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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차이나 드림] 1. '칼바람' 맞는 자영업 교민들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7-01-25 12: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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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9호, 1월26일]   중국의 수도 베이징의 동북쪽 왕징(望京)에서 액세서리 가게를 하던 윤경혜씨(54·여)는 요즘 귀국 보따리를 ..
[제159호, 1월26일]

  중국의 수도 베이징의 동북쪽 왕징(望京)에서 액세서리 가게를 하던 윤경혜씨(54·여)는 요즘 귀국 보따리를 싸고 있다.  왕징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베이징 교민 10만명 가운데 8만명이 살고 있는 '코리아 타운'이다.  1995년 주재원으로 발령받은 남편을 따라 베이징에 온 윤씨는 올해로 중국살이 12년째다.  남편은 근무 4년만인 99년, 본사 발령이 나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지고 사업을 벌인답시고 뛰어다녔다.  가사에 조그만 보탬이라도 주기 위해 소자본으로 경험이 없던 가게를 시작했다.  하루 10시간 이상 일해도 끊임없이 오르는 가게 임대료를 내기에 버거웠다.

  중국 베이징의 '코리아 타운' 왕징의 한인 자영업자들의 시 당국의 불법영업 금지 조치로 찬바람을 맞고 있다.  12일 한국인이 운영하는 왕징 아파트단지 부동산중개업소의 창에 팔려고 내놓은 상가 매물정보가 빼꼭하게 걸려 있다.  

  그녀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자녀 뒷바라지를 핑계로 베이징 생활을 청산하기로 했다.  10여년 동안 사업에 쏟아부은 돈만해도 남편 퇴직금을 포함해 10억원이 넘는다.  한국에 가봐도 딱히 할 일이 없는 남편(56)은 베이징에 남기로 했다.  또다른 형태의 '기러기 가족'이 생기는 셈이다.

  베이징대와 칭화(淸華)대 근처인 베이징의 대학가 우다오커우(五道口) 500여개 업소가 2만여명의 한국 유학생을 주 고객으로 삼아 영업을 하고 있다.  우다오커우에서 8년 동안 자영업을 했던 김광식씨(34)는 지난해 말 귀국했다.  김씨는 그동안 중국어 학원과 식당을, 아내(32)는 미장원을 했으나 인건비와 임대료를 감당할 형편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해 귀국길을 선택했다.

  96년부터 우다오커우에 정착한 김문형씨(37)는 올해로 11년째를 맞는다.  김씨는 당시 주변에서 일했던 자영업자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람을 거의 본적이 없다.  대부분 1,2년을 버티지 못하고 보따리를 쌌고 그나마 버티고 있던 자영업자들도 한해가 다르게 우다오커우를 떠났다.  그는 베이징에 도착한 직후 친구들과 동업한 당구장이 예상외로 재미를 보면서 식당과 PC방을 잇따라 열었다.  그러나 달콤한 순간도 잠시,  점포 3개가 동시에 도심 재개발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권리금도 챙기지 못하고 졸지에 빈손이 됐다.  겨우 정신을 차려 우다오커우에 찜질방을 세웠다.  손익 분기점에 이르자 이번에는 주인이 횡포를 부렸다.  2개월치 집세 밀린 것을 빌미로 가게를 뺏기고 말았다.

  베이징의 교민사회에서 귀국 보따리를 싸는 한인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다.  시당국의 본격적인 불법 영업 단속에다 장사마저 예전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2003년 4월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발생 당시 손님이 급감해 가게를 접고 들어간 이후 4년만에 다시 교민사회가 생존 위기를 맞고 있다.  창업을 서두른 나머지 제대로 법적 절차를 밟지 않고 가게를 열었다가 당국의 철퇴를 맞고 문을 닫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경험 미숙과 입지 선정 잘못 등 개인의 능력 부족으로 고전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가게를 열었다가 문을 닫은 것은 그나마 행복한 경우다.  중국측 파트너를 잘못 만나 고스란히 알토란같은 창업 자금 1억~2억원을 넘겨주었다가 개업조차 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자영업자들도 적지 않다.

  내국인 명의로 하는 것이 세금 등 여러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상대 말만 믿고 가게 명의를 파트너에게 넘겨주었다가 말 한마디 꺼내지도 못하고 귀국하는 어이없는 경우도 있다.  베이징에서 유명한 일부 식당도 중국인 종업원 명의를 빌어 영업 허가증을 받는 바람에 종업원에게 식당의 일정 지분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인 사장이 종업원의 눈치를 봐야 하는 황당한 일도 비일비재하다.

  왕징에서 피부 관리실을 중국측 파트너와 함께 열었던 정영훈씨(48)는 1년 만에 2억원을 고스란히 털어 넣고 보따리를 쌌다.  한국에서 피부 관리실을 성공적으로 경영했다는 자신감에다 손님 모시는 데는 자신이 있다는 파트너의 호언장담에 기대를 걸고 400㎡라는 큰 규모의 피부관리실을 열었다.  정작 파트너는 그다지 가게 영업에 정성을 쏟지 않았다.  6개월마다 들어가는 임대료 40만 위안을 내기가 벅찼다.  결국 그는 가게를 파트너에게 고스란히 넘겨주고 빈손으로 지난해말 귀국했다.

  그나마 귀국 보따리를 쌀 수 있는 자영업자들은 형편이 괜찮은 편이다.  중국인 사채업자들의 급전을 이용하던 자영업자들은 담보로 여권을 맡기고 있어 귀국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누구는 산간시골로 도망갔다더라".  사채업자에게 급전을 빌렸다가 제때 갚지 않은 일부 자영업자들이 귀국을 하지 못한 채 중국 내륙 지방으로 피신했다는 소문이 최근 베이징 교민 사회에서 꼬리를 물고 있다.  가뜩이나 흉흉한 교민 사회를 더욱 황량하게 만드는 괴소문들이다.  왕징 일대에는 아파트 단지도 많지만 중국인들이 거주하는 '벌집'도 있다.  중국말로는 '핑팡(平房)'이라고 하는 이 곳은 월세가 200 위안(2만4000원)~300 위안(3만6000원)에 불과하다.  이 곳에 한국에 돌아가지도 못하는 '난민 아닌 난민'들이 모여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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