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신의 나라 이집트 여행기 (7) - 사경을 헤매는 아들, 이집트를 헤매는 엄마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5-09-15 14:07:57
  • 수정 2016-12-21 18:45:19
기사수정
  • [제95호, 9월16일]   이집트라는 나라와, 봐도봐도 신기한 사람들과,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미라 등 고대 이집트인들이 이뤄놓은 눈부신..
[제95호, 9월16일]

  이집트라는 나라와, 봐도봐도 신기한 사람들과,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미라 등 고대 이집트인들이 이뤄놓은 눈부신 문명에 현혹돼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는 동안, 서울 시댁에 떼어놓은 막내 진호가 걸려 가슴이 아파왔다.  바람결에 엄마~ 엄마~ 하는 애닮은 진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해, 모든 일정을 접고, 하루 집에서 쉬면서 서울로 어렵사리 통화를 시도했다.

  이집트는 공중전화 걸기도 마땅찮다.  친구네 집에 있는 전화는 어찌된 일인지 연결이 끊겨있었다.  빌린 핸드폰을 이용, 수신자 부담으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선을 타고 오는 시어머니의 목소리는 맥이 다 빠져 낮게 떨리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진호가, 우리 진호가 서울 도착한 다음날부터 열이 불덩이처럼 끓고, 코피를 있는 대로 쏟고, 밤 새 토하기도 수차례, 결국 병원 응급실로 옮겼더니 '뇌수막염'이라고 한다고.  근처 병원에서는 손 쓸 수 없다고 해 시누이 내외가 오밤중에 달려와 고려대학병원으로 옮겨 입원시켜 놨다고.

  울컥 울음이 쏟아졌다.  세상에 이 못난 어미는 저 좋아라고 세상구경하며 다니는데 내 속으로 낳은 아이는 병원에서 사경을 헤맨댄다.  어찌하면 좋을꼬, 어찌하면.  밤새 엄마를 찾더란다고 울먹이는 시어머니 목소리에 엄마라는 내가 참으로 한심스럽고 또 어머니에게는 죄송해 '죽을 지경'이었다.  못난 애미, 못난 며느리, 내 대신 밤을 꼬박 새며 조카를 돌보고 있는 마음 좋은 시누이.  내 또다시 이렇게 주변사람들에게 큰 빚을 지고 내 아이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멍울을 안겨 주는 게 아닌가.  미안하다 진호야, 그리고 어머니, 형님 죄송합니다.

  자는 둥 마는 둥 밤을 뜬 눈으로 새우고, 다음날 다시 전화해 보니 진호는 다행히 바이러스성 뇌수막염 이란다.  만일 세균성이라면 매우 심각해질 거라고....

  홍콩에 있는 남편과 통화를 시도하면서, 아들 그러고 있는데 여행할 맛 나냐며 지탄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나는 몹시 두렵고 떨렸다.  남편은 아이가 많이 좋아졌다고 하더란다고, 마저 여행 잘 하고 돌아오라고, 걱정 하지 말라면서 되레 나를 위로해 주는 것이 아닌가.  콩알 만해졌던 가슴이 감동으로 가득 차 눈에서 다시 눈물이 솟았다.  


람세스 신전이 있는 아부심벨로 떠나는 밤 열차


  이집트는 금요일에는 모든 관공서나 회사들이 휴무다.  그들의 금요일은 우리의 일요일이나 마찬가지라고.  그래서 목요일 오후만 되면 우리의 토요일처럼 이네들은 모든 영업을 슬슬 접는다.  

  람세스 신전이 있는 아부심벨로 가기 위해서는 아스완으로 가야 했다.  비행기 편과 배편, 밤 기차 편이 있는데 우리는 밤 침대기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목요일 2시쯤, 호텔과 열차 예약을 위해 한인여행사들에 전화를 걸어봤지만 아무 곳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행히 한 아주머니가 집에서 여행사 업무를 본다면서 전화를 받았는데, 그 분은 다음날 서울로 휴가를 간다면서, 김국연 사장을 소개시켜 줘서 한 시름 놨다.

  7월2일 밤 8시 아스완행 밤 침대열차를 타기위해 택시를 대절해 '기자역'으로 갔다.  카이로에 있는 기차역 정도면 꽤 번듯하지 않을까 하는 내 예상은 빗나갔다.  어둡고 냄새나는 게다가 허물어져 내릴 것 같은 기차역, 지저분한 사람들.  어디 하나 엉덩이 붙이고 앉을 만한 벤치도 없었다.  역사에서 일하는 듯한 아주머니가 우리더러 대기실에 들어가 앉으라고 하여 들여다보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서진이는 내 옷깃을 잡아 당기며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한다.  지가 보기에도 섬뜩하던가 보다.

  이집트 사람들처럼 기차도 시간개념이 없었다.  우리 기차가 도착하기 전, 시커먼 고철덩어리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일반 기차와 화물기차가 차례로 지나갔는데, 그 안에 든 이집트 군이 큰 장총을 창 밖으로 겨누고 있어 섬찟해 졌다.  

  검붉던 이집트 해가 서쪽으로 지고 나니 삭막한 기차역이 한 층 더 공포스럽게 보였다.  8시 정각이라는 우리의 기차는 15분이 지난 후에야 겨우 모습을 드러냈다.  일류 호텔 값보다 더 비싼 침대열차는 그런대로 아늑하고 괜찮았다.  직원이 들어와 의자와 벽을 뚝딱뚝딱 만지니 2층 침대가 눈앞에 척 하니 펼쳐졌다.  신났다고 위층 아래층으로 돌아다니는 서진이를 보며, 서진이가 평소 아무리 조숙해도 아직 애는 앤가 보다 싶었다.  

  침대열차는 저녁과 아침이 포함돼 있는데, 먹성 좋은 우리로서는 저녁이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일반 한국 사람들은 거의 손도 안대고 내 놓는다고.  역시 우리 먹성은 남다른 데가 있는가 보다.  

  침대열차의 이불은 매우 따뜻했다.  에어컨 바람으로 얼어버릴 것 같다가 따뜻한 이불속으로 쏙 들어가니 마냥 행복해졌다.  철커덕 철커덕 대는 기차 소리와 쿨렁대는 침대, 따뜻한 이불, 서진이와 나는 아침이 뽀얗게 밝아올 때까지 정말 죽은 듯이 깊은 잠을 잤다.
  연필이라도 한 자루 쥐면 금세라도 시 한 수가 저절로 쓰여 질 것 같은, 맑고 아름다운 아침이었다.  깊게 흐르는 나일강 유역에 우거진 녹음은, 솟아난 뿔이 날카롭고 굵은 검은 소와 흰 옷을 입은 이집트 농민과 어우러져 한 폭의 멋진 그림처럼 보였다.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는 서진이와 함께 창 밖을 바라보며 이집트에 관한 이런 저런 얘길 나눴다.  저것이 나일강이란다.  비가 오지 않는 이집트에 일년에 한 번 홍수가 나서 나일강이 범람하면 이 비옥 같은 농토가 만들어진단다.  이 나일강은 이집트인들에게는 젖줄과도 같은 것이란다.  내가 얘기하는 동안 서진이는 창 밖으로 휙휙 스치는 야자수에 야자가 열렸는지, 소가 몇 마린지, 백로들이 긴 부리를 논에 박고 뭘 찾는지에 대해 더 관심을 기울였다.

  아침 7시가 조금 넘자 아침밥상이 들어왔다.  허걱~ 아무리 식성 좋은 우리지만 누런 기름에 비벼놓은 밥알과, 냄새 역겨운 햄, 말라비틀어진 빵은 도저히 먹을 수가 없는 '어처구니없는 밥상'이었다.  밥상을 고스란히 내놓으니 직원이 지나다 왜 안먹느냐며, 홍차나 커피 한 잔 마시겠느냐고 물어왔다.  이 맑고 상쾌한 아침에 진한 커피 한 잔은 그야말로 환상적일 것 같아 커피 한잔을 주문했다.  

  아름다운 아침과 함께 할 커피 한 잔은 수십년 만에 맑게 개인 내 머릿속을 완전히 헝클어 놓았다.  다 식어빠진데다, 이런 커피는 도대체 어떻게 하면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싶은 커피.  커피 잔도 그대로 내놨다.  잠시 후 아저씨는 커피 값을 받으러 왔다.  아니, 저녁하고 아침이 포함돼 있으면 차와 커피도 포함됐던 게 아닌가?  그렇지 않단다.  그렇다면 왜 진작 추가로 돈을 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나?  그리고 나는 커피가 맛이 없어서 먹지도 않았는데 왜 커피값을 줘야 하냐고 따지자 들은 체도 안하고 그냥 달란다.  

  그래 얼마나 된다고, 줘 버리고 마음을 가라 앉히자.  내 정신건강과 우리의 여행을 위해 내 기꺼이 희사하마.

<글 : 로사> rosa@weeklyhk.com
* 위클리홍콩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12-07 16:15)
0
스탬포드2
홍콩 미술 여행
홍콩영화 향유기
굽네홍콩_GoobneKK
신세계
NRG_TAEKWONDO KOREA
유니월드gif
aci월드와이드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