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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별곡 (33) - 속옷 패션쇼, 사라진 로렉스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5-03-17 10: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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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1호, 3월 18일]   2주 동안 지면이 여의치않아 메이드별곡 연재를 잠시 쉬었습니다.  그나저나 이제 메이드별곡 ..
[71호, 3월 18일]

  2주 동안 지면이 여의치않아 메이드별곡 연재를 잠시 쉬었습니다.  그나저나 이제 메이드별곡 소재도 거의 바닥을 드러내 슬슬 마감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 더 재미있는 얘기 써서 보내주세요.  "우리 메이드 최고"도 좋습니다.  제가 메이드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이미지만 여러분들에게 심어 드린 것 같아 메이드들에게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렇잖아요.  잘하는 건 당연한거로 보이고, 못하면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되는...  또 그렇더라구요.  누가 잘해서 칭찬하면 "발 없는 말이 천리간다"는 우리 속담도 무색하게 다음 사람에게서 흐지부지 없어지지만, 요상스런 일에 대해 얘기하면 몇 년을 두고두고 회자되기도 합니다.

  홍콩에서 10여년을 한국 사람들과 산 어떤 메이드는 베테랑 중에서도 으뜸 베테랑이라 그녀를 아는 한국 사람들이 프리미엄까지 얹어주면서 모셔가려고 줄을 섰습니다.  음식이면 음식, 아이들 영어교육에 피아노 교습, 고민 상담사까지....  못하는 분야 없이 뛰어나 메이드 하긴 정말 아까운 그런 고급 메이드도 있습니다.  그런 메이드 만나는 것도 능력이고 복이겠지요.  저처럼 순박하고 단순, 그래서 숨통이 턱턱 막히는 메이드들과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홍콩 생활 하는 것도 제 복이겠구요.  그래도 저는 나름대로 위안을 삼습니다.  무서운 메이드들도 얼마나 많은데요.  그런 메이드들에 비하면 우리 메이드는 상전 아니겠어요?  때론 그 순박함에 감사하기도 한답니다.

  자 그럼, 오늘도 지난번에 이어 속옷사건 한 가지 더 얘기해 드립지요.



속옷 패션쇼  


  내가 아는 그 여자, 서연수도 속옷을 꽤나 좋아했다.  속옷을 알고 또 좋아하는 여자들은 세트로 구입하게 되는데, 세트로 된 속옷이 싼 것은 없다.  연수는 나와 함께 퍼시픽플레이스에서 점심을 먹고, 시간이 나면 영국 백화점 막스스펜서에 들러 쇼핑을 하곤 했다.  그 때마다 연수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곳은 매장의 1/3을 차지하고 있는 속옷 코너다.  그냥 보기만 하겠다며 나를 끌고 가서는 언제나 속옷 서너 세트를 사고야 마는 그녀는 중독성이 있지 않나 싶을 정도로 속옷을 좋아했다.

  하루는 내가 물었다.  너 "지난번에 이거랑 똑 같은 거  샀잖아."  연수는, "사긴 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세트로 구입한 게 한 가지 밖에 없다고.  이빨 빠진 것처럼 짝짝이로 입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고.  한 번도 입어보지 않은 속옷 중 한 가지가 왜 없어질까?  정말 이상한 노릇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연수가 숨이 목에 차서 전화를 해왔다.  이럴 수는 없는 거라고.  도대체 이 일을 어쩌면 좋으냐고.  그동안 없어진 속옷이 고스란히 메이드 서랍 속에 있다고.  연수는 그걸 어떻게 안 것일까?  홍콩 여자들처럼 메이드 없을 때 들어가서 들들 뒤져본 것일까?  
  어느 일요일, 메이드 방에 빨래를 널러 들어갔는데 미니 앨범들이 책꽂이에 어지럽게 꽂혀져 있더란다.  책꽂이를 정리할 겸 앨범을 정리하다 무심코 열어봤더니 거기에는 자신의 속옷을 입은 메이드가 가끔은 섹시하게, 가끔은 활짝 웃으며 서 있더란다.  숨은 턱 막히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할 말을 잃은 연수는 메이드 옷장을 열어 재꼈더니 거기에는 그간 없어진 자신의 속옷이 가득 들어 있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어떻게 메이드가 속옷을 입고 사진을 혼자서 찍을 수 있을까?  삼발이를 설치하고, 자동 셔터기능을 이용해 찍을 만큼 전문성이 있는것도 아닐텐데.  
  연수와 남편은 일하러, 아이들은 학교로 모두 가고나면 연수네로 이웃집 메이드가 종종 놀러온단다.  이럴 때 연수네 메이드는 주인이 새로 구입한 속옷을 입고 있는 대로 폼을 잡고 서 있고, 이웃집 메이드는 그걸 또 열심히 찍어준 것이다.

  연수는 메이드와의 관계를 미련 없이 정리했다.  근 2년간에 걸쳐 훔쳐낸 속옷의 양도 양이겠거니와 더 이상 믿음이 없어진 마당에 관계를 계속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라진 로렉스

  부유한 외국인과 사는 한 어여쁜 한국 여자 그리고 그 집의 메이드 세라와 세라 친구 에뜨미나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집 메이드 세라는 매우 성실하고 착하다.  몇 년을 함께 살아도 꾀를 부릴 줄 모르고 늘 한결같은 자세로 일을 하는 아주 근면한 메이드다.  그런 세라가 어느 날인가부터 주인의 곱지 못한 시선을 받아내야 했다.  발렌타인데이 때 남편으로부터 선물 받은 로렉스 시계가 감쪽같이 사라진 탓이었다.  그간 봐오던 세라의 품행으로 봐서 세라의 손을 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외출하기 전 확인까지 하고 나간 로렉스가 없어진 사건에서 세라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세라는 친구 에뜨미나의 영국인 남자친구 윌리엄으로부터 이상한 얘기를 들었다.  윌리엄의 여자친구 에뜨미나가 어마어마하게 비싼 로렉스 시계를 차고 다니며 자랑을 한다는 것이다.  보는 이마다 신기해하며 어디서 났느냐고 물으면 돈 모아 샀다고...  윌리엄은 그러나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왜냐하면 메이드의 월급은 빤하고, 십 원 한 장 안 쓰고 몽땅 모은다 해도 10년 이상을 모아야 살까말까 한 고가의 시계였기 때문이다.  윌리엄이 얘기하는 시계 생김새를 들어보니 딱 안주인이 잃어버린 그 시계였다.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던 것일까?'  몇 달 전 그러니까 로렉스가 없어진 그 날 세라네 집엘 에뜨미나가 다녀갔었다.  정말이지 이날 이때껏 주인으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가며 참아왔지만 친한 친구 에뜨미나 만큼은 손톱만큼도 의심하지 않았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것도 유분수지.

  그날 저녁, 세라 안주인은 에뜨미나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메이드가 로렉스 시계 차고 다니던 것을 보았느냐고, 보았단다.  영국인 남자친구가 사줬다고 자랑까지 해서 그런 줄 알았었다고.  



사랑과 용서


  세라는 주인 허락 없이 친구를 마음대로 불러들인 댓가를 혹독하게 치렀다.  에뜨미나는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  '견물생심'이었다고.  꿈에도 그리던 로렉스가 있어 자기도 모르게 슬쩍 가져갔다고.  가난하게 살아왔어도 남의 물건에는 절대 손대며 살진 않았는데 눈이 뒤집혔었나 보다고, 그러니 한 번만 선처해 주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으마고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애원을 했다.  한국 사람들은 정에 약하고 마음도 약해 매몰차게 딱 끊어버리질 못한다.  누군가가  저렇게 애원을 해오면 '딱 한 번만'이라며 너그럽게 용서를 해준다.  다른 사람으로 살아갈 기회를 주는 정말 너그러운 민족이다.

  세라 친구 에뜨미나는 그 이후로 어떠한 불미스러운 일도 만들지 않았으며, 더 열심히 일해 자신의 주인과 세라, 그리고 세라의 주인으로부터 완전하게 인정을 받았다.  에뜨미나의 남자친구 윌리엄도 한 순간 로렉스에 눈이 먼 여자친구를 너그럽게 용서하고 이듬해 말 영국으로 함께 돌아갔다.  

  그로부터 1년 후, 세라는 에뜨미나로부터 어느 따스한 봄날, 영국의 작은 교회에서 잘생긴 윌리엄과 결혼식 올리는 사진을 받았다.  그리고 또 1년 후, 남산 만해진 배를 안고 윌리엄과 함께 행복에 겨워하며 찍은 사진 한 장을 더 보내오며 이렇게 적었다.

  "세라, 내 인생에서 가장 부끄럽고 또 값진 경험이었다.  만일 그때, 너와 나의 한국 주인들이 매몰차게 나를 필리핀으로 추방해 버렸다면, 내 남편과 나 또 내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나에게 떳떳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준 너그러운 너와 나의 한국 주인들로 인해, 나는 뱃속의 아이와 함께 천상의 행복을 느끼며 산단다.  부디 너의 주인과 나의 옛 주인에게 나와 윌리엄의 특별한 감사를 전해주거라.  

너의 친구, 에뜨미나 로부터..."


        / 계속..
        <글 : 로사>

* 위클리홍콩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12-0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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