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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홍콩유감 [有感] 18 - 연극이 끝난 후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7-01-11 12:4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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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7호, 1월12일]   "알렐루 알렐루야~~~" 영화 '슈렉'에서 들었던 Rufus Wainwright 노래다.  ..
[제157호, 1월12일]

  "알렐루 알렐루야~~~" 영화 '슈렉'에서 들었던 Rufus Wainwright 노래다.  오디션에 응한다며 아들은 시도 때도 없이 불러대는데 변성기 중이라 내가 듣기엔 영 아니다.

배우 지망생의 인간시대
  제대로 된 극장에서 내가 본 첫 연극은 어린이 대공원인가 그 안에 있던 '무지개 극장'에서였는데 훗날 김수현씨 드라마에도 자주 나왔던 '김동주' 라는 여배우의 연기는 한 세대가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하다.

  "신의 아그네스를 보셨습니까?"라는 새해 인사말이 유행하던 84년 초, 세 여배우 열연의 연극이 5개월 째 롱런하고 있었지만 난 보러가지는 않았다.  토크쇼에 초대된 정신과 의사역의 윤소정 씨가 새해소망을 묻는 질문에 딸과 아들이 집에서 가까운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배정되었으면 좋겠다는 '멋진 연극배우'답지 않은, 그저 우리 엄마같이 반찬냄새 나는 평범한 '아줌마 대답'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고 윤석화 씨의, 그 당시만 해도 비범했던 '한 부분만 살짝 하얗게 염색했던 머리'(지금 생각해 보니 '블리치')와 그녀의 인터뷰 내용이 생각날 뿐이다.

  교양과목으로 '연극의 이해'란 강의를 들으면서 난 비로소 연극에 관심을 갖게됐는데 세련된 영문과 여교수님 담당이던 수업시간이면 내가 지적인 연극평론가라도 된듯한 착각에 빠져들었고 잘알지도 못하면서 '고도를 기다리며'나 '대머리 여가수'등의 연극을 수강생들끼리 보러가곤 했다.

  나의 관심은 이어져 후에도 가끔 극장을 찾았고 3학년 때엔 친구와 같이 '우리들의 사랑' 이란 뮤지컬을 참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문성근, 김지숙, 양희경 씨 출연의 호화배역이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연극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에겐 김지숙 씨 외엔 그다지 유명하지 않을 때였다.

  연극에 대한 관심도 결혼, 출산과 함께 저만치 물 건너갔다.

  94년 새해 벽두 일요일, 난 혼자 화려한 외출을 하게 되는데 4년 동안 문화생활과는 한참 멀었던 내 자신을 몇 시간이나마 연극이란 장에 푹 절여오고 싶은 맘 플러스, 두 사람에 대한 관심이 이유였다.  서울법대 출신의 주연여배우와 입구에서 프로그램을 나눠주고 궂은일을 맡아한다는 인간시대에 나왔던 배우 지망생, 바로 두 여인이었다. 주연배우 이름도 그녀이름도 지금은 잊었지만 안내책자를 받으며 그녀에게 "000씨, 티비에서 봤어요.  열심히 하세요!" 라고 내가 말했던 것은 확실하다.


레미제라블? 레미애물?
  지난해 6월 어느 날, 학교 뮤지컬 오디션에 응할 것이라는 아들의 말에 난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연극이란 것이 참여하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야 하는 것이어서 엄마 입장에서 반길 일도 영 아니었고 솔직히 내가 아는 한 연기와는 거리가 한참 멀고 노래도 영 그저 그런 쟤가 도대체 붙을 일은 전혀 없을 것이니 그저 내버려두면 알아서 금방 끝나고(떨어지고) 말 일이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캐스팅이 되었다나? 물론 주요배역은 아니고 코러스 멤버로…

  나중에 연극을 보고 난 후 깨달은 사실이지만, 캐스팅을 할 때 주연급 몇 명은 그 역을 가장 잘 소화 할 수 있는 애들을 뽑지만 나머지는 주연급 다음으로 나은 역량을 가진 애들을 뽑는 것이 아니라, 소위 별 볼일 없는(?) 배역이라도 합심해서 열심히 할 아이들을 뽑는 것 같다.  쉽게 말하면 주연급의 역량을 가졌으나 더 나은 아이들 때문에 주연이 못된 애들은 오히려 떨어지고 내 생각엔 영 아니었던 내아들 같은 애가 한 무리의 역할 중 하나로 낙점되기도 하는 것이다.  

  9월부터 시작된 리허설이 11월부터는 빽빽해져서 '레미 애물단지'덕에 다른 활동들을 포기하거나 조정해야했다.  그 중 하나는 엄마인 내가 시간 바꾸는 걸 도와줘야 했기에 "넌 왜 그런 것을 한다고 해서 그렇지 않아도 고달픈 이 엄마를 더 번거롭게 하냐"고 불평을 했다.  리허설 중반쯤 되자 연습에 불이 붙은 아이는 신이 팍팍 나는지 관심이 온통  '레미제라블' 연습에만 가 있는듯 했다.  가을학기 끝자락을 앞두고 '중요한 과제물이며 시험도 잦은데 저리 맘이 콩밭에 가있으니 어쩌냐' 하며, 세련되기는 커녕 세파에 시달리다보니 현실적 좀 속물적이기까지 한 이 엄마는 신경줄이 팽팽히 당겨옴을 느꼈지만 일일이 말은 못하고 "걱정이야" 남편에게 자주 한숨짓는 것으로 대신할 수 밖에...

  드레스 리허설을 앞두곤 또 하나의 주문을 해왔다.  "엄마를 좀 골치아프게 하는 일이긴 한데 되도록이면 안경 대신 렌즈를 끼래요." '그냥 대강하면 안 되겠니?' 하는 맘이 스쳐갔지만 '이왕이면'하며 1회용 렌즈세트를 맞춰줬다.  끼는 것에 익숙지 않아 일요일 밤 꼬박 1시간 넘게 안경점에 아이와 붙어있어야 했고 집에서 끼는 연습 시키고 드레스 리허설 날과 공연 날엔 20분 일찍 깜깜할 때 깨워 렌즈를 무사히(?)끼고 가게 했다.  안 그래야지 하는 속맘과는 다르게 아이에게 짜증도 내가며…


아! 뭉테기!
  클로즈업되지 않는 코러스 중 하나인지라 혹 못 알아볼까봐 보러가기 전날 밤, 아들에게 네가 나오는 신(scene)넘버와 맡은 역할을 써달라 했다.  9명의 주요멤버에다가 코러스 27명, 모두 36명의 출연자가 있었는데 27명은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하지만 주로 주연들 뒤에 무리지어 서 있었고 장면에 따라 학생, 노동자, 군인 등등 옷도 여러 차례 바꿔 입느라 바쁘긴 엄청 바빴다.  그래도 내 아들은 그 아이가 평소 내게 자랑한대로 합창 중간에 잠시 몇 마디 혼자 외치는 단 몇 초의, 그애의 표현을 빌자면 '솔로' 부분도 가물에 콩나듯 쬐금 있었다.

  그런데... 극이 진행됨에 따라 '깊은' 감동이 나와 남편을 감싸왔다.  빼어난 독창실력과 연기력을 가진 주연배우들도 훌륭했지만 우리의 감동의 중심은 바로 한 '뭉테기'의 코러스, 즉 단역배우들이었다.  내 아들이 그 중하나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 밤 세 시간 내내 난 단역배우들에게 빨려들었다.  어느 한 명 눈빛이 이글거리지 않는 아이가 없었고(사람 맘이 간사하기도 하지, 눈빛연기가 살도록 렌즈를 해준 것은 참 잘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으니) 노래 한 소절 한 소절을 그 노래가 생애 마지막 노래라도 되는 사람들처럼 상황에 맞는 표정과 감정을 실어 정말 열심히 불렀다.  여자 뭉테기들 또한 모든 조명과 카메라가 자신에게 클로즈업된 주연 여배우인 양 관객을 압도하는 연기를 보여줬다.

  난 연출자인 젊은 여교사가 신기해지기 시작했다.  코흘리개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이 무대에만 서면 일사불란하고 노련한 연주자가 되어 너무 완벽해 징그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북한 어린이의 공연을 봤을 때와 흡사한 섬칫한 놀라움을 그날 가졌기 때문이다.  도대체 저 여자는 어떤 능력이 있길래 저 천방지축 사춘기 아이들이 무대에서 저렇게 하도록 만들었을까.  아무리 지들이 하고 싶어 하게 된 아이들이라지만… 집에서 내가 보아온 아들의 모습만으로는 잘 설명이 안 되는 참 기이한 광경을 보며 가슴 한 켠은 아려왔다.

  연습 기간 동안 더 격려해 주지 못하고  "왜 그건 해 갔고 이렇게 엄마를…" 핀잔 주었던 것, 속으로 '네가 무슨 연극을…'생각했던 것, "너 공부는 언제 할거니?" 참다가도 한 번씩 애 맘에 쏴아 찬물을 들이부어 말짱 도루묵 만든 것….

  마지막 공연이 끝난 토요일 밤, 크림 범벅해 분장을 지워주며 남편과 나는 혼신의 노력과 열창(합창이지만)을 한 레미제라블의 단역배우 내 아들에게 진심어린 찬사를 보냈으며 공부만이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통한 경험도 쌓을 수 있는 교육환경에 감사했다.  그러나…" 자, 이젠 맘 다잡고 공부로 잘 돌아와야지?" 그래도 현실이 우선인 우리 부부의 맺음말….

  동생인 딸애는 레미제라블 포스터를 제 방문 앞에 떡 하니 부치고 "이 사람들 노래 들어봤나요?  나도 언젠가 이런 연극에 꼭 참여할 겁니다." 크게 써 놨다.  맨날 티격태격하지만 그래도 오빠는 다른지, 지오빠에게 전염된 딸애에게 "잘 부쳤어" 얘기하지만 현실적인 건조한 이 엄마, 슬슬 걱정이 된다.  


<글 : 진 주 영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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