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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별곡 (30) - 괴전화에 시달리는 메이드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5-01-26 11:2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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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65호]   메이드별곡이 벌써 30회를 맞았다.  우리집 메이드 얘기를 쓸 때는 늘 부딪히며 사는 생활이라 90%가..
[제 65호]

  메이드별곡이 벌써 30회를 맞았다.  우리집 메이드 얘기를 쓸 때는 늘 부딪히며 사는 생활이라 90%가 사실에 근거해서 썼으나, 남들에게 들어 쓴 이야기는 굵은 줄거리만 세우고 여기저기에 살을 붙일 수밖에 없다.  

  간혹 독자들을 만나면 그들은 자신의 경험담이나 들은 바를 얘기하곤 하지만 막상 글로 써서 보내달라고 부탁하면 절대 불가능한 얘긴 하지도 말자며 말머리를 휙 돌려버린다.  그래서 결국 나 혼자 보고 듣고 옮겨진 이야기들을 이렇게 소설 쓰듯이 써내려 간다.


괴전화에 시달리는 메이드
  서영씨는 크리스틴이 일어나기를 기다려 자초지종을 물었다.  크리스틴이 사라진 날은 12월 24일로, 성당으로 자정미사를 보러 나갔다고 했다.  미사후 친구들과 어울려 수다떨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 새벽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서영씨는 궁금한건 그게 아니었다.  나가서 새벽에 들어온 건 둘째 치고, 왜 경찰이 들이닥쳤느냔 말이다.  크리스틴은 세상에 이런 황당할데가 어디 있느냐면서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일전에도 잠시 얘기를 했지만, 서영씨네는 메이드의 행복이 바로 가족의 행복임을 철칙으로 믿고 사는 사람들이다.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이 기쁘면 음식에 정성이 들어가고, 그 음식을 주인이 먹음으로 해서 가족들이 건강해지고 행복해 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집은 메이드를 위해 부엌에 에어컨과 개인 전화까지 설치해 줬었다.  그런데 이게 화근이었다.  어느 날부터 부엌에 있는 전화로 이상한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전화가 울려 받아보면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듣고만 있는 아주 요상스런 전화가 하루에도 몇 번씩 그리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는 데에야 아무리 톰보이 같은 크리스틴이라 할지라도 겁을 아니 먹을 수가 있으랴.  급기야 크리스틴은 전화벨이 울리기만 하면 화들짝 놀라기 시작했다.  전화 공포증까지 생길 지경에 이르러 크리스틴은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크리스틴은 우선 자신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추적에 들어갔다.  며칠이 지나자 범위가 세 사람으로 좁혀졌다.  그러던 어느 날 크리스틴은 다시 걸려온 전화 저 너머로부터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혐의를 두고 있던 사람들 중 아이들이 있는 집은 한 집, 바로 같은 동네 사는 메이드 한나가 범인인 것이다.

  크리스틴은 한나를 공원으로 불러냈다.  이리저리 유도심문을 시도해 봤으나 오리발만 내미는 그녀. 하는 수 없이 크리스틴은 톰보이의 기질을 발휘해 죽일듯이 달려들어 악악거리며 소리를 질렀더니 겁에 잔뜩 질린 그녀가 결국, 자기가 그동안 장난 전화를 해왔노라고 털어놨다.

  도대체 한나는 왜 그녀에게 요상한 전화세례를 끊임없이 해댔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크리스틴이 한나와 다
투다 가슴에 상처를 남긴 것이다.  한나는 화가 나서 크리스티나를 그렇게 괴롭혀 왔던 것이다.  여자에게 한이 맺히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던가?  한까지 아닌 게 천만 다행이지, 한나 가슴에 정말 한이라도 맺히게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러나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톰보이 크리시틴은 한나의 뺨따귀를 냅다 올려붙인 것이다.  그동안 전화벨만 울려도 심장이 벌렁거려 잠도 제대로 못자고, 무수한 날을 공포에 떨며 지냈던 크리스틴이 아니었던가.  한나는 분에 못 이겨 크리스틴을 기어이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되찾아온 벌금
  서영씨네 가족은 그런 크리스틴이 너무 걱정스러웠다.  게다가 경찰에 불려가 호되게 야단을 맞고 벌금까지
물고 왔으니 크리스틴의 심정이 오죽했으랴.  그렇게 풀이 죽어 의기소침해 있는 크리스틴을 보다 못한 서영씨 큰 딸(중학생 쯤 되었었나?)이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서영씨 큰 딸 민주는 경찰서로 찾아가 경찰과 담판을 졌다.  대체 우리 메이드가 무슨 대역죄를 졌다고 새벽 2시에 들이닥치냐 이거다.  우리 집에 고용되어 있는 이상 도망갈 사람도 아니고, 기껏 친구 뺨따귀 한대 때렸다고 가정집에 오밤중에 들이닥치는 홍콩 경찰의 태도에 참을 수가 없다고.  

  홍콩 경찰은 서슬 퍼런 한국 여학생이 요목조목 따져가며 항의하는데 할 말을 잃고(한국에서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어린 서희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칫 일이 더 커질 것을 염려해 크리스틴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벌금까지 고스란히 되돌려 주고 말았다.  다시 의기양양해 져 톰보이가 된 크리스틴은 홍콩생활에 잘 적응해 나갔다.  엘리베이터도 누를 줄 알게 되고, 폭력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홍콩 사회에서 화가 난다고 폭력을 휘두르는 일도 삼갔다.  크리스틴은 그렇게 서영씨네 집에서 4년여를 살다 서영씨네 아이들이 다 자라 더 이상 메이드가 필요 없게 되자 다른 집으로 갔다.


배달되어온 선물
  크리스틴은 그 후 홍콩에서 몇 년을 더 살고 필리핀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크리스틴이 어느 집에 가서 어떻게 고생을 했는지 소상히 들은 바는 없지만, 메이드를 위해 온 가족이 마음을 써주는 그런 집에 있다가 일반 홍콩 사람네 집에서 살아가자니 많이 힘들었으리라.

  서영씨는 어느 날 뜻밖의 손님을 맞았다.  처음 보는 필리핀 메이드가 무엇을 한 꾸러미 들고 서영씨를 찾아온 것이다.  필리핀으로 휴가를 다녀왔다는 그녀는 릴리, 크리스틴 자매와 그리 멀지 않은 이웃동네에 살고 있다고 한다.  릴리와 크리스틴이 마음 따뜻한 서영씨네 가족을 잊지 못하고 지내던 중 휴가 왔다는 친구소식을 듣고 선물을 보내온 것이다.  

  릴리와 크리스틴이 보내온 선물은 무엇일까?  나의 첫 메이드였던 오필리아가 홍콩 오자마자 구워내 우리를 시껍하게 했던, 한 번 요리하면 그 역한 냄새 때문에 밤새 문 열어놓고 환기시켜도 끝끝내 남아 코를 괴롭히던 바로 꾸리꾸리하고 찝찌름하며, 캐캐하게 말린 필리핀 생선이었던 것이다.  홍콩에는 함위가 있고, 우리나라에는 조기가 있듯이 필리핀에는 그 생선이 있는가 보다.  서영씨는 그 생선을 받아들고 눈물이 핑 돌았다.  세월이 그렇게 흘렀음에도 옛 주인을 잊지 않고 선물을 보내왔으니 어찌 가슴이 찡하지 않으랴.  그러나 서영씨는 바로 고민에 빠졌다.  이 생선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도저히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아 냉장고에 넣어두면 노숙자 양말에서나 날 듯한 고린내가 진동을 하니 말이다.  어쨌을까?  15년이 지난 요즘 서영씨도 그 생선에 대한 행방에는 가물가물 하다고 한다.  아마도 이리저리 이사 다니며 빼뜨리고 왔는지, 다른 메이드에게 줬는지....  

  어찌되었든 이래저래 해서 서영씨는 메이드와의 행복한(?) 삶을 잘 마무리 하고, 아이들은 미국 명문대학으로 유학가서 학업중인지라 남편과 단출히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도 한 15년 후면 서영씨처럼 그런 삶을 살 수 있겠지.  
                                                                                                                              / 계속..
                                                                                                                             <글 : 로사>
        
* 위클리홍콩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12-0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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