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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역사 산책]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9-03-12 11:34:44
  • 수정 2009-03-12 11: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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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1호, 3월13일
위클리홍콩이 2년 전에 연재했던 '홍콩 문화산책'에 이어 홍콩의 역사서적에서 발췌해 '홍콩 역사 산책'을 연재한다.

이번 연재를 위해 자료를 수집·제공해준 백석대학교 중국어학 어문학부 류영하 교수와 최지운 학생에게 특별한 감사를 전한다.




산책은 일종의 여가생활인 동시에 심신 운동이 되기도 한다. 역사산책은 한가로이 거리를 거닐며 주변의 오래된 건축물이나 고적의 역사를 스스로 탐구하는 것이다. 또한 긴장된 생활 속에서 근육과 경락을 풀고, 더욱이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기에 일거양득이라 할 수 있다.

오랜 세월동안 홍콩의 9개 지역의 거리와 골목을 거닐다 보니 매번 얻는 것이 있을 뿐 아니라, 흥미도 넘쳐난다.

역사산책을 진행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산책하는 곳의 역사적 흐름에 따라 구건축의 기본적 지식이 있어야 한다. 지식이 많을수록 그 심도는 깊어지며, 흥미가 많을수록 얻는 이익도 많다.

서점에는 홍콩의 고적과 도시를 소개하는 책들이 많으나 대부분이 단순하게 건축물의 역사와 특색에만 초점을 맞출 뿐, 한 걸음 더 나아가 건축물의 배후에 반영된 역사를 종합분석하거나 거시적으로 한 건물의 건축이 가져오는 홍콩의 정치, 경제, 사회와 문화적 발전 등에 대해서는 탐구가 적다.

중환과 상환은 홍콩이 개항 후 제일 먼저 발전한 지역이고, 본래 빅토리아성의 중심으로 비교적 많은 역사건축물이 보존되어 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 현존하는 모든 구건축물의 배후는 탐구할 만한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중환의 법원과 감옥, 경찰서는 홍콩법치제도를 다지고 실행시키는 증거이며, 교회와 회의소는 영국통치시절 서양인의 생활모습과 습관을 반영한다. 이슬람교사원과 유대교성당은 홍콩의 다윈족 후손의 사회적 특색을 반영하며, 황후상 광장은 중환의 초기계획과 해양매립 개척과정을 보여준다. 상환의 합일당과 청년회는 외부에서 온 기독교가 홍콩사회에 융합된 증거이며, 문함쎄이가이(文咸西街)와 윙록가이(永樂街)일대의 남부 상점, 태평산길일대의 사당과 동화의원(東華醫院) 등은 홍콩의 중국인사회의 형성과 발전의 더욱 뚜렷한 증거가 된다. 이 지역을 산책하다보면 우리는 마치 오래 전 홍콩의 중국인이 개척당시 어려움과 힘든 경영 속에서 마침내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잡는 것을 보는 듯하다.

중환과 상환은 인접해 서로 잇닿아 있으나 개항 후, 두 곳은 자른 듯 경계가 뚜렷한 다른 세계가 되었다. 이곳은 오래 전부터 홍콩 관공서가 중국과 서양구역을 나누어 정치적으로 다스렸는데, 중환은 60년대 이전 홍콩의 정치·경제와 금융의 중심지이었으며, 영국인이 일하고 쉬며 일요일엔 교회에 가는 지역이었다. 유럽식건축물이 늘어선 이곳에 양복을 입고 가죽구두를 신고 왕래하던 서양인들은 중국인을 서구화 시켜와 이곳을 마치 「작은 런던」과 같이 만들었다.

이에 반해 상환은 주로 중국인 상주지역이었다. 40년 전 이곳엔 중국식 집이 즐비했었고, 인가로 빽빽 했다. 해안가의 문함쎄가이(文咸西街), 윙록가이(永樂街) 일대는 모두 중국식 상점·상품·여인숙이 많았고, 산과 인접한 곳에는 사당이 즐비했다. 남·녀 모두 중국식 복장을 하여 영락없이 「작은 광주」를 연상케 했다.

 세월이 유수같이 흘러 오늘에 이르러서는 도시의 개혁으로 상환의 본래의 특색이 점차 퇴색되고 있으나 건물의 기본적 구조와 장식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중환과 상환의 경계지역을 거닐다보면, 우리는 이곳의 일부 오래된 건축물의 구성과 기능을 유추할 수 있게 된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우리 함께 홍콩의 역사를 산책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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