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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홍콩반환 10주년… 정치시계는 제자리걸음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7-06-14 12: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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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8호, 6월15일]   지난 70년대 말 홍콩 사람들은 중국 대륙 사람들에 대해 '아찬(阿燦)'이라며 얕잡아 불렀다. &n..
[제178호, 6월15일]

  지난 70년대 말 홍콩 사람들은 중국 대륙 사람들에 대해 '아찬(阿燦)'이라며 얕잡아 불렀다.  아찬은 '우매 빈궁, 시류에 뒤진 사람'이라는 뜻으로 당시 드라마에서 청찬(程燦)이 촌뜨기 중국 밀항자 배역을 맡은 데서 유래한 별명이다.

  개혁 개방이 추진된지 30년을 앞둔 지금 홍콩인의 눈에 비친 중국인은 더 이상 이런 천덕꾸러기의 모습이 아니다.  지금 '아찬'은 홍콩 중심가 호화호텔에서 값비싼 식사는 물론 고가의 보석과 화장품을 싹쓸이 쇼핑하면서 다니는 사람들이다.  예전 홍콩인들이 대륙 친지 방문 때 챙겨들었던 짐 보따리가 이제는 '아찬'들의 손에 들려 홍콩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난징(南京)조약으로 156년 동안 영국에 내주었던 식민지 역사를 청산하고 출범한 '신 홍콩체제'가 10주년을 맞고 있다.  다음달 1일 중국은 후진타오(胡錦濤) 등 지도부가 총 출동해 반환 10주년을 성대하게 기념할 모양이다.  대외적으로 '중국의 홍콩(인)'을 광고하려는 의지가 넘쳐난다.

  '정치예술'이라는 자찬에 걸맞게 1국2체제(一國兩制)를 축으로 한 '신 홍콩체제'는 중간평가에서 일단 성공을 거두는 분위기다.  체제 성격상 물과 기름처럼 여겨졌던 홍콩과 중국 대륙 관계가 물리적 결합에 이어 화학적 융합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 사회주의와 홍콩 자본주의가 시장경제라는 한 우물 속에 녹아들고 사회적으로 중국의 '만만디(慢慢的)'와 홍콩 사회의 '스피드'가 혼성 화음을 내는 듯하다.

  홍콩은 아시아 외환난, 2003년 사스 등 반환 직후 닥친 체제 위기를 극복하고 놀라운 경제 복구능력을 과시했다.  중국과의 경제협력관계협정(CEPA)에 힘입어 최근 3년 연속 7% 안팎의 고성장을 기록했다.  홍콩 반환 전 불안감을 갖고 캐나다 등지로 향했던 수십만명의 엑소더스 행렬도 고스란히 홍콩 본지로 되돌아왔다.

  과거 홍콩은 중국이 서방과 랑데부하는 거의 유일한 거점이었다.  중국은 홍콩이라는 자본의 우물을 세례로 선전 1호 경제특구를 성공시켰다.  지금은 거꾸로 중국이 홍콩 발전의 성장판, 홍콩 해외진출의 교두보가 되고 있다.

  본토와 홍콩 간의 문화교류에도 활발한 동화작용이 일고 있다.  홍콩 영화계는 중국을 무대로 홍콩 영화의 르네상스를 꽃피울 꿈에 부풀어 있고 홍콩 가수와 연예인들도 팬이 많은 대륙 시장을 더 중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국의 체제 실험이 여기서 끝났다고 속단하기는 아직 이른 듯하다.  홍콩인들은 여전히 중국 공산당에 '마음(인심)'주기를 경계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홍콩인들이 온전한 '중국 홍콩인'으로서 '중국 우산'속에 들어오길 고대하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홍콩인들은 1국2체제를 제대로 하려면 먼저 보통선거를 보장하라고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에서 융합의 움직임이 활발하지만 정치 시스템에 대한 중국과 홍콩의 시계 바늘은 10년 전에 멈춰진 느낌이다.

<출처 : 헤럴드경제, 최헌규 특파원(k@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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