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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달의 익사이팅 홍콩] 부자에 적대감이 없는 이유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7-01-25 12:3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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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9호, 1월26일]   아시아 최고의 금융 중심을 자부하는 홍콩에 2년 반 가까이 살면서 가장 특이하다고 생각한 현상 중 하나는 시..
[제159호, 1월26일]

  아시아 최고의 금융 중심을 자부하는 홍콩에 2년 반 가까이 살면서 가장 특이하다고 생각한 현상 중 하나는 시민들의 '기부벽(癖)'이다.  매 주말마다 홍콩 시내 중심가나 지하철역 입구, 아파트 단지 같은 인파가 몰리는 곳에는 몸에 작은 띠를 두른 10대 중·고생이나 30~40대 시민들이 모금함을 들고 있는 모습이 어김없이 들어온다.    

  이들은 끈질기다.  그냥 가만히 서있지 않고 행인에게 따라붙으면서 함을 내민다.  지겹거나 귀찮을 법도 한데 시민들은 인상 한번 찡그리지 않는다.  일부는 50홍콩달러(약 6000원)나 100홍콩달러짜리 지폐를 넣지만, 대다수는 5 또는 10홍콩달러짜리 동전을 낸다.

  1, 2홍콩달러짜리 쌈짓돈을 꺼내는 얼굴 두꺼운 사람도 제법 된다.  그래도 모금함을 든 봉사자들은 연방   "고맙다"며 고개를 숙이고, 시민들의 윗옷에 손톱만한 스티커를 붙여준다.  "이 사람은 000단체에 성금을 냈다"는 표시이다.  이걸 받으면 그날 하루는 어느 곳에서도 기부금을 내달라는 주문을 더 이상 받지 않는다.  일종의 면죄부성 영수증 같은 것이다.

  서울에서 수많은 사이비 모금자를 접했던 기억이 생생한 기자도 처음에는 의구심을 품고 혀를 찼었다.  "1인당 소득 3만달러에 육박하는 홍콩에도 앵벌이 짓을 하는 이가 이렇게 많나"  "학생이 할 일이 정말 없나 보구나"…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바로 이게 홍콩의 문화적·사회적 경쟁력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먼저 모금 활동을 하는 학생은 학교가 권장하는 '플래그 데이(flag day)' 행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들의 활동 내역은 대학 진학 시 중요한 가산(加算)점 요인이 된다.  적십자사 같은 단체는 기탁된 성금을 언제 어떤 곳에 지출했는지 인터넷을 통해 유리알처럼 공개한다.  
정부는 100홍콩달러 이상의 기부금에 대해서는 세액공제를 해준다.  

  더 주목되는 것은 이런 기부문화는 상류층이 솔선수범해 이끈다는 사실이다.  아시아 최고 부자인 리카싱  (李嘉誠) 청콩그룹 회장은 전 재산의 3분의 1을 리카싱 재단에 기증해 교육 및 빈곤 퇴치 사업에 쓰겠다고 밝혔다.  이는 최소 6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규모이다.  
쿵후 스타인 성룡(成龍)도 지난해 세밑, 1억2800만달러(약 1200억원)로 추정되는 재산의 절반을 자선단체에 기부한다고 선언했다.

  홍콩에서 내로라하는 선훙카이(新鴻基)그룹의 궈(郭)씨 3형제나 마카오의 카지노왕인 스탠리 호(何鴻桑) 같은 거상도 거액의 기부행렬에 빠지지 않는다.  이들의 행동은 여론 반전을 겨냥해 면피성 기부 발표를 하는 한국의 일부 재벌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러다 보니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위기를 거쳤지만 홍콩 시민의 개인 기부금액은 2004년에 28억9000만홍콩달러(약 3468억원)로 4년 전보다 56%나 늘었다.(홍콩 국세청)

  글로벌 투자은행인 UBS의 테리 패리스(Farris) 자선사업 담당 총책임자는 "홍콩인의 평균 현금 기부액은 60달러로 미국(10달러)과 영국(5달러)을 압도한다"고 말했다.  기부에 관한 한 홍콩이 명실상부한 세계 수준의 선진국이라는 얘기이다.

  사실 700만 홍콩시민 중 3분의 1 정도는 15평 남짓한 정부 제공 공공임대 주택에 산다.  그만큼 빈부 격차가 살인적이다.  그런데도 홍콩에서 부자에 대한 적대감이나 '배아픔'이 없는 것은, 양식있는 시민이 행동으로 실천하는 '기부'라는 든든한 사랑의 완충막 때문이 아닐까?


<출처 : 주간조선, 송의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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