡톡히 내고 있다.  그냥 이 근처에서 놀자고 하는데, 내가 아는 한 주택가인 이 근처는 놀 만한 곳이 아니다.  하는 수 없이 호텔 근처를 벗어나기 두려워하는 그들 10여명과 함께 호텔 건너편에 있는 진짜 분위기 안 나는 허름한 길거리 펍에 앉아서 터키맥주와 치킨케밥을 먹으며 밤이 이슥해 지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비자카드가 통하는 앙카라의 재래시장
  우리는 버스를 타고 흑해와 다뉴브 해를 연결하며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이스탄불의 보스포러스 브릿지를 건넜다.  버스는 6시간을 달리고 달려 드디어 앙카라에 우릴 내려놨다.

  터키는 어딜 가나 움직였다 하면 기본 6시간이니, 버스 2번만 타면 끝이겠구나 하며 하루의 기준이 버스 2번 혹은 6시간 쯤으로 바뀐다.  

  우리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곳은 커다란 재래시장 옆, 높은 언덕의 전통 깊은 터키 음식점이었다.  터키에 와서 이렇게 운치 있고 고풍스러운 음식점은 처음이었다.  앙카라 시내가 고즈넉이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유난히 아름답고 찬란해 보였다.

   우리 일행은 오늘부터 터키음식을 먹기 시작했는데,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이게 먹는건가 싶은지 음식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용기를 내어 음식을 입에 넣어 먹어본 후 슬며시 포크를 내려놓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테이블 위로 올라온 모든 음식이란 음식은 스프부터 디저트까지 감지덕지하며 말씀하게 청소해 버리는 분들도 나 이외에서 너댓분은 더 계서서 우리는 우리와 다른 그 분들을  '공주과'로 부르고 우릴 '무수리과'로 부르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재래시장을 잠시 들렀다.  우리는 그곳에서 세계의 다른 나라와는 다른 참으로 희한한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앙카라의 재래시장 에서는 신용카드인 'VISA 카드'가 통용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60년대나 썼음직한 쇠덩이를 서너 개씩 올려 무게를 재는 이곳에서 신용카드가 된단다.  어찌나 재미있던지.  그러나 나는 사뭇 궁금하다.  카드가 통용된다며 기다란 장대위에 VISA 카드마크 하나만 달랑 걸어놓은 그곳에서 선뜻 카드를 내밀 사람이 있는지, 또 설령 어렵사리 마음먹고 내민 카드라 할지라도 카드사로부터 그 재래시장에 OK 사인을 떨어뜨려 주기나 할 런지....


앙카라의 요새 그리고 사정봉
  재래시장이 얼마나 재미있던지, 가이드가 다음 장소로 움직이자며 성화를 댄지 30분이 넘어서야 우리의 발걸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앙카라는 제1차 대전 후 터키의 국부 아타 투르크가 공화국 수립 시 수도로 선포한 곳이다.  우리는 앙카라 성의 요새로 올라가 요새를 중심으로 넓게 펼쳐진 앙카라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이 앙카라 성의 성벽은  이중으로, 내부 벽은 7세기 아랍의 침공에 대비해 비잔틴 제국이 건설 했던 것이라고 한다.  기본적인 바탕은 로마 시대의 것이고 외부는 9세기 비잔틴 황제인 미하일 2세가 더욱 심해진 아랍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서 세운 것이라고 한다.

  언덕의 정상에는 최후의 피난처가 되는 성이 있으며 셀주크터키 시대에 복구된 성벽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어 여전히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터어키인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요새에서 내려오는 길에 앙카라의 꼬맹이들과 수없이 부딪혀야 했다.  조잡한 기념품을 주렁주렁 들고 와서 하나만 사달라고 애걸을 하는데, 약한 마음에 하나를 사주면 주위에 있던 꼬마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제 것이 더 좋다며 마구 들이댔다.  이미 샀다며 외면하고 가면 그 큰 눈에 담겨지는 실망감에 가슴이 아파 다시 주섬주섬 몇 개 사면 이번엔 아주머니들까지 몰려와 기겁을 하게 만들었다.

   그곳에서 또 하나 재미있었던 것은, 홍콩의 유명 가수 겸 배우인 사정봉의 사진이 들어있는 액세서리였다.  그의 잘생긴 외모는 이곳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 대량 생산한 것들이 이곳까지 흘러들어온 것인가.

  시내 중심에서 1㎞ 지점에 한국공원이 있었다.  한국전에서 전사한 7백65명의 무명용사들의 영혼을 안치한 한국참전 터키 기념탑이 있는데, 서울-앙카라의 자매결연을 계기로 1973년 11월 1년여 간 시공을 거쳐 세워진 탑이란다.  우리는 그곳에서 우리 조국을 위해 스러져간 젊은 터키 영혼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를 드린 후 터키의 국부 아타튀르크의 영묘에 들렀다.  

  터키국민들로부터 신격화 되다시피 한 아타튀르크의 전적을 둘러보며 우리나라에도 저런 영웅 한 분 계셔줬으면, 김구 선생이 제대로 살아만 계셨어도 저런 국부쯤은 너끈히 되고도 남았을 텐데 하는 부러움과 안타까운 마음이 교차했다.

  이날 저녁, 터키대사관의 박 서기관님을 만났다.  10여년 전 홍콩총영사관에 근무하며 나와는 꽤나 가깝게 지내던 분이다.  박서기관님과 나는 앙카라의 한 중국식당에서 거한 저녁을 먹고 또 와인 서너 병을 비우며 아득한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술에 취하고 추억에 취해 나는 생전 내비치지 않는 내 가슴 속 흉금까지 훌훌 털어버리고 있었다.  영혼에 엉겨 붙은 죄를 고해소에 들어가 훌훌 털어버리고 나오듯, 내 가슴속에 저며 있는 슬픔과 절망들을 터키 그 머나먼 이국땅에 내려놓고 싶었는지 모를 일이다.


<글 : 로사 / 계속... >


* 대한항공은 서울-이스탄불 간 화, 금, 일 주3회 직항편을 운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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