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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별곡 (31) - 손버릇 나쁜 메이드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5-02-17 01: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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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7호] 내 친구 용미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중학교 다닐 때, 그리고 우리는 벌써 다 큰 어른입네 큰소리 치고 다니던 고등..
[제67호]

내 친구 용미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중학교 다닐 때, 그리고 우리는 벌써 다 큰 어른입네 큰소리 치고 다니던 고등학교 때, 하물며 지성인이라고 자부하던 대학교 때 까지도 내 곁에는 항상 손버릇 나쁜 친구(?)들이 한두 명씩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는 초.중.고등학교 때 까지 같은 학교를 다녔던 용미라는 아이였다.처음엔 저런 아이와는 상대도 하지 말아야지, 행여 내 물건에 손이라도 대면 어쩌나 하며 멀리 더 멀리 떼어놓고 지냈다.  

용미는 주로 조회하러 나간 시간이나 체육시간, 아니면 청소시간을 이용해 원하는 것을 슬쩍슬쩍 가지 소유로 삼았다.  
코 찔찔이 꼬맹이 때야 가져가는 것 이래 봤자 연필 한 자루에 간혹 잘 걸리면 동전 두어 잎 정도가 다였지만 고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되었을 때, 이 아이의 손버릇은 애교로 봐 줄 수 있는 손버릇이 아닌 도벽으로 바뀌어 버렸다.  중학교 때 농협으로부터 우리 반 아이들의 저축액을 몽땅 찾아가버려 농협과 학교가 비상에 걸린적도 있다면 할 말 다 했지 않은가?

  사건인 즉 이랬다.  공부뿐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1등만 해야만 하는 욕심 많은 중 3 담선생님 덕분에 우리반 아이들은 저마다 통장에 나름대로 목돈을 가지고 있었다.  졸업때 쯤 되었을 게다.  어느 날 반장이 교무실에 다녀오더니 엉엉 울기 시작했다.  우리반 통장 전액을 도둑맞았다는 것이다.  농협 조합장과 예금담당자의 진술을 통해 밝혀진 범인은 다름아닌 그 용미였다.  용미는 매번 도둑질하기도 귀찮아 철저하게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우리들 통장이었다.  그 아이는 반장이 관리하고 있던 통장 묶음을 훔쳐낸 후 담임 선생님한테 가서 반장이 가져오랬다며 선생님이 관리하고 있던 반 아이들 도장 묶음을 달라고 했다.  선생님은 느낌이 이상하긴 했지만 의심 없이 도장 묶음을 전해 주었다.  용미는 농협으로 바로 달려가 선생님 심부름 왔다며 통장하고 도장을 내밀고 잔액 인출을 요청했다.  농협 역시 별 의심 없이 백만원에 가까운 거액을 찾아서 건네주며 잘 가져가라고 조심까지 시켰다고 한다. 그 다음 달 저축의 날이 우리반 반장이 우리들의 저축액을 들고 농협을 찾았을 때, 결국 그 사건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그때서야 우리들은 지난 한달 간 매일이다시피 학교 앞 분식집에서 큰소리 떵떵치며 인심쓰던 용미가 이상하기도 했다면서, 결국 우리 돈으로 우리 떡볶이 사준거라고 분개했다.  

  그 일 이후 용미는 무기정학을 맞았고, 몇 달 후 다시 우리 반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용미의 손 버릇은 끝끝내 고쳐지지 않았다.  손버릇은 그렇게 고질병이라는 것을 나는 일찌감치부터 깨달았다.


보딩하우스에 쌓이는 보석

  메이드를 쓰면서 나는 천만 다행으로 손버릇 나쁜 메이드는 만나본 적이 없다.  단지 주위에서 누가 어떻게 뭘 훔쳐 갔다며 기막혀 하는 사람들 이야기만 여러 차례 들었다.  집안 살림을 통째로 맡겨뒀더니 슬금슬금 살림을 밖으로 드러낸다면 얼마나 황당하고 기가 찰 노릇인가?  이런 상황이야 말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놓은 격이 아닌가.

  민아네도 마찬가지였다.  남들처럼 메이드를 믿거니, 모든 걸 맡겨 뒀는데 어느 일요일 이웃집 메이드가 찾아와 혹시 이런저런 물건을 아직도 가지고 있느냐고 물어오는 것이었다.  요즘 사용하지 않아 기억이 가물가물해 여기저기 찾아보니 보이지가 않았다.  이웃집 메이드가 그런다.  그 물건들, 다 보딩하우스(메이드들 몇 명이 빌려 같이 사는 집)에 있다고.  혹시 시간이 되면 주소가 어디어디니 한 번 가서 뒤져보라고.  민아는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았다.  지금 쓰고 있는 메이드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터에 그런 소리가 어디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옆집 메이드는 같은 필리핀 사람으로, 주인에게 고마움은 표하지 못할망정 피해를 입히는 그런 몰염치한 행동을 더 이상 보고 있기 힘들어서 얘길 하게 됐다고 믿지 못할 얘기를 계속하는 것이었다.  

  민아는 철썩 같이 믿어왔던 그녀가 점점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메이드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그리 비싸지 않은 금붙이 목걸이(필리핀 사람들은 금붙이를 중국사람 못지않게 좋아한다)를 하나 사다 장식장에 방치해 두었다.  약 한 달 후 목걸이가 자취를 감췄다.  메이드가 심부름 간 사이 여기저기 뒤져보니 바로 옆 중국 항아리 속에 들어가 있는 게 아닌가?   도대체 장식장에 잘 들어있던 목걸이가 왜 항아리 속으로 옮겨졌을까?  민아는 메이드를 다그쳐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모른척 했다.  다시 일주일 후 그 목걸이는 항아리 속에도 들어있지 않았다.  

  민아는 어느 일요일 오후, 남편을 대동해 옆집 메이드가 일러준 대로 보딩하우스를 덮쳤다.  그곳에는 서너명의 메이드들이 함께 모여 음식을 해먹으며 나른한 일요일 오후를 마냥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눈위 휘둥그래진 민아네 메이드와 그녀의 친구들은 허둥지둥댔다.  민아는 메이드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자리를 비워 줄 것을 요청했다.  민아네 메이드만 남은 상태에서 민아는 마음을 다잡고 심문에 들어갔다. 그간 없어진 자기네 폐물들을 나열하면서 그 출처를 물었다.  딱 잡아떼던 메이드는 경찰을 부르겠다는 얘기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자기가 보관하고 있던 보석들을 내놓았다.  민아와 그녀의 남편은 그야말로 아연실색 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했던 일들이 현실이 되어 그녀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었다.  결혼예물이며, 틈틈이 사들였던 금붙이들이 수북이 쏟아져 나왔다.  민아는 폐물들을 챙겨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오며 ‘믿는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속담을 처절한 가슴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민아와 그녀의 남편은 일찌감치 들어온 그녀의 메이드와 마주앉아 앞으로의 일을 의논했다.  일이 이렇게 까지 된 이상, 더 이상의 믿음이 없는 상태로 하루를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민아는 한 번만 용서해 주면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는 메이드의 울부짖음을 냉정하게 거절하고 필리핀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라고 일렀다.  그녀의 메이드는 며칠 안으로 짐을 싸서 필리핀으로 돌아갔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메이드가 손을 댄 건 민아의 폐물 뿐 아니라 남편의 값비싼 넥타이며 커프스, 아이들의 옷가지 까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필리핀 메이드에게 신의를 상실한 민아는 새 메이드를 구하면서 철저하게 이 점을 못 밖아 두었다.  만에 하나 우리 집에서 물건이 하나라도 없어지는 날엔 전액 보상 할 것!!

    그 후로 민아네는 값이 나가는 폐물은 모두 회사에 보관해 두고 메이드 감시에 철저를 기했다.   그러한 그녀와 메이드와의 삶, 홍콩에서의 삶이 어찌 편하기만 했으랴 만은 사회생활을 포기하지 못하는 그녀로서는 또 다른 뾰족한 대안은 없었다.  

  손버른 나쁜 메이드에게 상처를 받은 민아는 아이들이 다 성장해 대학에 진학하자 메이드와의 삶을 청산했다. 남편과 민아만이 덩그라니 남은 텅빈 공간에서 한 없이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민아는 요즘 이 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다고 팽팽한 행복감을 곱씹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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