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호, 12월 21일]
1. 정체성 교육
가. 인간의 삶의 기본인 모국어 교육은 왜 중요한가?
독일의 철학자이자..
[202호, 12월 21일]
1. 정체성 교육
가. 인간의 삶의 기본인 모국어 교육은 왜 중요한가?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훔볼트는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고 했다. 그의 표현을 함수관계로 설명한다면 언어가 독립변수이고 사고는 언어의 종속변수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 특히, 모국어는 그 사람이 사고하는 데에 기본 근간이 된다. 우리 인간은 일상 생활에서 어떤 현상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것을 개념화할 때 모국어를 사용한다. 따라서 어떤 현상에 대한 개념화된 단어를 모른다면 그 사람은 어떠한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매우 어렵다. 예를 들어 만약 '사돈'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아이가 있다면 '사돈'이란 개념이 주는 한국적인 정서를 알지 못한 채 그 다음 단계의 사고를 진행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처럼 실제로 아직 접해보지 않은 개념이나 혹은 자신이 알고 있는 표현에 없는 개념은 생각속에 느낌으로 맴돌 뿐 더 이상 생각을 발전시킬 수 없다.
따라서, 모국어 교육은 단순히 언어교육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것 즉,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교육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모국어 교육은 의사소통을 위한 기본적인 것보다 사고의 틀을 형성한다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인간 사고의 틀은 인지심리학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삐아제가 말하는 전조작적 사고 단계와 구체적 조작적 사고 단계에 해당되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때의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자신의 논리적인 틀을 형성하는 데 내부적인 정신활동이 활발히 일어나는 초등학교 때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기 영어교육에 대한 열풍 때문에 한국어는 몰라도 영어만 잘하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고 있는 학부모들을 보면 정말 답답하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또한,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학부형들 중에 자기 자녀가 정규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고, 집이나 토요학원 같은 데서 한국어를 대충 공부하면 자녀교육은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는 분이 있다면, 자녀교육에 대한 보다 더 긴 안목을 갖고 인생의 가치에 있어서 정말로 무엇이 중요한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교육은 시기가 있다. 그 시기를 놓치면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만약 어떤 한국사람이 사고의 틀이 형성되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때 제대로 된 한국어
교육을 받지 못했다면, 엄밀한 의미에서 제대로 된 한국인이 될 수 없다. 항상, 그는 진정한 한국인이 아닌 다른 사람(외국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진정한 다른 나라 사람(외국인)이 되기도 어려울 것이다.
얼마 전에 홍콩에서 20년 째 사는 미국인을 우연히 만날 기회가 있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보니 홍콩에 대하여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 "당신은 이미 홍콩사람이다."라고 했더니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했다. 이유인 즉 홍콩사람들은 100여년을 자자손손 살고 있는 인도사람들에게도 홍콩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데, 중국 본토에서 이민 온 지 1년된 중국인에게는 홍콩사람이라고 한다면서 절대 자기는 진정한 의미의 홍콩사람이 될 수 없단다. 사정이 이러한 데 한국인이 영어를 아무리 잘 해도 영국인이나 미국인이 될 수 없다고 본다.
한국인은 한국인이며, 영어를 잘하면 매우 좋다는 것이다. 우리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영어 잘하는 것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자녀가 한국인이 되는 것을 포기한 것은 아닌지, 혹은 자기도 모르게 자녀가 한국인도 아니고 외국인도 되지 못하는 주변인으로 키우고 있지는 않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만약, 자녀가 한국인이 되는 것을 포기한다면 정말로 자기 자녀가 그 나라의 주류 사회에서 활동할 능력이 있는지, 부모와 자식간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어도 괜찮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런 문제 제기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한국어 교육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고려해 보아야 한다. 정말 대충하는 한국어 교육으로서는 자녀들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빨리 알면 알수록 그 만큼 성공하는 자녀교육이 될 것이다.
한국어도 잘하고 영어도 잘하는 한국인이면 매우 좋은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을 볼 수 있지만, 영어권의 국제학교를 나와 미국이나 영국에서 대학을 나온 수재가 한국어를 잘 못하면 자기 눈높이에 맞는 직장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하지 않았던가. 단기적인 시각은 금물이다. 거시적인 안목을 갖고 자녀의 앞날을 가늠해 보아야 한다. 어느 길이 행복한 길인가? 선택은 자유다. 그러나 그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이 내용은 지난 2월 한국으로 귀임한 KIS 김석수 교장선생님이 발간한 '홍콩의 교육과 국제학교' 책자에서 발췌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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